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길었던 연휴가 끝나니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옷장에서 가을 옷들을 꺼내고 침구도 두꺼운 것으로 바꿨다. 날씨가 쌀쌀해져서인가, 마음 한켠이 어딘지 쓸쓸하다. 사실은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제 복직 신청서를 쓸 날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리라. 달콤했던 휴직기간을 돌아본다.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쉽다는 마음이 대부분이지만 내년을 잘 준비하고 싶다는 마음도 존재감을 점점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1년간 쉬었다 한들, 교사로 지낸 날들이 10년을 넘으니 날씨가 쌀쌀해지면 내년 구상을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나 보다. 이런 익숙함을 뒤로 하고 올해 휴직을 한 이유는 아이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웬걸, 유치원보다 자유로운 시스템, 더 많은 친구들이 좋았는지 아이는 그리 오래지 않아 적응을 마쳤다.
급식을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금세 배고프다는 아이는 간식을 먹으며 귀여운 목소리로 학교생활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엄마, 오늘 자리 바꿨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인이랑 짝이 됐어요."
"지수는 참 마음이 따뜻하더라고요. 벌레가 교실에 들어왔는데 풀밭에 보내줘야 한다고 나갔다 왔어요."
"오늘 급식에서 라면이 들어간 김치찌개가 나왔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그거 저녁에 또 먹고 싶어요."
친구들과 지내는 이야기, 급식에서 뭘 먹었는지의 이야기를 주로 하던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얘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엄마 '오'를 쓸 때에는 세모 모양으로 써야 해요. 국어시간에 배웠어요."
"엄마, 굽은선이랑 둥근선이 다르더라고요? 수학시간에 학습지 풀었는데 틀렸어요."
"엄마, '우리나라'교과서에 통일 전망대가 나왔는데 꼭 가보고 싶어요."
"아... 오늘 '탐험'수업 두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공통점을 알아챘는가? 아이가 점점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에 새삼스레 충격을 받았다.
벌써 20여년 전의 이야기이다. 교대를 다닐 시절 내가 주로 배웠던 것은 어떻게 하면 '초등학생을 잘 가르칠 수 있는가' 즉, 수업에 관한 것들이었다. 왜 초등교사는 전문성이 있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던,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었던 수업이 기억난다. 또 패트병에 과일껍질을 넣어 초파리를 키웠고 어느 봄날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플라나리아를 잡느라 애쓰기도 했다. 축구, 농구, 뜀틀 등등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들을 배우고 이걸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게 대학교냐 고등학교냐 볼멘 소리를 했던 4년이었다. 임용고시도 마찬가지였다. 교육학, 교육과정, 수업실연, 영어수업실연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누가 봐도 수업능력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임용이 된 후에도 역시 선배들 앞에서 공개수업을 준비하고 협의회에서 칭찬도, 쓴소리도 들으며 수업을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았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그런 시절이 한 순간에 사라진 건 아닐 텐데 어느덧 초등교사의 미덕은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문제없이 잘 하교시키는 것이 되었다. 교사들이 자조적으로 흔히 말하는 교육보다 보육이 우선인 학교가 된 것이다. 내가 만약 오늘치 수업을 엉망으로 한다 해도 지탄받을 일은 별로 없으나 학생이 무릎이 까진채로 하교하면 성가실 일이 생긴다는 것은 교사들 사이의 상식이 되었고 살아남으려면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나는 조금씩 수업보다 아이들이 싸우거나 울지 않고 기분 좋게 하교하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교사로 변해갔고 그것이 정말로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초등교사라 믿었다.
그러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엄마, 읽던 거[일떤거]라고 하면 안 돼요. 읽던 거[익떤거]라고 발음해야죠. 오늘 학교에서 배웠어요." 이렇게 수업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수업이 이렇게 중요한 거였어? 여전히 아이들한테 큰 영향을 미치네?'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끔거려 불편했다. 그렇게 부끄럽고 민망한 채로 지내던 어느 날, 안방 서랍에서 낡은 기록 한권을 발견했다.
그것은 '수업 실습록', 교대 4학년때 수업실습을 나가서 쓴 노트였다. 그 안에는 그 시절 내가 교생들, 선배 교사들의 수업을 보고 쓴 좋았던 점과 고칠 점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고민들과 그 고민에 대한 선배선생님의 답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노트는 십수년의 시간을 넘어 그렇잖아도 부끄럽던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고 내가 잊고 있던 수업에 대한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물론 저 시절의 교실과 지금의 교실은 많이 다르다. 지금은 교사가 수업 말고도 신경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졌으니 말이다. 나의 말이 녹음되고 있을 수 있으므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해야 하며 학생들의 문제행동 정도가 심해져 그것에 온통 진을 빼는 날도 부지기수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가 목표가 될 수 밖에 없는 교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온전히 학부모로 지내는 올해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가장 잘 하고 내 전문성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때는 수업시간이라는 것을. 교실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기까진 어렵겠지만 약간의 설렘과 비장함 정도는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동태눈보다야 약간의 긴장이 더 낫지 않겠는가. 곧 끝날 학부모로서의 날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이제 슬슬 선생님 모드로 바꿀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