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지나가는 말'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

by 이부장

오후 4시.

사무실은 눅눅했고, 분위기는 더 무거웠다.


박과장이 맡은 차세대 플랫폼 A과제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임원 회의마다 진척도가 가장 먼저 올라왔고, 모든 부서의 시선이 쏠려 있었다.


임대리는 품질 이슈 리포트를 들고 와 한숨을 쉬었고,

나사원은 눈치만 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지금 이 팀의 우선순위는 단 하나였다.

A과제.

다른 일은 모두 뒤로 밀렸다.


그 와중에, 김상무가 툭 던진 말 하나가 있었다.


“B과제 말이야.

진행 상황 한눈에 볼 수 있게 대쉬보드 하나만 만들어 둬.”


가볍게, 정말 아무 뜻 없어 보이게.

박과장은 수첩 귀퉁이에 적어두고 잊었다.

아니, 잊으려 했다.


B과제는 매출도 작고 이슈도 없는 유지보수성 과제였다.

지금 상황에서 우선순위가 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며칠 뒤, 이부장이 박과장을 탕비실로 불렀다.


“B과제 대쉬보드는 아직인가?”


박과장은 A과제가 급하다고 설명했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기술적인 판단은 맞다.

하지만 정무적인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이부장은 말했다.

B과제는 얼마 전 퇴사한 임원이 맡던 일이었고,

그 책임이 김상무에게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A과제는 모두가 보고 있었다.

문제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B과제는 달랐다.

김상무는 잘 알지도 못하는 과제의 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대놓고 보고를 요구하기엔 너무 작은 과제.

그래서 가볍게 말한 것이다.

“대쉬보드 하나만 만들어 두라”고.


그 말의 진짜 뜻은 이거였다.


‘별일 없다는 걸, 내가 언제든 확인하고 싶다.’


그날 저녁, 박과장은 결정을 바꿨다.


임대리와 나사원을 불러 B과제 데이터를 정리했다.

화려함은 버리고, 핵심만 남겼다.


정상 가동 여부.

오늘 발생한 이슈 수.

최근 트래픽 추이.


한눈에 보이게.

안심할 수 있게.


저녁 8시, 대쉬보드 링크가 김상무에게 전달됐다.


잠시 후, 메시지가 왔다.


“확인했네. 깔끔하구만.”


짧았지만 충분했다.


그리고 5분 뒤, 김상무 명의의 전체 메일이 도착했다.


이번 주 A과제 주간 회의는 취소.

보고서는 서면으로 대체.

실무에 집중하라는 내용이었다.


사무실 여기저기서 작은 환호가 터졌다.


작은 대쉬보드 하나가

상사의 불안을 잠재웠고,

그 안도감이 팀의 시간을 벌어줬다.


그제야 박과장은 이해했다.


일은 말로만 오지 않는다.

의도로 온다.


상사가 원하는 건 완벽한 산출물이 아니라,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문제 생기면 바로 알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걸 읽어내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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