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별개로 그는 범죄를 저질렀다. 우나의 입장에서는 어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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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UNA라는 여성이 15년 전 당했던 그루밍 성폭행의 가해자를 찾아가는 이야기.
뭐랄까. 우나가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날 뻔했다. 우나가 무슨 생각하는지 보일 때마다, 이 영화의 원제목(Una)이 우나인 이유를 떠올리게 될 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세상이 그녀를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으나...
아래부터 영화 내용 전체와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주인공 우나(루니 마라)는 13세 때 이웃집에 사는 30대 중반이던 레이=피터(벤 멘델슨)와 3개월간 연인에 가까운 관계를 가졌고, 잠자리도 가졌다. 그 후 15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레이는 법정에서 4년형을 받았고 복역 후 출소까지 했다. 15년의 시간이 흘러 우나는 20대 후반이 되었고 그는 50대가 되었다.
요약하면 레이는 우나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우나를 향한 그의 마음에 진심이 있었든, 진심 따위 없이 어린 여자라서 좋았던 소아성애자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관계 자체로 그는 범죄자이고 그러니 처벌을 받았다. 그는 죗값을 치르고, 출소 후 이름을 바꾸고(=피터) 우나와 연락을 끊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게 맞는 것이고.
그렇다면 우나의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또한 우나의 가족은 어떠하고, 어떠했는가. 그때 우나는 가족 내에서 어떠했을까.
우나가 레이와 가까워진 순간부터, 그루밍을 당하고 이후에 레이가 처벌을 당한 그 이후의 모든 순간까지도 우나의 가족들이 우나를 진정 위하고 케어한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그랬기에 우나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다정한 어른 남자를 따랐던 것이고, 또한 그랬기에 레이의 입장에서는 우나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우나의 부모는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다.
앞서 레이=피터의 마음이 그 순간에는 우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런 것이든(사랑했어도 그러면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 말고, 사랑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가 소아성애자라서 단지 '어린' 우나에게 접근한 것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우나 입장에서도 그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우나와 레이가 부적절하고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과거와, 현재 성인이 된 우나가 이름을 바꿔 피터가 된 그를 찾아가는 현재가 교차되어 나온다. 과거는 3개월+재판까지의 시간, 현재는 오늘 단 하루 만에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계속 교차되어 나온다. 화면으로 교차되기도 하고 현재의 그들이 나누는 말을 통해 과거의 상황을 알게 되기도 한다.
나는 그 교차된 과거와 현재를 종합한 뒤 적절히 정리해서 배열/서술하고자 한다.
(영화 내에서는 일부러 끊었다가 나중에 반전처럼 덧붙여서 나오는 내용도 나는 모두 모아서 서술했다)
과거 장면 중 가장 처음 나오는 장면은 집 앞에 홀로 앉아있는 어린 우나의 모습이다. 그는 무언가를 보고 옆집으로 간다.
우나는 집 앞에 홀로 있었다. 가족들도 없이, 친구들도 없이.
과거-법정 장면
누군가가 어린 우나에게, 변호사의 질문에 카메라를 보고 답하라고 설명을 해준다.
당연히 아동 보호를 위한 분리 방책이다. 가해자(레이)를 직접 마주치지 않게 하려는... 하지만 우나는 그런 건 관심도 없고 "레이 아저씨에게 말 좀 전해달라"라고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답하자, 우나는 질문을 답해야 할 카메라에 대고 레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어디 갔냐고, 왜 나를 떠난 거냐고, 사랑한다고.
우나는 그저 레이가 없어서, 레이 아저씨를 볼 수 없어서 초조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그 영상을 가만히 보는 법정에서의 레이의 뒷모습도 나온다.
과거-아마도 첫 만남인듯한 바비큐 파티.
이웃들이 다 모여 있으니 우나도 또래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그 친구와 다투는 바람에 혼자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때 레이와 만나게 된 것. 그러니 현재의 우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혼자 있던 게 내가 아니라 친구였다면 그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을까요?"라고 레이에게 묻는다.
(이 질문은, 레이가 소아성애자라면 '우나 본인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온 말 같다.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면 그는 소아성애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이 말에 대해 레이는 부정한다. 그날 자신은 너의 존재만으로 발기하거나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다고. 애초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내가 그런 식의 접근을 했다면 누군가는 눈치챘을 거라고.
