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휴직을 한 나의 하루는 온통 1학년이 된 아이의 스케쥴로 점철되어 있다. 등교부터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선다. 하교 시간을 맞춰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놀이 시간도 챙겨야 하니 아이 친구 엄마와 카톡으로 놀이터 약속을 잡고 재빨리 집에 와서 간식을 먹인 후 놀이터로 나간다. 그렇게 한동안 논 다음 집에 와서 책도 읽히고 수학 문제집도 풀리다 보면 어느덧 또 학원에 데려다 줄 시간이다. 셔틀이 오지 않는 동네에 사는 것이 서럽지만 어쩌겠는가, 10분 남짓한 거리임에 위안을 삼고 차에 시동을 건다. 이렇게 퍼즐같은 하루의 모든 조각을 맞춰 내려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내 온 에너지를 아이의 적응에 쏟은 첫 주가 지나고 남편은 출근한 뒤 아이와 남은 주말, 등산이 하고 싶노라는 아이의 즉흥적인 말에 코스를 고르고 산행 짐을 쌌다. 해빙기의 산은 봄기운이 완연하여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래, 등산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덕분에 나도 건강해지고 좋지 뭐,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갔다. 잠깐이지만 달콤한 자유시간, 등산으로 무거워진 다리를 소파 팔걸이에 처억 올려놓고 누워 유튜브를 켰다. 내가 구독하고 보는 몇 안되는 유튜브, 배우 이청아의 채널에 새 영상이 올라왔다. 취향에 대해 얘기하는 영상이었다. 오, 그렇잖아도 나는 이청아의 취향을 늘 동경하고 궁금하던 터였으니 금세 빠져들었다. 30분여의 영상을 다 본 뒤에 이청아 배우가 영상속에서 했던 몇 마디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저는 저에 대해 알아가는게 제일 재밌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눈이 반짝인대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편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언제, 어떻게 지금의 취향을 갖게 되셨나요?'
욕조에 물을 받고 들어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의 취향은 무엇일까? 딱히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아 더 쉬운 질문을 해 보았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그 질문에는 좀 더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먼저, 나는 계절 중에 봄이 가장 좋다. 특히 초봄에 내리는 봄비를 좋아한다. 겨우내 건조했던 공기가 습기를 많이 머금게 됐음을 느끼는 순간이 봄을 알리는 것 같아 따뜻해진다. 또 나는 양념이 안 된 고소한 파래김에 밥을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간장을 찍어먹어도, 곁들이지 않아도 김에서 나는 바다 향기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또 나는 여름에 그래픽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는 것을 좋아한다. 나중에 나이가 아무리 들더라도 펑키한 그래픽 티셔츠에 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나는 봄비가 내리는 공기 냄새를 좋아하지만 그런 날씨엔 아이가 바깥놀이를 할 수 없으니 아이를 챙겨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작정하고 느긋하게 봄비를 느낀 순간이 까마득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미가 안 된 파래김을 좋아하지만 구워먹기가 힘들어서, 또 남편과 아이가 조미김을 좋아하기에 조미김만을 주방 팬트리에 잔뜩 쟁여놓고 먹어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 그래픽 티셔츠를 좋아하는 나는 얼마 전 하와이 여행때 들른 진주만 박물관에서 1940년대의 빈티지 느낌이 가득한 그래픽 티셔츠를 발견하고 기뻤지만 시댁 식구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나만 이걸 사면 과소비로 비쳐질까 싶어 사지 못했다. 겨우 떠올린 내가 좋아하는 것들 뒤엔 이렇듯 아쉬움이 함께 딸려왔다. 내 취향을 당당히 내세우지 못하고 아이와 남편에게 양보한 기간이 어느덧 아이의 나이만큼 쌓였음을 깨달았다. 그 동안 내 취향은 발전할 기회를 잃었고 나는 정작 취향 좋은 다른 사람들만을 동경하고 있었음도.
취향이라는 것이 꼭 대립하는 것이 아닌데 왜 나는 아이의 취향에 내 것을 양보했을까? 내일부터 돌아올 다음 주엔 나를 위해 고소한 파래김을 사야겠다. 마트에 달래가 있었으면 좋겠다. 달래장도 만들어 같이 먹어야지. 그리고 맘에 드는 그래픽 티셔츠를 발견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은 한 사야지. 그렇게 내 티셔츠 컬렉션이 만들어져도 좋겠다. 또 비소식이 있는 날엔 우산을 쓰고 목적없이 걸어봐야겠다. 그냥 빗소리를 들으며, 공기를 느끼며.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 차곡차곡 쌓이도록. 그것들이 내 취향이 되도록.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얘기할 땐 확신에 찬 눈빛이 반짝이는 사람이 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