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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항해자들을 향한 편지

by 더블윤


처음 글이라는 것을 써보았을 때가 기억납니다.

고등학생 시절.
예전의 꿈 많던 소년이 이 시기에 이르자, 그저 막연한 마음으로 공부만 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난 성적도 아니었고, 특별한 목표도 없었죠.
그렇게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덧 수험생이 되었고, 2008년 겨울에 치러진 수능은 참담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지방대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당시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허영심에 사로잡혀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재수를 결심했죠.

아무도 없는 캄캄한 독서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원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기에, 동네 작은 독서실에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일상이었고, 집은 그저 잠을 자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였죠.
오롯이 공부에만 집중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곳에서 저는 나를 향한 자책과 가난에 대한 원망,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곳 없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시절의 감정은 고스란히 일기장에 남았죠.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시를 써보았습니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써 내려간, 온통 우울과 분노라는 감정으로 얼룩진 자화상과도 같은 시였죠.
(지금은 모두 폐기되어 그 당시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게 조금은 아쉽긴 합니다.)

1년 후,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전공은 '유기신소재공학'.
제가 원했던 학과는 아니었어요.
단순히 '공대는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휩쓸려 선택한 전공이었죠.
그러다 보니 의미도 재미도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한 대학 생활을 이어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학비를 위한 알바와 흥미 없는 공부를 반복하던 저는, 어느새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변화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고, 삶의 전환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달빛 하나 비추지 않는 어두운 밤, 잔뜩 긴장한 채 선임과 초소 근무를 서고 있을 때였죠.
보통 근무를 같이 나간 선임들은 노래를 시키거나 곤란한 질문을 하는 등, 후임들을 괴롭히기 일쑤였지만 그날 함께 근무를 선 선임은 달랐습니다.

"OO아, 이걸로 하늘 봐 봐."

선임이 건네준 것은 야간투시경이었습니다.
쓰는 순간 세상을 온통 초록빛으로 만들어주는 야간투시경은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모든 형체를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기한 물건이었죠.
하지만 지금껏 그걸로 하늘을 바라본 적은 없었어요.

선임의 말대로 야간투시경을 눈에 갖다 댄 뒤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심장이 격렬하게 고동쳤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초록빛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죠.
아무리 어둡고 맑은 날일지라도, 맨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을,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하지 못할,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 별들은 제가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하늘에서 오리온의 허리띠와 백조자리의 날개, 그리고 알데바란, 시리우스, 베텔기우스 등 형형색색의 별들을 찾던 시절의 소년을 말이죠.




코스모스를 올려다본 인간은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찬란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고, 닮고 싶었습니다.

무수히 빛나는 각각의 항성들의 밝기는 다를지 몰라도, 나 또한 저 별처럼 빛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옆에 있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심지어 내가 싫어하던 사람도 결국엔 저마다의 밝기를 지닌 채 이 우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화와 공존을 보고, 나는 눈물을 지으며 "모두가 아름답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저는,
각 별들이 살아가는 이 '지구'라는 우주를 사랑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이 '코스모스'를 사모하는 만큼 말이죠.

여러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영향을 받은 '코스모스'는 책의 페이지와 그림 안에 있는 코스모스가 아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언제나 동일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코스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리고 우리 인간은 아직 완전하지 못합니다.
지구 곳곳 어디에선가는 여전히 고통받는 이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고, 인류의 삶의 터전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상과 희망을 꿈꾸며, 내일의 삶을 기대합니다.
누구나 하늘에 있는 찬란한 '인류의 본향'을 바라보면, 회복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죠.




그래서,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상에 관한 생각을 책으로 써보았습니다.
최대한 차갑고 이성적인 말로, 전문적인 척하며, 내가 사랑한 '코스모스와 그 안의 인류'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코스모스의 찬란함에 비하면 볼품없는 책의 제목에 '코스모스'를 가져와 붙인 것이 민망하지만,
이 책은 여러분과 함께 코스모스를 항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제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항해를 꿈꾸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다 쓰고 나니 부족함이 많은 책이 되어버린 듯하지만, 부족한 제가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은 여러분 중 한 사람이라도,
밖으로 나가 고요하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코스모스'를 바라보게 된다면,
저는 그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습니다.

함께 항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과 함께 항해하길 바랍니다.


— 한없는 인류애를 담아,
From. 더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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