과거-바비큐 파티 이후 수영장에서의 만남.
우연한 만남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동네 수영장인 거 같고 이웃을 마주치는 건 흔한 일이다.
우나가 혼자 있을 때 레이가 다가와서 말을 걸고, 친구들도 그걸 멀리서 보기만 한다. 그러고 탈의실에서야 그 남자 누구냐고 묻는 친구들.
-그러니까 우나의 친구관계가 그렇게 활발하거나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평범하게 또래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또래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식으로 관계를 맺는 소녀는 아니었던 거 같다. 평범했다면, 친구 누구에게 연애상담 비슷한 동경의 마음을 상담하기라도 했을 텐데 그런 것이 이루어질 상대조차 없어 보인다. 챙겨주는 부모도 없고, 무엇이 먼저인지는 몰라도 우나는 조숙했다.
과거-패턴이 되어버린 둘의 만남.
우나와 레이는 암호를 정하고 만남을 이어갔다고 한다. 암호를 통해, 따로따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만남. 이때 우나는 부모의 통제가 전혀 없이, 혼자서 그냥 레이를 만나러 나갈 수 있다는 게 인상 깊다. 레이를 만나고 오는 과정을 보면 짧지 않은 시간 부재했던 거 같은데 그런 행동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게.
과거-함께 떠나기로 했던, 그리고 반대로 완전히 헤어지게 된 그날이었던 듯한 장면.
레이와 우나가 단둘이 앉아있을 때 여행 중인 모르는 가족이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그들(우나와 레이)을 부적절하게 보거나 사이를 의심할 수도 있지만, 먼저 무언가 질문을 하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우나가 자기가 먼저 말한다. "아빠랑 여행 중이에요!"라고, 유럽에 간다고. 그 말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다.
-남들이 부적절하게 볼까 봐 레이를 '아빠'라고 부른다(레이가 시켰든 아니든, 우나가 먼저 말한다는 게 중요하다). 레이가 곤란한 질문을 받고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 먼저 입막음을 한 것이다.
그날은 우나와 레이에게 남긴 마음과 기억이 각각 다르다. 이건 현재에서 둘이 재회한 뒤에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함께 서술한다.
그날 이후, 우나의 가족은 이웃들에게 손가락질 받았지만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계속 거기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분노하고 괴로워하다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걸 현재 우나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장면 중 그날 이후인 듯한 우나 가족이 식사하는 장면에서는 우나의 부모는 어느 쪽도 우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는다. 둘이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아버지만 화를 못 참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하다가 혼자 갑자기 벽을 주먹으로 세게 친다.
당연히 가족, 부모에게도 충격이고 상처였겠지만 우나에게 어떤 후속 조치나 케어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 속에서 우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말없이 앉아있다.
현재 장면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건 우나가 화려한 옷을 입고 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화장실 같은 데서 대충 섹스하고 새벽에 귀가하는 모습이다. 귀가 후 샤워하는 우나의 나체도 나오는데 유륜에 피어싱이 있다. (우나가 어떤 일상을 사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새벽-아침의 모습이다)
씻고 나온 우나는 신문 등에서 오려낸 듯한 단체사진을 소중하게 본고 있다.
그리고 그런 딸의 방에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여는 엄마.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 간섭 같기도 하지만, 과거에 딸을 방치했던 걸 생각하면 이제 와서? 과해 보인다.
그래놓고 딸과 함께 거울을 보다가 “머리 좀 해야겠다”라고 말하는 엄마. 우나의 머리가 길기 때문에, 우나의 머리에 대한 말인가 생각했으나 본인 머리를 말한 거였다(딸에게 관심 없음).
우나는 어딘가에 전화해 주소를 묻고, 엄마에게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다면서 어딘가로 운전해 간다.
그리고 딸이 나가자 딸의 방에 들어가 사진들을 보는 엄마. 앨범 속에 담긴 우나의 어린 시절 모습. 그중 어린 우나와 남자가 함께 찍힌 사진에 남자의 얼굴에만 스크래치가 나서 보이지 않는다. 그 남자는 레이일 텐데, 그 사진을 버리거나 잘라서 반쪽이라도 버리거나 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우나도, 우나의 부모도.
