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소설
<항꾼에, 라는 말이 두고두고 참 좋았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표지에 배신당한 느낌이 들면서 ‘해방’이 그런 해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초록색 배경 위 예쁜 집과 빨간 깃발을 단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자의 그림이 있는 표지는 경쾌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해서 제목 그대로 ‘아버지의 해방’에 대한 유머러스한 이야긴 줄 알았다. 말하자면 잔소리꾼 엄마로부터 해방되는 아버지의 에피소드 같은.
정지아 작가는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 외 다수가 있으며 김유정 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라고 말한다. “빨치산의 딸이므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과 “ 그러한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고 생각했던 작가는 쉰 넘어서야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죽었다.” 첫 문장은 무겁고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두 번째 문장은 가볍다. 화자이면서 작가 자신이기도 한 ‘아리’는 아픈 과거를 숙명처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 더 이상 무거운 족쇄를 걸어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 한 톨조차 인간의 시원이라 중히 여겨 함부로 털어내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다. “오죽흐먼” “긍게 사람이제” 같은 말이면 이해 못 하거나 용서 못 할 사람이 없는 아버지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때 “아버지는 감옥에 끌려갔고,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불행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아버지를 되찾는다.
장례식장은 아버지의 인연들로 북적인다. 영정사진을 챙기고 장례뒤처리를 하는 정치적 동료 박동식과 장례식장 사장 황, “이따 또 올라네. 항꾼에 또”라며 계속 조문객들을 데리고 오는 아버지의 불알친구 박한우 선생, 전직 빨치산들, 어머니의 옛 시동생과 아버지의 전 마누래의 동생. 아버지가 살려준 전직 순경, 부모의 은사였던 소 선생의 장남, 잘 죽었다며 침을 뱉던 상이용사. 이들은 아버지 외의 어떤 접점도 없는 사람들, 아니 그 시절에 서로 총을 겨눈 사이였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언성을 높여 성토하는 대신 자신들 방식대로 아버지를 추도한다. 그 모습은 묘하게 평화롭다.
“저 질이 암만 가도 끝나들 안 해야.” (P.209) 가출한 ‘아리’에게 작은아버지가 말한다.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은 형이었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은아버지는 사는 내내 모든 일에 형 탓을 하며 살았다. 그런 형이 죽었다. 작은아버지의 길은 이제 끝이 보일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힘들고 고달프게 끝나지 않는 길을 살아내던 사람들은 언제쯤 그 길에서 해방될까?
감옥에서 나온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왜 자본주의자들의 도시 서울이 아닌 첩첩산중 반 내 골로 돌아왔을까? 그 답을 “긍게 사람이제” 라는 말 속에서 찾는다. 사람이니 실수도, 배신도, 사랑도, 용서도 할 수 있다는 것. 아버지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서받고 싶었을 거다. 민중을 외면하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철학이다. 아버지는 사람들과 섞여 ‘항꾼에’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온갖 원망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담배 친구였던 노란 머리 여자아이와 아들이기를 자청한 윤학수는, 대물림이 싫어 사람과 관계 맺기를 꺼리던 ‘아리’의 좋은 관계가 되었다. “항꾼에, 라는 말이 두고두고 참 좋았다.” (P.263) 라는 ‘아리’의 대사에서 온몸으로 빨치산의 딸이기를 거부하던 ‘아리’가 아버지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항꾼에’가 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 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갱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p.265) 노란 머리 여자아이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자신의 신념으로 무장한 아버지도 무서운 것이 있었다. 아버지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은 빨갱이도, 빨치산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리’는 아버지가 감옥에 가면서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되찾고, 아버지와의 사이에 놓여있던 유리 벽을 부쉈다. 드디어 아버지는 해방되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맞는 제목일까? 해방은 ‘구속이나 억압 같은 것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의미’-네이버 나무위키-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도 선택도 꿋꿋하게 지켜가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겉표지에서 읽어냈던 것처럼 아버지는 죽음으로, 치매가 깊어질까 봐 전전긍긍한 어머니의 잔소리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맞는 듯도 싶다.
책은 하룻밤 몰입하면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읽을 수 있다. 대사에 쓰인 남도 사투리는 등장하는 이들의 삶을 잘 녹여내는 현실감이 있지만 사투리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 작가는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다는 것을 드러내지만 책은 사회주의자에 대한 이념적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 주저할 필요 없이 읽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