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어긋나기에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태도로 지속해서 흘러갈 확률이 결정되므로, 목표는 남들과 다른 신묘함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꾸준함이어야 한다. 지금 지켜야만 그다음이 펼쳐지면서 겹겹이 쌓여가는 시간 층에서 위안을 얻게 되고, 위안은 또 다른 시간을 지속하게 한다. 누구나 바라고 원하는 것들은 행동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 흐르는 강물처럼 지속하다 보면 뭔가 돼도 된다. 선을 넘지 않는다는 건 무리하지 않겠다는 의지, 다그치는 감정들, 그럼에도 멈출 줄 아는 자가 상수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일, 마치 나를 부르는 듯한 석탄 수송 열차의 기적 소리, 사거리에서 마주쳐 길을 묻는 이방인, 흙길에 떨어진 갈색 술병처럼 별일 아닌 사건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어도 우리 존재는 탐스럽게 잘 익은 봉숭아를 조심스럽게 수확하듯 신중하게 형성되는 게 아니다. 끝없이 발버둥 치다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걸 거둘 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 셸리 리드>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데이트레이딩은 보유 시간이 짧음을 전제하므로 보유하는 동안 불편해야 한다. 틀릴 수도 있음이 불편을 넘어 혐오스러워야 한다. 악취가 풍기는 방에 머무르는 것처럼 악취가 몸에 배기 전에 숨을 참다가 뛰쳐나와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이해하려 애쓰게 만큼 애절해질 뿐이다. 그려지는 파동은 엇비슷하게 반복되는 이미지만이 있을 뿐 정답은 없기에 감정으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주어지는 걸 받아들이면서 순응해야 할 대상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는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시나브로 진정한 투자자가 된다는 건 모르는 것들 사이에서 조금씩 지혜로워진다는 의미다. 투자 계획은 어긋남의 연속이고 바로 잡는 게 일상이다.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주 어긋나기에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태도가 지속해서 흘러갈 확률에 있어 최대 변수다.
착실히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있으니, 오늘도 내게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구나 싶었다. 내일도 어쩌면 내게 새로운 하루가 주어질 것 같았다. 폭풍이 몰아치던 지난밤이 절망 그 자체였다면, 오늘 아침은 희망이었다. 내 계획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떠오르는 태양의 다정한 손길을 받는 이 순간만큼은 실패할 가능성만큼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나는 씨앗을 심거나 변소를 파거나 일상을 세우는 것보다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먼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날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차근차근 그곳에 머물 방법을 찾아 나갔다……, 자연의 모든 피조물은 저마다의 본성과 수천 년간 만들어진 습관에 따라 움직였고, 나도 내 일상을 그 리듬에 맞추기 시작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다른 피조물들처럼 나도 뜨고 지는 태양에 맞추어 살아갔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잠을 잤다. 폭풍이 치면 치는 대로, 달이 차면 차는 대로 기울면 기우는 대로 그렇게 자연의 리듬대로 살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단기적으로는 그려지는 파동에서 매수와 매도 에너지는 조화를 이루면서 등락하게 되지만, 자본주의의 특성, 진보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는 하락하게 되므로 장기적으로는 파동은 우상향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명제는 관점으로서의 충분한 가치에 더해 기다리는 마음에 충분한 편안함을 준다. 대부분 에너지는 균형을 이루면서 등락하기에 투자에서 성급할 이유보다는 기다려야 할 이유가 훨씬 크다. 