운전하는 우나. 오전 내내 연락 안 됐다는 상대방(클럽 갔다가 새벽에 들어왔으니까)이 오후에 나오냐고 묻고, 우나는 엄마랑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위에서 나온 단체사진에서 레이를 발견하게 된 우나가 그가 일하는 직장이 어디인지 조사한 뒤 실제로 찾아간 것이다. 공장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고, 차를 주차한 뒤 그 넓은 공장을 걸어가다가 숙취 때문인지 레이를 만날 생각 때문인지 구토를 하는 우나.
걸어가던 중에 만난 직원(스콧)에게 레이에 대해 묻자 그런 이름은 모른다고 했는데, 사진을 보여주니 자기 상사라고, 피터라고 한다. 우나는 그제야 레이가 피터로 이름을 바꿨다는 걸 알게 된다.
스콧의 안내로 레이, 이제는 '피터'를 만난 우나.
어떻게 알고 왔고 묻는 피터, 우나는 신문 등에서 사진 보고 왔다고 말하고, 직접 운전해서 왔다고, 그 집에 아직도 살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어쨌든 회사 안이고 둘이 대화를 나누는 곳이 투명한 창으로 둘러싸인 사무실?이기 때문에 피터는 나가서 얘기하자고 하는데 우나가 거부한다.
이때 피터가 말한다. “너는 치료가 필요해”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은 치료의 필요성/의지조차도 못 느낀 것 같은데 오히려 피터=레이가 우나를 보자마자 우나에겐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챈다. 적절한 치료와 조치를 받았다면 이제 와서 자신을 찾아오는 (여러 가지 의미로) 위험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내가 알던 그 애가 맞긴 하냐, 기자이거나 그런 거 아니야?” /피터는 우나의 방문 자체가 자신을 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섞은 열세 살짜리가 얼마나 더 있는 거죠?”
-피터는 없다고 답한다.
“내 점 보여줄까요? 거기 키스했잖아요. 둘이 함께 살자던 약속은요? 그랬던 적 없어요?” -피터는 그런 적 없다고 한다.
우나가 말한다. “그 방에서 난 혼자였네요.”
이런 대화를 하던 중에 우나가 가방을 뒤적거리자 피터는 당황하며 하지 말라며 달려가서 가방을 빼앗아 가방을 뒤엎는다.
그 모습을 본 우나: "맙소사, 죽이려고 온 줄 알았군요?"
피터=레이는 우나가 총을 꺼내거나 할 줄 알았던 거 같다. 동시에 그의 입장에서는 우나가 자기를 찾아올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던 거 같고. 반면 우나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로 찾아온 것 같다.
우나가 자기 사진 어쨌냐고 묻자 다 태워버렸다는 피터. /이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피터는 우나의 사진을 갖고 있으면 안 되고 다 태워버리는 게 '맞는' 행동이다
“애들 사진 찍어 올리는 소아성애자 사이트가 있던데요?”
“난 그들과 달라. 감옥에서도 소아성애자라고 더 쓰레기 취급을 받았지만, 난 그런 인간이 아니야. 너도 그건 알지 않냐."라고 하자 “날 학대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죠.”라는 우나.
-레이는 과거 재판 과정에서 소아성애자의 패턴에 들어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여러 상담/심문이 받았던 거 같고 자긴 그런 놈이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오히려 레이 본인이 어릴 적 학대를 받았다든가 하는, 소아성애자(정신이상자)의 전형적인 아픈 과거가 있다고 지어내기라도 하면 선처를 바랄 수도 있었지만 자긴 그런 과거도 없고 소아성애자도 아니므로,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진술했고 그랬기에 감형을 받지 못했다고.
투명한 창으로 된 방에서 이렇게 격렬한 대화를 하니까 회사 사람들이 드나들며 괜찮냐고 물어본다. 그때마다 오히려 우나가 먼저 침착하게, 괜찮다고, 우린 그저 대화를 할 뿐이라고 한다.
