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아이가 서럽게 울면서 집으로 왔다. 꽤 먼 거리를 새벽 택시를 타고.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는 더 크게 엉엉 소리내어 운다.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속으로 삼켰던 울음이 한꺼번에 소리가 되어 나오는가 보다. 고요한 새벽에 아파트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내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이를 닦달했다. 울먹이는 소리로 알아듣지도 못하게 말한다. 뭔가 상당히 억울한 일이 있다는 듯. 그래서 참지 못하고 여기에 오게 되었다는 듯. 아이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전에 아이랑 있었던 어떤 일화가 생각났다.
자신이 겪은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어른의 잣대와 관습의 잣대를 들이대어 교과서적인 훈계를 했다. “왜 그렇게 했어. 니가 잘못한 거야”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내 엄만데 왜 나한테 잘못했다고 해. 나도 잘못한 거 아는데 그냥 괜찮다고 말해주면 안 돼? 왜 계속 내 잘못이라고 혼내기만 해”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으니 마음껏 울어”
늘 먼저 “왜 그래?”라고 묻는 엄마였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한 사람쯤 “괜찮아”라고 말해줘도 된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지금은 아이의 온전한 지지자가 되어준다. 아이가 무엇을 해도 나는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성인이 된 아이가 자신의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아이의 잘못이 보여도 괜찮다고, 너의 잘못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도리어 아이가 말한다. “내 잘못인 거 나도 알아.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겠어” 그렇게 대화가 끝나면 아이도 나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가끔 일상을 이야기하는 남편에게 나는 근엄한 도덕 선생님처럼
“당신 잘못이네”“도대체 왜 그렇게 했어?”라고 말한다.
“이럴땐 그냥 내 편을 좀 들어주면 안 돼? 꼭 그렇게 잘못을 끄집어내야 돼?”
“당신이 애야?”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나서 나는 속으로 반성한다.
“괜찮아”라고 말해 줄 걸. 나 한 사람쯤 “괜찮아”라고 말해준다고 큰일이 일어날 것도 아닌데.
육십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런데 내게는 누가 `괜찮아`라고 말해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