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어느새 빈민가는 다시 고요를 되찾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가득 메우던 수많은 경찰 드론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거리는 숨을 죽인 듯 적막에 잠겨 있었다.
"소피, 화물 드론 한 대만 해킹해 줘."
나는 오르비트의 중앙통로를 드나들고 있는 화물 드론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응, 잠시만 기다려 줘, 노라."
"아, 잠깐.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멀리 행정구역 쪽으로 이동하는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휴고에게 메시지를 남겨 줘."
휴고는 사업가로서 오르비트 안에서 시스템 유지와 물류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 그가, 분노한 민중들의 화살이 향할 표적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휴고에게 남길 메세지를 천천히 말했다.
"우린 날이 밝으면 화성으로 갈 거야. 빈민가에서 혁명이 시작됐어. 당분간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혹시 모르니 떠날 준비도 염두에 두는 게 좋아. … 부디 몸조심해, 친구."
내 목소리는 최대한 담담하려 했지만, 마음속 불안은 감출 길이 없었다.
소피는 내 마음에 공감이라도 하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보안 메시지로 전송했어. … 그들은 무사할 거야, 노라."
그 순간, 옆에 있던 칼리뮤가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체온에서, 무언의 위로와 격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요했던 빈민가의 하늘을 가르며 거대한 화물 드론 한 대가 묵직한 로터음을 울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흙먼지를 소용돌이치며 우리의 앞에 천천히 내려왔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불빛이 쏟아졌고, 덜컥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적재함의 해치가 삐걱이며 열렸다.
나는 칼리뮤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그녀와 함께 적재함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물드론의 적재함 내부는 어둡고 차가운 금속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방에는 크고 작은 화물 상자들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고, 틈새마다 케이블과 고정 장치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드론 특유의 진동이 바닥을 따라 은은하게 전해져 와 앉아 있는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곳곳에는 적재 상태를 확인하는 작은 표시등들이 깜빡이고 있었는데, 붉고 푸른 불빛이 번갈아 켜지며 캄캄한 내부를 간헐적으로 비추었다.
“정말 수송선을 탈 수 있을까요? 계획에 차질은 안 생겼겠죠?”
화물 사이에 불편하게 걸터앉아 있던 칼리뮤가 물었다.
“괜찮을 거예요.”
나는 창밖의 어두운 윤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답했다.
“소피 말로는, 저번에 우리와 만났던 사람들은 붙잡히지 않았대요. 그러니 계획이 크게 바뀌진 않았을 거예요. 물론... 정확한 건 도착해 봐야 알겠지만요.”
칼리뮤가 나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묻는다.
“화성에 도착하면… 당신은 안전할 수 있겠죠?”
“음… 확실하진 않지만, 여기보다는 더 도와줄 사람이 많을 거예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당신은 그들을 믿어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지구의 자녀’. GU에 반기를 든 무장 저항 세력. 블레어를 통해 처음 들었을 때엔 그들의 저항 방식에 대해 회의감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GU의 실체와 지구의 자녀가 싸우는 이유를 알게 되며, 그들의 결의가 이해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리암 아저씨의 아들을 죽였다. 그리고 GU와의 충돌로 목숨을 잃은 이는 리암의 아들뿐만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둘 중 누구를 지지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믿어야죠. 그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칼리뮤는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동료들은 무사하겠죠...?”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칼리뮤는 파우치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단말기를 꺼내 들어 보였다. 단말기 옆의 빨간 LED가 깜박이고 있었다.
“이건 무선 신호기예요. 이걸로 동료들의 생체 신호와, 제가 탄 수송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요. 필요하면 제 위치도 알릴 수 있고요.”
그녀는 버튼을 눌러 화면을 내게 보이며 덧붙였다.
“제 동료들은 아직 무사해요.”
나는 화면의 기호들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이건 처음 보네요. 이런 것이 있단 말은 안 했잖아요.”
“그동안은 노라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럼 지금은요?"
내가 장난스럽게 되묻자, 그녀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입술을 달싹이며 말문을 열려다 망설였고,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는, 당신이 걱정돼요. 아주 많이요..."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내 눈을 응시했다. 그 눈빛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노라…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요...? 우리는 당신을 지켜줄 수 있어요.”
난 그녀의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한동안 말없이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내 반응이 민망했던 탓일까, 칼리뮤는 잠시 뺨을 붉혔지만 끝내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물론 당신은 인간이지만, 제가 잘만 설명한다면 동료들도 당신을 보호하는 데 동의할 거예요. 어쨌거나 당신은 그들에게도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칼리뮤, 나는…”
“이제 거의 다 왔어. 준비해.”
내 말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적재함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소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하장 구석에 내려줄게. 주변에 직원들이 있으니 조심해.”
드론이 크게 덜컹거렸다. 진동이 바닥을 타고 몸으로 전해졌고, 곧 로터의 웅웅대던 굉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적재함 해치가 느리게 열리며 바깥의 빛이 한 줄기씩 흘러들어왔다. 차갑고 어두운 금속 상자 같던 내부는 순식간에 눈부신 빛으로 채워졌다.
적하장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조명들이 눈을 찌를 듯 강하게 빛났고, 광활한 공간은 로봇 팔과 운반 장치들의 기계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굴러가는 바퀴의 금속음, 직원들이 주고받는 무심한 대화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우선…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집중하도록 해요.”
칼리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PS)
갑자기 바빠져 버린 일상에 아직 적응이 되지 않네요. 요즘들어 브런치에 들어오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연재일을 월, 수(주 2회)로 조정해야 할듯 싶습니다. 작가님들의 글도 방문해야하는데 예전처럼 정성스럽게 감상하기가 어려움이 따르네요.
뭐... 제가 더 부지런히 살아야죠. ㅎㅎ
항상 부족한 글에 방문해 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완결까지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