(사실 복수의 의미에서라도 그의 인생을 망치고 싶다면 이 새끼 어떤 새끼인지 아냐고 질러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우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또 다른 회사 사람이 와서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자 우나는 얌전히 피터를 보내주고, 기다리다가 회의가 길어지자 우나는 혼자 회사 안을 돌아다니다가 피터의 자리를 보게 된다. 그래서 알게 된다. 그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하필 이날은 피터의 회사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그 회의에서 피터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피터를 찾는 사람도 많았고 회의도 꼭 들어가야만 했던 거. 그리고 하필 이날 우나를 만난 피터는 평소답지 않게 회의에서 질러버리는 행위를 하고, 그런 행위로 인해 또다시 회사 사람들이 피터(와 우나)를 찾아다니고 피터는 숨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나는 피터와 아내의 사진을 보고 기가 막힌 상태였으니 다시 돌아온 피터에게 질문을 쏟아내고 그는 대답한다. 결혼한 지 4년, 둘 사이에 아이는 없음.
“당신이 한 짓 알아요?”
“당연히 알지. 내가 다 말했거든.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라고 할 때 우나의 대답이 인상 깊다. “문제 있는 여자군요?”
초점이 자신의 아내에게로 향하자 피터가 말한다. 자신이 한 행위로 인해 복역도 했고 그 과정에서 모든 걸(직장, 인맥 등) 잃었고, 이제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 하고 있는데 이러지 말라고.
-자신의 직장, 자신의 아내의 존재까지 알게 됐으니 우나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다시 망가뜨릴 수 있음을 알았기에 한 말이리라.
“그럼 나는요? 아저씨는 4년이지만 나는 15년 동안 그때 그 집에서 여전히, 남들은 수군거리고, 아저씨 애인에게 맞기도 했다고요.”
-레이는 우나와 관계가 지속된 3개월 동안 여자친구와 동거 중인 상태였다. (나이를 생각하면 거의 사실혼이 아니었을까 싶다) 레이가 잡혀가고, 우나는 그 여자친구에게 맞기(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둘은 또다시 언쟁이 시작되는데 스콧이 피터를 찾으러 다니고 있고... 피터를 찾아 외치는 목소리에서 우나는 당신이 찾는 사람 여기 있다고 스콧에게 넘길 법도 하겠지만- 피터가 불을 끄고 짐 뒤에 숨어 없는 척을 할 때 우나는 피터의 곁에 같이 숨어 함께 없는 척을 한다.
그렇게 조용히, 몸을 숙인 채 가까이에서 둘은 조용히 대화를 한다.
“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마음을 빼앗긴 바보였죠.”
“아니야. 넌 바보가 아니었어. 고집쟁이에 단호하고, 나이에 비해 똑똑하고, 항상 조급하고, 아이 취급이라면 질색을 했어.”
“애들이라면 다 그래요. 내가 몸 말고 뭘 줄 수 있었죠? 그걸 빼면 저한테 바랄 것도 없었을 텐데요.”
“내겐 있었다.”
그렇게 둘은 추억을 얘기한다. 둘만의 암호, 표시, 멈췄어야 하는데 멈추지 않은 것.
“너에게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그리고 잘못된 일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었잖아.”
이 말에 우나는 피터의 얼굴에 침을 뱉고 나간다.
-사실 우나 입장에선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우나가 과거에도 이미 레이를 지켜 주기 위한 여러 가지 언행(예: ‘아빠랑 여행 중이다’같은 것)을 한 것에서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나가 알았다고 해서 레이가 그런 관계를 마음먹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우나가 알았어도, 설령 원했어도, 먼저 접근했어도 레이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고. 그러면 안 되는 짓을 했기에 레이는 잡혀 들어간 것이고.
회사 사람들은 계속 피터를 찾아다니고...
피터의 얼굴에 침을 뱉고 뛰쳐나간 우나는 화장실 변기칸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변기칸 밖에 피터가 서있고... 얘기하던 중 또 회사 사람이 피터를 찾아 화장실로 들어오는데, 우나는 피터를 빠르게 변기 칸 안으로 데려오고, 문을 잠그고, 자기 혼자 있는 척 목소리를 내서 직원을 내보내 주기까지 한다. 우나는 피터=레이를 너무나 잘 지켜준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둘은 〈그날〉을 얘기한다.
15년이 지나서 말하는 그날의 기억. 그날이란, 둘이 함께 떠나기로 한 날. 모텔에서 둘이 잠자리를 한 날.
우나가 말하는 그날: 낯설고 어색했지만 기분이 좋았고, 레이가 담배를 사러 나갔다고 온다고 했고. 우나의 입장에서는 레이 아저씨는 담배와 함께 자기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주고, 자기가 원하는 건 다 채워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기다렸다. 그러나 한잠 자고 일어났는데도 레이는 오지 않았다.