성급하게 달려들어서는 꾸준할 수 없고, 기다리는 마음이 더해져야 여유로워지고, 여유로워야 꾸준할 수 있다. 투자자의 목표는 남들과 다른 신묘함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꾸준함이어야 한다. 반복이 복리가 되면서, 꼬리 사건이 전체를 좌우하면서 큰 차이를 만드는 게 시장이기에 성공은 꾸준함이 일군 과실이다. 이동평균선이 왜 중요할까? 파동은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면서, 오르내리면서 평균에 수렴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게 목적인 투자에서 비싸게 사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평균(해당 기간 시장의 본전) 가격이라도 기다려서 사야 한다. 그 평균이 이동평균선이므로 평균과 이격이 과하면 보낼 수 있고, 기다리는 마음에 명확한 근거를 제공하기에 눌림목(진입점)으로 여길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내가 산에서 얻은 가르침이 있다면, 그건 땅은 지속한다는 것, 필요한 때가 되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없애고, 가능할 때 제 모습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의심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 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원칙은 펼쳐지는 파동을 헤쳐갈 자신만의 지침이지만, 원칙을 세우는 건 시작에 불과하며 누구나의 몫, 원칙은 행동으로 완성되기 전에는 있으나 마나 한 그저 그런 것에 불과하다. 원칙은 반드시 지켜가는 과정에서 완성되며, 완성되는 시간 속에서 자가 증식하게 된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 중 으뜸은 원칙을 지키는 과정이 (그저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는 게), 자가 증식할 때까지 버티는 과정이 목적이 되어야 하지만, ‘벌써’ ‘아직’ 투자하는 마음에서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탐욕이다. (돈을 의도하는 마음을 억지로 버릴 수가 없으므로 의도가 의도치 않은 상황을 거듭해서 만드는 것이다) 돈이란 목적에 꽂혀버리는 순간 과정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하루하루 원칙을 지키는 것에 몰입하는 과정이 투자자로서 완성에 이르게 한다. 모든 스포츠의 공통 분모는 힘을 빼라는 것이다. 원칙을 지킨다는 게 힘을 빼는 것이고, 비로소 투자의 목적이 자신에게로 향했다는 의미다. 자꾸만 샘솟는 탐욕을 누른 채 몰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칙은 부러짐을 거듭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돌아보는 후회나 아쉬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지금 원칙을 지켜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숲속 황야를 인간처럼 서투르게 걷지 않고 숲속 생물들처럼 편안하게 걷는 법을 익힌 건, 숲이 바위투성이라서, 너무 미끄러워서, 너무 가팔라서 걷기 힘든 땅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땅이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중략) 탄생, 성장, 그리고 죽음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 쓰러진 나무 사이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 모든 굴곡을 이겨내고 틈을 뚫고 빛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 생명들을 둘러보았다. 숲에 깃든 태곳적 혜안은 너무 깊고 복잡해 오롯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게 꼭 필요했던 지혜를 다시금 떠올릴 만큼은 헤아릴 수 있었다. 숲은 내게 말했다.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건, 바로 겹겹이 쌓인 시간 층이라고.
<흐르는 강물처럼>
외로움이 고독이 되기가 참으로 힘들다. 외로움은 영혼에 해가 되지만, 고독은 영혼에 다가서는 순례길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시간을 믿으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흐르는 강물처럼 가리라’라고 다짐하면서 시간 층을 더하는 지금이 있어 다행스럽다. 겹겹이 쌓여가는 시간 층에서 위안을 얻게 되고, 위안은 시간을 또 다른 지속하게 한다.
