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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Jan 11. 2024

천명과 천벌




그예 청년이 죽었다.

청년의 나이 이제 서른둘

아직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젊어도 너무 젊은 나이에 그가 죽었다.

 

청년이 갑자기 쓰러지기 오래전부터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고 얼마 전에는 자주 황달이 왔다.

찾아간 병원 의사가 간(肝)에 문제가 있다고 청년에게 여러 번 이야기하였지만 청년은 흘려들었다.


의사가 작성한 사망확인서 사인(死因) 란에는 '급성 간경화'라 적혀있었고 의사가 말한 그대로였다.


장례식장에 걸려 있는 영정사진 속 청년의 모습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어두운 얼굴이었다.

그 사진 아래에 청년의 늙은 노모가 가뜩이나 작은 체구를 쭈그리고 앉아 오는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노모는 시선을 한 곳에만 두고 문상객이 오면 일어서고 그들이 가면 이내 자리에 털썩 앉았다.


문상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다 온 문상객들은 영정사진 앞에서 두 번 절하였지만 하나같이 진심으로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아들을 앞세운 늙은 노모는 문상객들과 눈을 맞추지 않았고 문상객들도 노모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예부터 남의 상가(喪家)에 문상을 가면 꼭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나오라 하였다.

고인이 황천의 길로 떠나기 전 이승의 사람에게 베푸는 마지막 선물이니 그리하라 하였다.

음식을 사양하면 망자가 서운해한다고 그리하라 하였다.

그것이 또한 망자에 대한 산 사람의 선물이라 하였다.


그러나 문상객 중 누구도 청년의 장례식장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식사는커녕 배(拜)를 마치고 이내 그곳을 빠져나가 버렸다.


"나는 쟈가 이래 죽을 줄 진작부터 알았데이.

우예 천명을 거역하고도 지가(자기가)천벌을 피할라 캤노 으이?

이런 거 보마 하늘은 있는기라.

암만 있고 말고

천벌이 있고 말고"

 

문상을 다녀간 문상객들이 입을 맞춘 듯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였다.


청년이 세 살 되던 해 그의 아버지가 속병으로 죽었다.

병원에 한번 가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병명을 알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이 그저 속병으로 죽었다고 하였다.


문상을 다녀간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의 사인(死因)과 아들의 그것이 같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청년의 아버지도 술로 얻은 병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청년은 아버지에 관한 것은 기억에 하나도 없었다.


그는 학생의 신분이었을 때 공부에는 관심도 없었고 글 재주도 없었다.

청년의 어머니는 그래도 유일하게 하나 있는 피붙이 아들을 고등학교만이라도 공부를 시키려고 콩나물, 두부를 만들어 팔고 남의 집 식모살이도 하였다.


그러나 청년에게 어머니는 안중에 없었다.

그가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기도 전부터 탈선을 하더니 중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삐뚤어져갔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어떤 때는 학생들은 가지 못할 사창가를 출입하기도 하였고 다른 패거리들과 자주 패싸움도 하였다.


청년의 어머니는 그래도 자식이라 내 아들이 친구들을 잘못 사귀어서 저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청년 친구의 어머니들은 청년을 보고 자신의 아들이 저 아이를 잘못 만났다고 푸념하였다.


어머니가 억지로 넣어 놓은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이 되고 얼마 있지 않아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친구의 돈을 뺏으려 그 친구를 폭행하였는데 폭행의 정도가 너무 심해 맞은 친구가 많이 다쳐 학교에서 청년을 퇴학시켰다.


그 퇴학이 청년을 더욱 흉폭하게 만들었고 청년을 가출시켰다.

집에서 나가면 거의 반년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쩌다 집에 들어와서는 어머니께 돈을 요구하였다.

어머니가 청년에게 건넨 돈은 늘 부족하였고 급기야 그는 어머니에게 폭행을 하기까지 하였다.