우나는 늦은 밤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며, 술집 등에 들어가서 레이를 찾았다.
어른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아빠 이름이 레이”라고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술집의 아저씨들의 시선은 레이의 시선과는 다르고, 그래서 뛰쳐나왔고, 그러나 밤길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남자들은 더 무섭다.
우나 혼자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경찰에 연락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경찰이 오고, 우나는 “아저씨가 나를 만지지 않았다. 내가 아저씨에서 ‘도망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나는 그게 비밀로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았고, 레이 아저씨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까지 알았다. 그러나 경찰들은 눈치를 챘고, 너는 소아성애자에게 강간당했다고 알려주고 정액도 채취했다. 그리고 또 알려준다. 소아성애자가 너에게 원한 건 단 하나였고(잠자리), 그걸 얻어서 사라진 거라고.
레이가 말하는 그날: 일을 치르고,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 그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면’, 알면서도 ‘지속’하고자 했다면, 큰 용기가 필요했겠지. 그래서 술을 마시러 갔고 돌아와보니 방은 이미 정리 중이었다.
-정황상 모텔에는 우나를 ‘숨겨서’ 들어간 거 같다. 우나가 레이를 찾기 위해 방에서 뛰쳐나왔을 때 모텔 주인은 당황하며 “넌 여기 있으면 안 돼”라고 했으니까.
레이도 뒤늦게나마 우나를 찾으러 다니고, 우나가 납치라도 당했을까 전전긍긍한다.
찾다가 지쳐 술집에서 들어가자 누군가가 먼저 묻는다. 혹시 딸 잃어버렸냐고, 근데 여기서 뭐 하냐고? 질문을 받고 레이는 도망친다. 이때 레이를 보고 수상함을 느낀 사람들도 경찰에 연락했을 수도 있겠다.
결정적으로는 레이가 자기 손으로 직접 사람을 잃어버렸다고 경찰에 연락한다. 그 연락으로 레이는 검거됐을 거고.
법정에서는 “죄책감을 느껴서 달아났다"라고 말을 해야 유리하다고 변호사에게 조언받았고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한 번의 실수, 그러나 죄책감을 느껴서 도망쳤다는 쪽이 상대적으로 그나마 나은 반응이니까.
사랑해서 한 것이고 우리는 계속 관계를 지속할 생각이었는데 잠시 술을 마시러 갔던 것뿐이라고 하면 더 미친 소리이고, 재판에서는 레이 본인에게 더 불리할 테니까(아동을 지속적으로 착취하려 했었다는 의도, 그런 의도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이를 버려두었다는 의미의 진술이니까).
변호사의 조언대로 레이는 법정에서 "달아난 것"이라고 말했고, 거기에 우나는 이미 자신이 그날 ‘버려졌다’고 느끼고 레이와의 만남이 끝났으니... 레이가 자신을 찾으러 다녔고, 모텔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했었다는 건 몰랐고, 15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소녀와 성관계를 맺은 죄를 지었다는 건 변하지 않으나... 우나는 조금 다른 말을 한다. “날 내버려 뒀다는 사실은 변함없잖아요.”
우나는, 나이 많은 남자가 나와 잠자리를 한 것보다, 경찰들이 설명해 주듯 나를 강간하고 착취한 것보다, ‘나를 혼자 두고 사라진 것’이 엄청나게 큰 상처가 됐다는 의미의 말이다. (여기서 우나를 보는 나의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레이의 마음과 상관없이, 우나가 레이를 사랑했음이 느껴져서).
그렇게 둘이 숨어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회사에서의 난리통도 지나가고 대부분 퇴근했는지 건물이 조용하다. 불도 꺼져있고. 둘은 화장실에서 나온다.
우나가 피터에게 "와이프가 이런 이야기까지 다 알고 있냐"라고 묻자, 피터는 "사실 와이프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실토한다. 와이프가 다 알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고.
"몇 살이에요?"
"나보다 한 살 많다."
"섹시해요? 처진 피부에도 흥분이 돼요? 어떻게 하는 걸 좋아해요?"
-레이가 소아성애자라면 레이 본인보다 한 살 많은 여자에게 흥분할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우나에겐 그게 너무 중요하니까 묻는다.
