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 본질

by 하랄라

한 달 전 ‘진로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제 3학년이니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이기도 했고, 심리학도로서 집단상담에 참여해보고 싶기도 했으며, 소정의 사례를 주신다고 해서 신청했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본인의 생각을 말한다. 나도 이제 말을 해야 하는데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말을 너무 못 하는 나를 보며 새삼 놀랐고, 집에 와서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글과는 달리, 생각함과 동시에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웠고, 무엇보다 ‘나의 생각’이랄 게 없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Talker보다는 Listener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하기보다는 질문하는 입장에 가까웠고, ‘조언을 구해야겠어’보다는 ‘나는 나를 가장 잘 알고, 나의 선택을 믿으니까 어차피 결국 혼자 결정할 것을 알기에 남에게 물어봐서 뭐 하나’라는 생각이 더 큰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집단상담에서 나는 내담자였다. 나의 생각에 대해 깊이 물어봐주고, 꼬리 질문을 계속 던져주는 상담자가 있었다. 말해놓고 ‘왜?’라는 질문이 들어올 때 심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냥’이라고 말할 수 없어, 내가 한 말의 이유를 고민하며 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2회 차 때부터는 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본 다음 말하게 되었고, 촉진자의 질문에 신이 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이 말할 차례인데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기까지 했다.

내가 말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사람들은 본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말에 ‘나는 아닌데?’라며 반기를 들던 나였다. ‘경청이 최고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던 나였다. 물론 혼자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촉진자는 나의 생각을 더 또렷하고 깊이 끄집어내 준다. 상담자는 나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고민 해결의 열쇠는 오직 나에게 있다. 상담자는 그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것이 상담의 본질이 아닐까.

엄마와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나갔는데, ‘엄마 나 HR 쪽으로 가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봤다. ‘별로’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내가 HR을 희망하는 이유와 그 분야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변호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별로’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HR 쪽으로 가볼까 ‘ 정도라고만 생각했을 뿐, ‘원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상대의 반응을 보고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된다. 나의 진로를 캐나다 살 적 이웃에게도 말을 해보았다. 좋은 생각이라며 무한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기분이 좋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먼저 나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꺼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다 보면 스스로 정리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순간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야 소통과 상담이 가진 힘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상담은 답을 주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답을 발견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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