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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병택 Sep 25. 2021

오랜 동행, 함께 가다

어느 물리치료사의 생각과 일상

  환자는 치료사에게 어떤 존재일까? 아파서 그냥 찾아오는 사람일까? 질환과 증상을 해결해줘야 하는 고객인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인가? 내 치료 실력을 향상시켜주는 사람인가? 일의 의미를 찾아주는 사람인가? 치료사에게 환자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으로 삶의 과정 속의 한 존재이다. 나와 마주쳤던 수많은 환자는 크던 작든 미약하게나마 영향을 미친다. 환자에게 배운다. 좋았든 싫었든 배울 건 다 있었다. 결국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의 존재에 대한 정의는 치료사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경험만큼 다양한 사람이 생겼고,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생겼다.   

 

  임상에 있으며 기억에 남는 환자도 있고 죄송하게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환자도 있다. 첫 환자는 언제나 기억에 남는다. 가장 오래 치료한 환자도 기억난다. 직장을 옮기고 나서 연락을 하고 찾아와 받는 환자도 있다. 커플이 함께 치료 받으며 결혼식에 초대한 환자도 있었다. 3대에 걸쳐 치료한 환자 가족도 있었다. 대학 동창을 소개시켜줘 동창회에 참석한 듯 느낌을 줬던 분들도 있다. 유명 선수나 연예인도 있었다. 나에게 아낌없이 응원과 격려를 해준 분도 있다. 몇 년이 지난 후 치료에 감사하다고 다시 연락 준 환자도 있다. 셀 수가 없다.

   

  오래 치료한 환자는 8년을 치료했다. 희귀병은 아니었다. 처음 치료했을 때 4개월 정도 꾸준히 하고 많이 호전됐다. 계속 치료를 받았던 건 아닌데 어떻게 인연이 이어지는지 직장을 옮겨도 찾아 오셨다. 병원에 있을 때는 증상이 사라지면 치료를 마친다. 독립해서 체형교정과 체력운동도 하다 보니 계속 건강관리를 위해 오신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축하해드리고 잠깐돌볼 때 인사도 시켜주셨다. 그랬던 조카가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치료실을 누비고 다녔던 아이가 이제 학교에 갔다고 하니 시간이 빠름을 느낀다.    


  4년차 때 무릎 수술로 재활을 했던 환자가 있었다. 결혼을 몇 개월 앞두고 수술을 하셨다. 처가에서 큰 절을 받아야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하고 낫지 않으면 미루겠다고 했다. 내게 무릎을 구부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며 구슬땀을 흘리며 재활했던 분이었다. 2개월 동안 재활을 하고 예정된 날짜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치료가 끝나갈 무렵 청첩장을 주셨다. 꼭 와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결혼식을 참석했다. 신랑 입장 때 당당하게 걸었다. 나는 신랑의 무릎과 잘 걷는지만 보였다. 어른들을 모시고 인사를 드리러 다닐 때 내 무릎을 낫게 해준 담당 선생님이라는 소개에 가슴이 뭉클했다.     


  한 환자는 허리가 아파 재활을 했다. 좋아질 때쯤 다리 골절이 돼서 다시 허리 통증이 재발됐다. 골절 부위는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나을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장기간 움직이지 못하면서 근육이 많이 빠졌다. 몇 개월 동안 재활운동을 하고 많이 호전되셨다. 의지가 강하고 모든 운동을 잘 따라하는 분이었다. 그 분은 딸과 손녀도 나와 운동을 했다. 3대가 내게 치료를 받는 셈이었다. 가족을 치료하게 되는 경우는 꽤 있다. 부부, 모자, 모녀, 부자, 부녀, 형제, 자매, 남매 등 가족이 함께 온 경우는 특별히 기억이 남는다.  

  

  한 분은 대학 동창을 소개시켜 주셨다. 그 분은 치료를 받다가 다른 동창을 소개시켜 주셨고 그렇게 동창회 구성원들이 나를 찾아오셨다. 대학 때 이야기와 재미난 이야기들을 알려주셨다. 그 내용은 내 머릿속에 저장이 되어 있다. 가끔은 동창 간에 연락이 안 되거나 할 때 안부를 대신 전달하기도 한다. 전달 할 물건이 있으면 맡겨놓고 가신다. 어떨 때는 내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고 하셨다.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모르겠지만 나를 주제로 이야기 하신다는 말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편인 나에게 매번 올 때마다 질문을 많이 하시며 생각을 물어보는 분도 있었다. 청자에서 화자가 되면 느낌이 새롭다. 내 생각과 가치관을 알리게 되는 셈인데 치료에 관련 없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셨다. 그리고 응원하고 격려해주셨다. 어떨 때는 내가 치료를 하고 있는지 받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의사소통의 힘이 있음을 확실히 일깨워준 분이었다. 물론 그분은 잘 치료를 마치고 일상에 복귀하셨다. 그때 치료사의 정체성에 대해 가다듬게 된 순간이었다. 환자는 치료사가 되기도 한다.   

 

  항상 좋았던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통증이 머리에 끊이질 않고 너무 힘들다고 하신분도 있었다. 가끔은 그만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말을 해서 안타까웠다.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는데도 좋아질 때쯤 되면 다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상담과 약 처방도 받으면서 병행하셨는데 끝내 회복이 안 되었다. 인생의 목표가 안 아프고 딱 하루만 살아보는 거라는 말에 숙연해졌다. 과연 치료사로서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환자였다.     


  소개로 왔던 분 중에 한 달 정도 치료를 했던 분이 있다. 목 디스크 증상과 두통이 있는 환자였다. 온 몸은 딱딱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심해지는 분이었다. 조금씩 회복이 됐지만 내가 이직을 하면서 끝까지 치료를 못했다. 다른 동료에게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소개로 온 분이기도 하고 끝까지 함께 치료를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몇 년이 지나 소개해준 분과 연락이 닿았을 때 그분이 아직도 아파서 병원을 전전한다는 소식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물론 내 치료 실력이 부족해서 그때 못한 것도 있겠지만 지금이면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가 나지 않는 환자는 기억에 남는다.    


  내가 치료했던 환자가 TV속에 나와서 잘 활동하거나 운동하는 걸 보면 치료했던 때로 되돌아간다. 나를 기억 못하겠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치료했는데 기억이 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모르는 전화를 받았는데 자신을 기억하냐고 하시며 이야기를 하시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났다. 난감하면서도 기억이 나는 듯 대화를 이어갈 때쯤 나를 기억하고 전화해준 분께 더 죄송스럽다. 그 분의 기억엔 내가 있는데 나의 기억엔 없었다. 언제 한번 찾아오면 차 한 잔 드리겠다는 말을 하며 직접 보면 기억에 날게야 하는 나를 보았다.    


  치료가 끝나면 환자와의 관계도 끝날 것 같지만 돌고 돌아 다시 찾아오기도 하신다. 이직을 하게 되도 어떻게 소식은 이어졌다. 소개를 해주며 안부를 알게 되기도 한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마주쳐서 서로 반가워하며 인사하고 몸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다. 이런 일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치료실에 나가면 끝이 아니라 치료사의 삶에 어느 순간, 장소에 다시 만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치료할 때도 이후에도 어떤 치료사로 남을까 보다 그 사람을 기억하고 만남 자체를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오래 함께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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