확률적인 것들을 다루는 모든 행위는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그것이 책임이다. 맞출 수 없다면 흐름을 따르는 것뿐이다. 복잡계에서 내면으로 들어가 숨겨진 힘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 숙련은 시간이 만든 작품, 단순함을 건져 올린 사람은 대단함을 얻는다.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원칙은 원칙이 되고, 그것을 지키는 건 자기 마음을 바로 응시하는 것이자 주인으로 사는 일이다. 성과는 임계점을 지나면 대나무처럼 자라기에 감각이 소나무처럼 더디더라도 보상은 충분하다.
일체 집착과 편견을 제거해 있는 그대로 삶을 주인공으로 산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듯이 투자에서도 무아지경이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투자자에게 있어 지혜란 현상, 즉 그려지는 파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그것이다. 인정해야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식을 쌓아가는 노력보다도 더 치열하게 여겨야 할 것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지혜로 깊어지는 것이다. 지식이 깊이를 더하지 못하면 소유욕이 커지게 되고, 그 소유의 의지만큼 (이 의지가 성급함의 동력이자 욕심의 배터리다) 현상은 사라지게 된다. 시장에서 그려지는 파동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되는 것 자체로 투자자는 이미 부자다. 그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주려도 해도 줄 수 없고 받으려고 해도 받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의 본래면목이기에 투자의 길은 가르칠 수는 있으되 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줄 수 있는 게 지식이고, 전할 수 없는 게 지혜다. 각자의 본래면목, 각자의 길은 각자의 심리 안에 있으므로 각자가 치열하게 찾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판 주식은 늘 오르고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늘 빠지는데 왜 그럴까? 그거야. 네가 판 주식은 1년 전에 산 거고, 네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2주일도 안 되었기 때문이야! 1년과 2주일의 시간을 생각 안 하는 것이다. 투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시간, 즉 ‘시차 보상’이라는 개념을 무시하면 ‘팔면 날아가고 사면 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주식 타짜>
‘재주가 많으면 밥 굶는다.’ 똑똑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기법을 찾아 똑똑함에 많이들 의지하지만, 지나고 보면 이거나 저거나 기법은 매한가지다. 기법의 쓸모는 꾸준함에 지나치게 의존하므로, 그 쓸모 역시 우직하고 끈기 있는 심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시차 보상’을 기댈 수 있고 지속해서 심리를 지지해 줄 무언가, 그것이 원칙이다. 토종닭을 더 빨리, 더 많이 키우기 위해 울타리 너머로 방사해서 키우는 어리석음과도 같은 성급함과 자만심, 탐욕과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울타리가 바로 원칙이다. 결국에는 시장 마음이니,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수 있는, 손실은 자르면서 반복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원칙이다. 투자는 자기에게로의 지적인 모험이며, 모험의 대가는 원칙을 지키는 기술 즉 돈을 버는 기술이다. 숙련은 시간이 만든 작품이다.
나는 시장을 보면서 바다와 같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평온한 바다, 그러나 언제든 모든 걸 쓸어가 버릴 수 있는 바다, 쓰나미처럼 말이다. 시장 또한 그렇다. 늘 그 자리에서 맴도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면 심장이 멎게 할 만큼 무서운 곳이다. 예측불허 속에서 결국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고 마는 것이 시장의 특성이다. 이런 흐름에 역주하지 않고 끝까지 순응하는 것이 딜러로서 나의 임무다.
<주식 타짜>
확률적인 것들을 다루는 모든 행위는 해결하는 과정 즉 책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과정에서 원칙이 바뀔 수 없는 건 바뀌는 흐름에 순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예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흐름에 따라 언제든지 기존의 태도를 바꾸는 것을, 추세 추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투자는 매번의 선택의 문제, 해결하는 책임의 과정, 그 수고로움의 보상이 수익이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기에, 스스로 눈감아 버리면 그만이기에 문제를 선택해서 해결하지 않는 자기기만이 뇌동이고, 자기 잣대로 삼은 원칙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감정이 앞서는 게 투기다. 원칙으로 정한 선에서 이익이 줄더라도, 번거롭더라도 수고로움을 다해서 진퇴를 거듭하면서 꼬리 사건을 피할 수 있는 원칙이어야, 그 원칙이 지켜져야 생존이 보장된다. 각자의 생존을 스스로 보장하는 게 투자자의 임무다.
태어남은 자신에게로의 초대, 삶은 자기에게 향하는 여행이다. 자기에 대한 믿음이 곧 자기의 세상이고, 인간은 먼 가능성의 존재다. 내면으로 들어가 숨겨진 힘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생각 한번 바꾸면 완전히 딴 세상처럼 보이는데, 그 생각 한번 바꾸기가, 그게 긍정이 되기가 참 힘들더라.’
