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둘째 주 월요일, 나사원이 메일창을 들고 다가왔다.
제목엔 “FYI, ETA, EOD”. 이부장은 커피를 내려놓고 말했다.
“FYI는 참고하라는 거고, ETA는 예상 시점, EOD는 오늘 끝. 이란 뜻이야”
얼굴이 풀리는 표정이었다.
팀 채널엔 또 다른 언어가 흘렀다. “TBD, ASAP, EOD” 뒤이어 “LGTM.” 이부장은 차분히 덧붙였다. “TBD는 미정, ASAP은 최대한 빨리, EOD는 아까 말해줬고… LGTM은 좋아 보인다는 확인이야”
스탠딩 미팅이 끝난 뒤, 이부장은 나사원을 창가 회의실로 불렀다.
“나도 신입 때 R&R, OOO 때문에 헤맸어. 한 장짜리 약어 메모를 들고 다니며 버텼지. 네 눈으로 다시 만들어봐. 모르면 표시하고, 바로 물어보고, 그 자리에서 적어.”
점심 뒤 나사원의 자리에 포스트잇이 줄줄이 붙었다.
FYI, ETA, EOD/COB, TBD, N/A. “N/A는요?” 묻는 나사원에게 이부장은 웃었다. “해당없음.” 지나가던 박과장이 엄지를 들었다.
“ASAP은 알죠?” 작게 “네…”라고 나사원은 말했다.
오후, 클라이언트 메일.
“PFA, need your R&R by EOD. OOO tomorrow.”
이부장은 낮게 말했다. “PFA는 첨부 확인, R&R은 역할 분담, OOO는 자리 비움이라는 말이야. 우리도 적당히 약어넣어서 답장해줘”
나사원은 한 줄로 핵심을 썼다.
다음 날, ‘Acronym Cheat Sheet’가 팀 채널에 올라왔다.
큼직한 글씨와 짧은 예문이였다.
임대리는 “오~깔끔!”, 박과장은 “팀 위키로 올리자” 라고 말했다.
이부장은 문서를 들고 김상무에게 다녀왔다.
오전 회의에서 이 문서가 화면에 올라왔다.
“좋습니다. 이런 정리가 대응 속도를 올려요.”
나사원의 귀가 붉어졌다.
오후, 고객사와의 긴급콜이 있었다.
“ETA? EOD?”
순간 정적. 나사원이 메모를 톡톡 두드리더니 또렷하게 말했다.
“FYI, 임시 우회는 EOD까지, 최종 패치 ETA는 내일 오전 목표입니다.”
전화기 너머 “Sounds good.” 이라고 고객사가 응답했다.
박과장이 등을 쿡 찔렀다.
“이제 약어 담당이네.”
이부장은 말했다.
“남들 익숙해지길 기다릴 때, 너는 먼저 정리했잖아. 잘했다”
며칠 뒤, 그는 문서를 최신화해 휴게공간에 붙였다.
상단엔 작게 ‘Working Smarter, One Note at a Time.’
임대리가 엄지를 들어보였고, 김상무는 말했다.
“온보딩 키트에 넣읍시다.”
이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약어 한 장이 야근 두 시간을 줄입니다.”
저녁, 빈 사무실. 나사원은 메모앱에 ‘IMO=In My Opinion, 내 생각에는, BTW=By The Way, 그런데’를 추가하고 마지막 줄을 적었다.
‘모르면 물어보기. 물으면 메모하기. 메모했으면 나누기.’
이부장은 그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선배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정답이 아니라 습관이다.
약어는 언젠가 익숙해지지만, 메모하고 공유하는 그 한 장이 반 발짝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