우나의 이런 질문들에 레이는 답한다. “넌 치료가 필요해!”
둘은 다시 격앙되고 말리고 하다가 신체적으로 가까워지자 우나가 묻는다. 그때의 내 생각하냐고, 생각하면서 자위도 한 적 있냐고.
/너무나 슬픈 건... 이게 그를 비난하는 말이 아니라는 거 같았다는 점이다.
그런 대화를 통해 섹슈얼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캐비닛 옆에서(옷을 갈아입는 곳이라 cctv가 없는 듯) 옷을 벗고 몸을 섞으...려다가 피터가 멈춘다. 멈추는 피터를 보고 우나가 묻는다.
"왜요?"
"난 너랑 있으면 안 돼."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는 가해자고 우나는 미성년 피해자였으니까. 그들에겐 과거가 있으니까)
그런데 우나는 이렇게 묻는다.
"내가 너무 늙어서요?"
피터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뜨고, 우나는 눈물을 흘린다.
-당신이 소아성애자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사랑'했던 거라면, 지금의 '늙은 나'도 '사랑'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듯한 우나의 조각들이 너무나 슬펐다.
피터는 나가버리고...
-피터는 우나와 법적/도덕적으로도 같이 있으면 안 되고, 같이 있으면 안 되는데 우나는 자신의 사랑을 원하고 있고. 그리고 이 모든 건 어떻게 보면 복수를 향한 함정일 수도 있으니-성인이 된 우나를 보고 '기자 같은 거 아니냐고' 물어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피터는 우나의 의도를 의심했었다- 피하는 게 최선이라고 느낀 것 같다.
우나는 혼자 다시 투명한 창으로 된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스콧이 문단속을 하러 온다.
우나는 “그 사람은요?”라고 묻고-자신이 여기 있는 게 민폐인지, 언제까지 있어도 되는지는 관심 없다. 오직 피터에게만 관심이 있다.
스콧이 피터는 이미 퇴근했다고 하니까. 우나는 스콧을 뒤로하고 “레이!”를 외치며 뛰쳐나간다.
우나는 스콧의 차를 얻어 타고(분명히 우나는 '운전'을 해서 왔었다. 의도적으로 스콧을 유혹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차 안에서 술 한 잔 사줄 수 있냐며 유혹하다가 스콧의 집에까지 가게 된다.
스콧의 집에서 스콧과 섹슈얼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러다가 우나는 갑자기 피터가 자기 아빠라고, 그 집에 가야 한다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스콧은 어리둥절하지만 그냥 알겠다고 한다.
-뜬금없는 우나의 발언이지만 우나의 입장에서 피터=레이가 자기 아빠라는 건 어쩌면 우나의 평생 진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나를 지켜주는, 부모보다 더 아빠 같은 사람이고 나는 그의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느꼈을지도.
스콧이 우나를 위해 먹을 것을 만들어주는 사이 우나는 스콧의 집을 구경하다가 스콧의 전 여자친구가 두고 간 원피스를 발견하고 그걸 그냥 입는다. 노출이 없는 하얀색 레이스 원피스... 클럽에서 춤을 추던 우나, 혹은 직접 운전해서 피터의 직장에 찾아오던 모습에 비해서 소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우나는 엄마의 부재중을 내내 무시하다가 뒤늦게 엄마에게 전화도 한다.
엄마는 어디냐고, 경찰에 신고하려는 참이었다고 한다.
-성인 된 딸이 몇 시간 연락 안 된다고 이 난리를 치지만, 사실 그 어릴 적에는 우나가 몇 시간씩 없어져도, 심지어 밤에 사라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니 레이와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어릴 때는 방임하고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나서는 구속하는 아이러니함에 기가 막힌다.
우나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저 숨기는 데만 급급하셨죠.”
-우나에 대한 그 어떤 치료나 대처가 없었고, 그냥 덮고 넘어가려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남자(범죄자)는 처벌받고 사라졌으니 굳이 그 동네를 떠나지도 않았던 거겠고.
-물론 부모가 이사를 택하지 않은 것은 자식을 위하지 않는 게으름이고 안일함이지만, 우나의 입장에서는 '이사를 가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핸드폰 같은 것도 없는데 자기가 이사를 가버리면, 레이 아저씨가 자기를 찾고 싶어도 찾아올 수 없을 테니까.