매일 반복되는 해석하는 마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만큼 투자의 성과는 나아지고 행복은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투자하는 마음의 긍정적인 방향은 말할 것도 없이 기다리고, 대응하는 마음이다. 버티어 내는 건 버릴 줄, 비울 줄 안다는 것 즉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고, 치고받는 건 치열함을 안다는 것 즉 단식할 줄, 대응할 줄 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어떤 형태로 어떤 사람이 살아가듯이 지금도 어떤 형태로 파동이 그려진다.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는 단지 바라보는 각자에게 좋고 나쁨으로 존재하는 파동이 강물처럼 흘러갈 뿐이다.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수많은 변수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는 점, 강한 중독성이 있다는 점, 멋모르고 할 때는 괜찮다가 알 만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 아홉 번을 이기고도 단 한 번 베팅 실수로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는 점, 이 시장의 겉모습에는 분명 도박과 유사한 점이 많다……, 요행수가 아니고 이기는 방법을 알면 그때부터는 투자가 된다……, 이기는 방법을 단 1%라도 더 확보하고 있다면 승부는 시간문제일 뿐 결국 1% 더 있는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수익이 손실로 바뀌고 손절 선까지 건드리면 미련 없이 던진다. 그러나 일곱 번은 손절 선을 넘기지 않으니까, 피해를 최소화한다. 반면 성공한 세 번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제대로 베팅이 먹히면 손실을 몇 곱절 상회한다.
<주식 타짜>
하락장에서는 주식을 보유하지 않는 게 비결이라면 매매 시간을 고정한 데이트레이딩에서는 손실이 나면 던져버림으로써 손실을 보유하지 않는 게 비결이다. 지속해서 맞출 수 없는 확률에서 맞추겠다는 무모함이 어려움의 원천이고, 맞출 수 없음을 전제함에도, 그럼에도 상상 이상의 돈을 벌 기회가 있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모험을 지속하는 게 대범함이다. 이겨놓고 친다는 건 무모하지 않다는 것이고 투자자에게 ‘이겨놓고’라는 의미는 자기감정을 통제한 상태를 의미한다. 맞출 수 없다면 흐름을 따르는 것뿐이다. 따르기 위해서는 매수 관점으로 접근하다가도 어느 순간 매도로 전환할 수 있는, 흐름의 변화를 스스로 규정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원칙으로 정한 선을 강조하는 이유다.
맞지 않고 링 위에 설 수는 없다. 유도 선수는 상대 선수를 메치기 전에 낙법을 먼저 배운다. 권투 선수는 가드 올리는 방법을 익힌 뒤에 잽을 던질 수 있다. 투자자라면 잃을 때 아프지 않게 잃을 줄 알아야 한다. 열에 두세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를 거머쥘 시점에는 뼛속까지 발라 먹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시장을 결코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인정해야 한다. 시장은 늘 옳다.
<주식 타짜>
실천하지 못한 자의 말은 여전히 복잡계에 머물겠지만, 실천한 자의 말은 단순해진다. 단순해야 이해가 쉽고,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공감의 여지가 커진다. 실천한 자의 말에서는 ‘시장은 늘 옳다’라는 이타(利他)가 느껴지게 된다. 시장은 복잡계, 단순함을 건져 올린 사람은 대단함을 얻는다. 처음에는 모두 그저 따라 짖어대는 개였다. 훈련받은 개는 처음만큼은 짖지 않는다. 개도 사람을 알아보듯이 투자자도 조금씩 따라 짖지 않으면서 현명해진다. 투자자가 성장한다는 건 자의든, 타의든 자기만의 관점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주관에서 객관으로,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이기에서 시장은 늘 옳다는 이타로 마음이 옮겨가는 것이다.
