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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Aug 13. 2024

우린 모두 만난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회 시간에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배운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연필도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친다. 우선 연필의 원료가 되는 나무와 흑연을 마련해야 한다. 그다음 준비한 원료를 가공하여 연필을 만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연필은 도매상에게 운반된다. 도매상은 소매상에게 연필을 판매한다. 우리는 그제야 연필을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다.



신영복 선생님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관계의 단절'로 보셨다. 나와 지속해서 긴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 악한 행동을 하기는 어렵다. 현대 사회는 그 관계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사라진 듯하다. 관계의 지속성이 사라지면 인간은 점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노인에게 막말하는 청소년이 생긴다. 오늘 보고 말 사람이기 때문이다. 옆집 아줌마에게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사기를 친다. 한탕 크게 사기 치고 떠나면 앞으로 볼 일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의 공간, 나의 생활을 조금만 더 세심하게 살펴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무한정 늘어난다. 길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도, 매번 같은 지하철을 타지만 모른 척 지나가는 이들도 내 삶에 도움을 주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더위가 슬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날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야외에서 달릴만한 날씨였다. 그냥 러닝머신 위를 뛸까 잠시 고민했지만, 더위보다 러닝머신 위의 지루한 풍경이 더 싫었다. 유튜브에서 누군가가 잘 편집해둔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유산소는 음악빨, 10km 달리기 핵가능 최애곡들'. 달리기를 시작했다. 귓속에는 제목도 가수도 모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쁜 호흡이 조금 안정되자 문득 사회 시간이 떠올랐다. 



가수도, 제목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이 음악과 만나고 있다. 이 노래는 나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우선 작곡가가 심혈을 다해 노래를 만든다. 작사가는 그 곡에 어울리는 가사를 붙인다. 가수는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자신만의 특성을 살려 노래를 부른다. 밴드는 각자의 악기를 조화롭게 연주한다. 이런 치열한 과정을 거쳐 음원이 탄생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음원은 각 음원사이트에서 판매된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되기도 한다. 



요즘은 음원을 바로 듣지도 않는다. 다양한 음원을 테마에 맞게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플레이리스트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이들은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음악을 발굴하여 전달하는 '음악 전달자' 역할을 한다. 안타깝게도 아직 이들 영상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은 원 저작권자에게로 간다. 이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나는 생산자뿐만 아니라 전달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식도 생산자뿐만 아니라 지식을 편집하여 전달하는 전달자도 인정받는다. 음악도 언젠가 그런 시대가 오리라 믿는다.



이런 많은 이의 수고를 거쳐 음악은 내 귀를 울린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그들 덕분에 달리기가 훨씬 즐겁다. 과학적으로도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 신체가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고 한다. 믿어도 좋다. 내가 이미 수도 없이 실험해보았다. 가끔 실수로 이어폰을 챙기지 않고 달리러 나가는 날이 있다. 달리는 도중 이어폰 배터리가 바닥나는 때도 있다. 어떤 날은 인터넷 연결이 끊겨서 갑자기 노래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이유든 내 귓가에 노래가 울려 퍼지지 않으면, 나는 목표했던 거리를 다 달리지 못한다. 지루함이 엄습하고 급격히 숨이 가빠온다. 속도도 점점 느려진다. 혼자서 거리를 달리는 순간에도 나는 수많은 이들의 도움 덕에 더 즐겁게 달릴 수 있다. 




하루는 동네를 한 바퀴 달리고 있었다. 새벽이라 인적이 드문 거리였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고,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한 남자가 보였다. 스포츠 모자, 고글, 싱글렛(나시), 반바지. 러너가 틀림없었다. 그는 나와 마주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조용히 먼 곳을 보며 지나가려 하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갑작스레 나에게 따봉을 날려주었다. 당황한 나머지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며 지나갔다. 그 순간을 돌이켜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함께 따봉을 날려주지 못해서 조금 죄송하기도 했다. 언젠가 보면 다시 만나면 꼭 양손 따봉으로 갚아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분을 다시 한번 만났다. 이번에는 기쁜 마음으로 먼저 그분께 쌍 따봉을 날려드렸다. 

‘멋지십니다!’라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었지만, 워낙 수줍은 탓에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이럴 땐 I보다는 E가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워 전하지 못한 마음이 너무나도 많다. 



그날 이후 나에게 따뜻한 따봉을 날려주신 그분은 만나지 못하고 있다. 한동안 그분을 다시 만나고 싶어 일부러 같은 코스만을 달렸는데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믿는다. 우리가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마라톤 대회에서든, 동네에서든, 트랙에서든 한 번은 만날 것이라고.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그분께 꼭 전하고 싶다. 

“그날 날려주신 따봉 덕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린 모두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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