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할머니의 일상과 추억이야기
반장에 임명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라고 기억된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생일 초대를 받았다.
그날 저녁, '내일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다'라고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엄마는 서랍에서 연필 세 자루를 꺼내주셨다.
'연필을 세 자루씩이나..?'
그 당시 우리 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껴 쓰는 것이 너무나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연필을 쓰다가 점점 줄어들어 작아지면, 쓰고 남은 모나미 볼펜대에 끼워 정말 끝까지 쓰려고 안간힘을 썼었던 기억이 난다.
내 필통엔 항상 볼펜대에 끼워진 몽당연필이 두 세 자루였다. 그랬기에 연필 세 자루는 내 기준 응당 커 보였다.
다음 날 의기양양하게 연필 세 자루를 쥐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가져온 선물들로 나는 완전 주눅이 들대로 들어버렸다. 공책세트, 연필세트, 필통, 장난감, 연필과 지우개 세트, 심지어 부반장이었던 친구는 꽃다발을 가지고 왔다. 아이들은 갖고 온 선물을 꺼내 보이며 생일파티 갈 생각에 들떠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반장, 넌 선물 뭐 갖고 왔어?"
"으응, 연필.."
"연필 세트?"
"어.... 아니.."
수업종이 울리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내 머릿속은 온통 생일 선물 생각뿐이었다.
'어떡하지..?'
수업시간 내내 '내가 가져온 초라한 생일선물 '생각에 공부가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슴이 불안으로 심하게 두 방망이질 쳤다.
수업이 끝나고 생일파티에 갈 아이들은 모두 학교 등나무 교실 아래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래도 일단 가보자는 생각으로 터덜터덜 등나무 교실 쪽으로 걸어갔는데
아이들이 생일자와 부반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것이 보였고, 나도 모르게 큰 나무 뒤에 숨어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엿듣게 되었다.
"생일 파티에 달랑 연필 세 자루가 모니?"
"누구야, 생일 초대 하지 마! 그냥 우리끼리 가자!"
"반장네 집 되게 가난한가 봐"
"난 꽃다발까지 사 왔는데, 연필 세 자루 그까짓 게 선물이야?"
"그래, 부반장말이 맞아, 반장은 같이 갈 자격도 없어."
" 자기도 창피하니까 안 오는 거 봐"
나무 뒤에 숨은 내가 보일까 봐 더더욱 몸을 웅크렸고, 결국 아이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신나게 떠들며 학교를 떠났다.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숨어있던 나무 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물은 집에 도착할 때 까지도 쉽게 멈추어지지 않았었다. 울면서 집으로 들어간 나에게 엄마는 깜짝 놀라며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나를 꼭 안아주셨다.
엄마가 되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니 우리 엄마 마음은 그때 얼마나 아팠을까 싶다. 아마도 연필 세 자루를 딸에게 준 자기 자신을 많이 원망하셨을 것 같다.
"엄마, 우리 집이 못 산대. 우리 집 진짜 가난한 거야?"
"누가 그래, 우리 집이 못 산다고?
"부반장은 꽃다발을 사 왔어. 나 말고 다 세트로 사 오고, 다 좋은 거 갖고 왔어, 엄마 나 너무 창피해서 눈물이 났어"
집에 가서도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홉 살 어린 나에게 '가난'이란 단어는 그렇게 '서러움'으로 다가왔다.
그날 밤 "내일 학교 안 가겠다"라고 엄청 떼를 쓰다가 결국 또 혼이 났고, "학교 안 가려면 공장 가서 돈 벌어와야 된다"는 엄마의 엄포에 억지로 등교를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특별한 이슈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고 기억된다.
가끔씩 신문에 요즘 아이들이 사는 곳과 부모의 차를 가지고 친구를 구분하고 사귄다는 어이없는 기사를 보게 된다. 어른들의 책임이다. 어른들이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나누는 얘기를 보고 듣고 배운다. 어릴 때 마음의 상처는 잊어버릴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오래가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도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나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