살다 보면 다른 날, 다른 곳에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투자하다 보면 자주, 숱한 고비에서 틀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그것도 많이) 원칙은 비로소 원칙이 된다. 끝없는 인간적인 욕망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인간적인 무지로 예상치 못한 실수를 수시로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투자에서의 틀림은 오답이 아니라 확률에서의 예외를 의미하기에, 실수는 원칙이 부서지지 않으면 단지 당연한 실수일 뿐이기에 원칙적인 것들은 원칙 안에서 모두 정답이 된다. 원칙을 지키는 기술을 연마하는 건 기회의 일정한 패턴을 보기 위함이다. 반복 과정을 통해 나중의 창대함에 다가서고자 함이 원칙을 지키는 기술에 전부를 베팅하는 진짜 목적이다. 시장에서 가격은 심리의 합, 참여자의 심리가 변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패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는 시장에게 공짜 점심을 달라고 투정 부리면서도 그게 공짜인지도 투정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즉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모든 곳이 진실하다는 말이다. 원칙을 지키는 기술은 감정을 통제하는 기술이며 삶에서, 투자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는 기술이다. 투자자에게 있어 이 기술의 차이가 돈의 크기를 결정하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디에서 마디까지 꽃이 피고 지듯 파동은 등락을 거듭하기에 항상 ‘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 염주를 굴려야 한다. 여기에서의 겨울은 에너지가 다하였음을,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음을 뜻하고, 수렴과 발산, 성장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오고 감의 연속이기에 기다릴 수만 있다면 반복되는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게 된다. 원칙을 지키는 기술의 첫째인 시간을 통제하는 기술은 건강에 관한 것이고, 둘째인 손실을 통제하는 기술은 돈에 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고, 돈을 잃으면 기회를 잃는 것이다. 투자자가 원칙을 지키면 주인이 되는 것이기에 원칙에 지키는 한 투자자도, 원칙이 만든 돈도 진실하다.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즉 자신의 마음을 바로 응시해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불성을 자각한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삶을 긍정하면서 만개한다는 평범한 진리, 그럼에도 삶을 긍정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연민을 불교에서는 자비라 한다.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해탈이다. 사람은 모두가 백조인데 백조라는 걸 모르기에 멋진 오리가 되려는 성급함과 욕심에 스스로 오리가 되고자 하는 행태를 계속해서, 너무나도 자주, 지독하게도 지속하다 오리로 살다 끝단에 닿는 경우가 허다하다. 투자자가 원칙을 지키는 건 자기 마음을 바로 응시하는 것이며 주인으로 사는 일이다. 그러므로 투자자에게 있어 원칙을 지키는 기술은 시장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게 하는 비기다.
그때는 사소한 몸짓 하나가 우리를 배반할 수 있으므로, 모든 동작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그리며, 기술을 직관적으로 구사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갈고닦아야 한다. 직관이라는 건 타성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기술을 초월하는 마음의 상태다. 그리하여 일단 기술을 충분히 연마하고 나면, 각각의 동작을 취할 때 일일이 그것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모든 움직임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경지에 으르기 위해서는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충분치 않다면, 또다시 반복하고 연습해야 한다…, 솜씨 좋은 대장장이를 보라. 모르는 이들의 눈에는 그가 매번 똑같은 동작으로 망치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활쏘기로 마음을 갈고닦는 사람은 안다. 그의 망치질의 강도가 매 순간 다르다는 것을, 대장장이의 손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그는 강하게 칠 때와 부드럽게 칠 때를 정확히 구분한다……, 궁수는 과녁을 수없이 빗맞혀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같은 동작을 수천 번 반복해야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활과 자세, 시위, 과녁의 맥락이 통째로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궁수는 자신의 동작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부터 그는 스스로 활과 화살, 그리고 과녁이 된다……,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고, 호흡을 고르고, 눈으로 과녁을 정확히 응시하는 것은 기술에 달렸다. 그리고 발사의 순간을 완성하는 건 직관이다……, 책임을 완수하고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실천했을 때, 궁수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했고, 두려움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과녁을 빗맞혔더라도 그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다. 그는 비겁하지 않았으므로.
<흐르는 강물처럼 – 파울루 코엘류>
단순해야 선명해지듯이, 천천히 해야 또박또박할 수 있고, 적게 해야 진중하게 할 수 있는 법, 선명해져야 단순해지듯이, 또박또박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해야 하고, 진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leverage 즉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천천히, 또박또박, 더 적게, 진중하게. 투자도, 인생도, 말도 그래야 한다. 투자는 혼자서 가는 길, 원칙 따라, 흐름 따라 말이다. 인생도 이와 같은 길이다. 거듭되었던 실패들도 성급하지 말라는, 말을 적게 하라는 운명의 배려였다. 그럼에도 걸어가는 길은 작은 눈덩이의 오랜 꿈이라고 할까. 멈추지 않고 계속 굴러야 한다. 시간 + 경험 = 감각이고, 시간 × 꾸준함 = 성과다. 1×1 = 1, 2×2 = 4에 불과하지만, 9, 16, 25, 36…. 시간에 더해질수록 가파른 우상향 각도가 이루어지는 게 꾸준함이 주는 힘이다. 감각은 슬럼프와도 같은 굴곡이 더해지면서 계단식으로 성장하겠지만, 대신 성과는 일단 임계점을 지나면 가팔라지면서 감각을 위로한다. 성과는 임계점이 지나면 대나무처럼 자라기에 비록 감각이 소나무처럼 더디게 성장하더라도 보상은 충분하다. 지금의 임무는 그저 하고자 하는 것, 가슴에서 솟아 나오려고 하는 그것을 꾸준히 해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