경제 정책에서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와 부동산 시장을 살리는 걸 동시에 (단기간에 탁구공처럼) 추구하는 게 정부의 욕심이자 성급함의 표식 같다. 최고의 생산량과 최고의 품질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처럼. 그러한 욕심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거듭해서 만들게 된다. 무리하지 않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온 힘을 의미하는 최선이란 단어가 아닌 최고라는 단어를 꿈꾸기에 무리하거나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을 자주 연출하게 된다. 대개 욕심은 성급함을 부르고, 성급함은 욕심의 자손과도 같다. 여유로움이 행운을 부른다고를 한다. 여유로운 마음에는 행복이 깃들기 쉽기에, 행운은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것이기에, 행복한 마음에서 행운이 더 자주 잉태되는 건 당연하다. 마음이 여유로워야 좀 더 잘 기다릴 수 있고, 덤덤해야 좀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바라고 원하는 것들은 행동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앎에 그치면 몽상에 가깝지만, 앎이 행을 만나면 상상이 현실이 되는 동력을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계가 뚜렷한 자제력의 속성, 성급할수록 자제력은 더욱 빨리 떨어지게 된다. 꾸준하게 행하기 위해서는 여유로운 마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셀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두려움에 웅크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나는 강인함은 이 어수선한 숲 바닥과 같다는 걸 배웠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걸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고 햇볕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최선을 희망하며 예측할 수 없는 조각들을 모아가며 성장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는 모두 함께였다. (중략) 어떤 존재가 형성되기까지는 시간이라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 줄 것이다. 윌이 가르쳐주었듯이 흐르는 강물처럼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해 줄 것이다. 물론 걸림돌을 무릅쓰고 멈추지 않고 흘러왔다는 게 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강물처럼 나 역시 나를 다른 존재들과 이어주는 작은 조각들을 모으면서 살아왔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손바닥에는 흙 두 줌이 쥐어져 있고, 심장은 여전히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얇은 구름이 흩어지고 윤슬이 반짝이는 걸 보며 생각했다. 내가 삶이라고 불러온 이 여정도 잠겨버린 이 강물과 비슷하지 않은가. 저수지로 만들어 놓았는데도 온갖 걸림돌과 댐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고 흐르는 이 강물,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 그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걸 가지고 계속 흘러가는 이 강물이 내 삶과 같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투자에서는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는 건 불문율이다. 원칙이 바로 선다는 건 지속해서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원칙이 바로 서야 하는가? 자명하다. 이것저것, 이리저리, 우왕좌왕 왔다 갔다 보채다가 더 나빠지지 게 당연한 선례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원칙이 자신 안에서 바로 서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으면, 지속하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성도, 지금 행위들의 목적도 감정에 쉽게 휘둘리기 때문이다. 지각에서 지혜로의 연금술, 그것은 지속이 만드는 연금술이다. 원칙을 꾸준하게 지키는 투자자가 돈을 만드는 연금술사다. 흐르는 강물처럼 지속하다 보면 뭔가 돼도 된다. 어려운 것이기에 장애물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하고자 하는 그 길로 강물처럼 흘러가야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말이다.
모든 일에는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선을 넘지 않는다는 건 무리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위험을 알고 피하려는 그 의지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 기회를 만날 첫 번째 조건이 생존이지 않은가? 살아남아야 기회를 논할 수 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게, 잃지 않는 게 첫째여야 한다. 투자에서의 선은 각자가 원칙으로 정한 선이지만, 너무나도 인간적인 투자자의 인간적인 감정이 돈을 다루면서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게 절대 쉽지 않기에 투자는 절대 쉽지 않다. 워런 버핏의 “수영장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금방 드러나지만 대부분 투자자는 때가 되면 물이 빠진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요즘 유행하는 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리고 아주 보통의 하루, 행복은 빈도로 느껴야 하는 것이기에 원칙을 지키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게 행복한 삶인데도 말이다. 투자자에게 있어 원칙이란 동그라미에서의 반복이 니체의 영원회귀다.
하수는 결과에 집착하고, 상수는 과정에 만족한다. 하수는 당장, 짧은 시간, 큰 성과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상수는 원칙을 지켜가는 시간에서 여유로움을 즐긴다.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줘야, 자신의 시간에서 여유로움이 진하게 느껴져야 상수다. 하수는 일희일비할 뿐인 결과에 함몰되어 일희일비하다 소중한 시간을 도박적 행위에 함몰시킬 뿐이다. 명심해야 한다. 아니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지속되면 알게 된다. 하수는 수익에만, 결과에만 연연하면서 사는 데만 급급하지만, 상수는 잃을 수 있다는 것에, 과정에 집중하면서 대응하기에 시장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애초에 비싸게 팔 수 없다면 자른다는 것을, 자르고 나면 기회는 언제나 준비된다는 것을, 잃지 않아야, 살아남아야 무궁무진한 기회의 숲속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수는 나중의 일인 결과에 집착하기에 멈추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멈출 줄 아는 태도가 상수를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