세월은 청년을 더 난폭하게 만들었고 어머니를 더 작고 연약하게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런 청년을 호래자식이라 흉을 보고 그 누구도 그를 상대하며 가까이 두려 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이 둔 거리만큼 그는 어머니께 더 집착하였고 어머니는 아들을 피해 다른 집에서 자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늘 남편 복 없는 여자가 자식복도 없다며 울었다.


그를 두고 사람들은 천륜을 버린 호래자식이라 하며 천명을 버린 패륜아라 하였다.


그랬던 청년이 죽었다.


청년은 정말 하늘의 명을 어겼을까?

청년은 정말 그것 때문에 하늘의 벌을 받아 죽은 것일까?


하늘은 사람에게 술을 마시지 말아라 명하시지 않았다.

하늘은 사람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도, 사창가에 얼씬하지 말아라고 명하시지도 않았다.


그러면 하늘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명하셨다는 말인가?

하늘이 사람들에게 명하신 천명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하늘의 뜻은 세속의 인간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크고 위대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하늘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작고도 간단한 것을 명하셨다.


그것은 바로 죽지 말고 살아라는 것이다.

삶의 본능에 충실하라 명하셨다.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한다.


먹으려면 허기를 느껴야 하는데 하늘은 몸의 에너지가 다 되어 갈 때 사람들에게 허기를 느끼게 해 주셨다.

그럴 때면 먹으라고  천명을 내리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천명을 어겼다.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식사를 거르고, 일이 바빠 먹을 시간이 없다며 밥을 건너뛰었다.

하루 세끼를 먹으라 천명을 내렸으나 밥 먹을 시간이 없다, 다이어트해야 한다며 하루에 두 번, 심지어 한 번만 먹는 사람도 있다.


죽지 않으려면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려고 하면 몸이 나른하고 졸려야 하는데 하늘은 하루의 끝 밤이 되면 사람들에게 눈꺼풀에 무게를 주어 눈이 감기게 하고 머리를 몽롱하게 하여 잠이 오게 해 주셨다.

그러면서 하루종일 수고한 몸을 쉬고 잠을 자라고 천명을 내리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천명을 어겼다.

회식을 해야 한다고 잠을 미루고, 일을 해야 한다며 잠을 참고, 공부를 해야 한다며 잠을 건너뛰었다.

하루에 여섯 시간을 잠을 자라 천명을 내렸으나 잠을 적게 자며 일하고 공부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며 천명을 예시로 어겼다.


죽지 않으려면 먹은 것을 소화시켜 몸 밖으로 배출을 해야 한다.


마신 물은 소변으로, 먹은 음식은 대변으로 하루에 한 번, 늦어도 이틀에 한 번은 먹은 것을 몸 밖으로 배출을 해야 하는데 하늘은 사람이 몸의 직감으로 자신이 먹은 음식이 소화가 다 되어 더 이상 몸에 머물 이유가 없을 때 요의(尿意)를 느끼게 하여 몸 밖으로 그것을 배출하라 천명을 내리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천명을 또 어겼다.

어제 먹은 것이 없다, 운동을 하지 않아 장 기능이 약해졌다 하며 거의 열흘에 한 번씩만 소화된 그것을 몸 밖으로 배출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의료의 힘을 빌어 관장이라는 이름으로 배출을 하기도 한다.


죽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일생을 살아야 하는 식물이 아니고 움직여야 생존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천명마저 어겼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 운동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며 자신이 식물인양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늘에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천벌을 내리셨다.

제때에 먹지 않고, 제때에 자지 않고, 싸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각종의 병을 내리셨다.

그것이 천벌인 것이다.


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천명에 따르는 것이고 그래야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은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 중에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이성과 사고(思考)의 능력을 주셨는데 그 이성적 사고에 충실하지 못하고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면 천명을 어긴 것이라 여기신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은 금수(禽獸)들도 하지 않는 것인데 하늘로부터 받은 이성과 사고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고 하늘이 주신 그것을 가지고도 한 배임의 죄로 천명을 어긴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지극히 간단한 천명을 지키면서 살아야한다.


그래야 하늘이 주신 명을 천수(天壽)라 하는데 그 천수를 다 누리고 죽는 것이 천명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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