물론 실제로는 레이가 출소 후에라도 우나를 다시 찾아간다면 재수감될 수준의 사건이지만... 우나가 레이를 만나자마자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다"라는, 묻지도 않은 얘기를 덧붙인 것에서 짐작해 본다.
이때 피터네 집은 파티 준비 중이었다. 피터는 평범하게 집에 와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아내의 귀가에 둘은 파티 전에 섹스도 한다(피터가 소아에게만 반응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로 집어넣은 장면인 것 같다).
그런 뒤 파티를 준비하고 손님들이 찾아오고... 우나가 스콧의 안내로 파티에 등장한다.
우나는 웃으며 피터의 아내에게 다가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묻고(4년 맞음), 행복하시냐고 묻는다. 피터의 아내는 조금 어리둥절하면서도 묻는 말에 잘 대답해 준다.
그러고 있는 우나를 발견한 피터는 당연히 마음이 복잡했을 거고... 이때 피터는 스콧을 불러 우나를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상사의 말에 스콧은 우나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지만, 우나는 스콧을 거부하며 화장실 좀 간다며 집 안에 들어간다.
집안을 둘러보던 중 스티커로 꾸며진 방문이 있는 걸 보고 그 방에 들어간다. 문을 여니 누가 봐도 여자아이, 소녀의 방이다. 우나는 그 방 침대에 눕는다.
곧이어 어떤 여자아이가 들어와서 누구냐고, 왜 내 침대에 누워있냐고 하며... “우리 엄마 알아요?”라고 하는 걸 보니 피터의 아내가 데려온 아이인 것 같다.
피터가 쫓아 올라오고, 아내의 딸과 대면한 우나를 발견하고, 우나는 뛰쳐나가고... 그 상황에서 우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피터는 알아챘다.
집안에 아이가 있는 걸 봤고, 심지어 그게 아내가 데려온 아이라면? 우나는 피터가 '그 아이' 때문에 결혼했다고 생각한 것 같고, 그 생각을 피터는 알아챈 것이다.
집을 뛰쳐나간 우나를 쫓아가 붙잡는 피터.
멀리서 무슨 일인가 지켜보는 피터의 아내와 스콧.
피터가 먼저 말한다. "그런 거 아니다. 내가 보살피는(내가 보호자인) 아이일 뿐이야."
우나는 대답이 없다.
“그 또래 아이에게 욕정을 품는 일은 다시는 없다”라고도 말한 피터는 어린아이의 뺨에 키스하듯 우나의 뺨에 키스한 뒤 덧붙인다. “너밖에 없다. You are the only one.”
여기서 우나가 소리라도 지르거나, 그들(피터의 아내, 스콧 등)에게 가서 이 사람 소아성애자다, 이 사람이 과거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는 식의 말만 해도 피터의 가정도 직장 생활도 다시 박살이 날 수 있다. 하지만 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터의 손을 빠져나가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위 장면이 아니고 진짜 마지막 장면은 문제의 그날 모텔방에 혼자 남겨져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갖고,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돌아보던 어린 우나이다. (아래 사진).
그날에 멈춰있던 우나에게, 피터의 마지막 말이... 이제 우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답이 되었을까?
+
피터가 소아성애자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우나(피해자)의 입장에서 그가 소아성애자인 게 나을까 아니면 나를 사랑하긴 했다고 생각하는 게 나을까?
가해자의 변명이나 핑계와 별개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오히려 피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우린 진짜 사랑했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기도 한다고 하지만, 그런 식의 세뇌라도 필요하다면 그게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 맞는 건지도 모르지.
그리고 여러 정황상 피터는, 그 어린아이에게 욕정을 느끼고 행동으로 옮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건 맞지만 소아에게만 반응하고 어린 여자면 무조건 접근하는 소아성애자는 아니었던 거 같긴 하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피터가 현재 아내와의 성관계 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 같다-
소아성애자가 맞든 아니든 간에 그는 과거에 범법행위를 했고 그 행동에 대한 죄는 조금도 덜어지지 않는다. 이건 정말 중요한 사실이므로 재차 강조한다. 그를 감싸거나 두둔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 영화의 원제목인 우나가 편해졌기를. 그래서 이제 15년 전 그날 혼자 남겨졌던 모텔방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날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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