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호 Sep 23. 2024

엄마의 두번째 일

1987년 5월 

엄마가 찾은 두번째 일은 실밥따기였다. 처음에 엄마의 일거리는 이불봉투 같은 커다란 봉지에 담긴채로 우리집 문간방으로 들어왔다. 봉지안에는 내가 가져보지 못한 인형이 가득했다. 나는 인형을 가진 적이 없었다. 대신 나에게는 보라색 베개가 있었다. 언제부터 썼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어린이 베개에는 보라색 모자를 쓰고,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긴머리 소녀가 예쁜 나무 울타리에 앉아있는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언니가 학교에 가고, 엄마아빠가 가게일로 바쁜 그 시간에 나는 그 베개를 안고 업고 다니며 인형처럼 가지고 놀았었다. 새침한 소녀는 여전히 뒷모습만 보여주는 채로…. 


비록 내가 인형을 가져본 적 없다해도 엄마가 부업을 위해 가져오는 인형들은 별로 탐이 나지 않았다. 이게 엄마의 돈벌이라는 분별이 있기도 했지만 한눈에도 별로 예쁜 인형은 아닌 이유가 더 컸다. 균형도 안 맞고 별로 예쁘지도 않은 인형에는 일부러 붙여놓은 것 처럼 실밥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턱을 괴고 엄마가 일하는 것을 구경했다. 엄마가 손질을 하고 나면 씻은듯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수많은 실밥을 떼고 나면 5원. 


어떤 날은 헝겁을 길게 잘라서 만든 끈에 단단히 묶인 셔츠 뭉치가 집에 가득 쌓여있기도 했다. 셔츠가 가장 자주 문간방을 침범했다. 인형처럼 못생긴 단색 카라셔츠였다. 우리집 본채에 세들어사는 부부가 실밥따는 일을 했다. 그게 그들의 본업이었는지 부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부부일을 도와주는 것 처럼 그 일을 같이 했다. 힘들게 일을 하고 우리의 문간방으로 돌아온 엄마는 “기죽지마. 우리가 주인이야. 왜 그렇게 그 사람들 한테 기죽어서 그래?” 라고 말하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내가 어떤 부분에서 기죽었었나 가만가만 곱씹어보았다. 


그 해 여름, 대구에 사는 큰 이모네 막내 딸인 주희언니가 엄마일을 도와주러 우리집에 왔다. 언니는 고 1이었는데 나는 주희언니가 좋았다. 나에게 주희언니는 완전히 어른이었고, 연예인처럼 예뻤고, 엘리베이터걸처럼 사근사근했다. 언니가 말하는 사투리가 좋아서 나는 언니 말투를 열심히 따라했다. 주희언니 덕분에 더 본격적으로 일을 할수 있게 된 건지 엄마는 독립을 해서 우리집에서 셔츠실밥을 땄다. 엄마가 독립한 건지 밀려난 건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일 욕심 많은 엄마가 밀려 났을리 없다. 


그 해 여름, 선풍기가 돌아가는 문간방에는 엄마의 쪽가위질 소리가 쉴틈없이 들려왔고, 선풍기 바람을 타고 실밥도 폴폴 날렸다. 하루는 돌이 막 지난 민수가 집이 답답했는지 계속 울어댔다. 주희언니는 칭얼거리는 민수에게 아이스크림 사러가자고 살살 달래서 민수를 데리고 나갔다. 언니도 주희언니를 따라나섰다. 나는 엄마를 돕는다고 일부러 따라가지 않았다. 엄마와 둘이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귀했다. 


막 돌을 지난 민수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던 주희언니와 언니는 길에서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걸음에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는 길부터 시끌시끌 했는데, 들어보니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길에 뭐가 있어서 봤더니 돈이었고, 그래서 육천원이나 되는 돈을 주웠다고 했다. 언니와 주희언니는 돈독한 한 편이 된 것 같았다. 나도 따라갈 걸. 엄마는 웃으면서 “야, 내가 오늘 아직 오천원 못벌었을텐데… 나가서 길이나 보고다니는게 낫겠다.” 했다. 엄마와 한 편이 된 대가로 나는 지고 말았다. 

이전 03화 엄마의 첫 수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