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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Oct 22. 2024

네가 온다

너의 화가 밀려온다

물먹은 타이어가 빗길을 가르며 달린다

새로 칠한 횡단보도 위에

네가 아닌 발소리들로 요란하다

덜컹거리며 몰려오는 바람 너머

비와 바람이 뒤엉켜 가을 잎들이 우수수 몸을 떤다

며칠 전 잃어버렸다던 우산 대신

살 하나가 나간

노란 우산이 가까워진다

텀벙거렸다가

촐싹거렸다가

내달렸다가

이내 빨간 신호엔 숨을 고르는 너.

네가 온다.


빗소리가 잦아들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요즘 아들과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이 아이가 만드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조심하는데도 어김없이 뒤엉켜버린다.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일이 반복되니 안 그래도 바쁜 아침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내가 도발에 넘어가버리면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지고 그게 매일 반복이 된다.


화를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 잘 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짜증과 화가 순간적으로 얼마나 강력하고 파괴적인 힘을 갖는지 역시 너무 잘 안다.


왜 화가 나는 것일까?

아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너무 다양하다.

엄마가 안 깨워줬거나, 아니면 너무 일찍 깨워줬거나

아침에 먹고 싶은 음식이 안 차려져 있거나,

아니면 아예 먹고 싶지 않거나

우유를 미리 따라 두어서 미지근해졌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따라 두었거나

엄마가 먼저 준비를 하고 출근하려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알아서 갈 건데 엄마가 서두른다거나,

엄마가 먼저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가거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거나.....

정말 그냥 숨 쉬는 행동 빼곤 다 화가 나는 것 같다.

숨 쉬고 있는 것도 화가 나는지 모른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 안의  불길도 순식간에 번진다. 그냥 놔두자니 엄마에게 소리 지르고 함부로 말하는 태도에 기가 질려버리고 한소리 거들면 그때부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접시에 자기 몫의 아침을 차려두었다. 언제나처럼 만화책 한 권을 척 놓고, 띄엄띄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우유도 같이 먹으라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식사 시간이 끝났는데도 우유가 그대로 이길래 우유를 먹으라고 했더니 미지근해서 먹기 싫다고 화를 냈다. 그러더니 새 우유를 꺼내 마셨다. 멀쩡한 우유를 버리는 꼴이 영 탐탁지 않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제 행동에 대해 핑계를 엄마의 잘못으로 둘러대며 화를 내는 모습이 못 볼 꼴이었다. 좀 잠잠해져서 화를 낸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왜 화를 내는 거야? 우유가 미지근해졌다고 화를 낼 필요가 있어?"

"나는 미지근한 우유를 먹기 싫어. 엄마가 우유가 식탁에 있다고 말 안 했잖아."

"엄마는 이미 말했는데? 네가 만화책을 보고 있으니까 못 들었나 보지."

"아닌데? 나는 엄마가 말했으면 들었을 거고 우유를 마셨을 거야."

"그러면 네 앞에 있는 컵도 안 봤다는 거야?"

"응. 나는 물인 줄 알았지. 엄마가 말을 안 해서 우유 안 먹었고 미지근한 건 먹기 싫어."


과일과 빵, 우유뿐인 단출한 아침식사지만 시간을 쪼개 내주는 그 음식을 함부로 하는 모습을 어떻게 그냥 바라볼 수만 있을까? 먹거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차려준 사람에 대해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것은 나만 당연한 일인 것 같아 허탈하고, 화가 났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누군가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어도 사실이었다.

이야기를 할수록 핑계를 대고,  

자기 잘못 보다 상대방에게서 이유를 찾는 모습.

감정 조절을 못하고, 폭발해 버린 다음,

후회하지만 또 반복하는 모습들.

아이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고, 그 모습이 못내 견딜 수 없었던 이유가 나랑 닮았기 때문이었나?


본성이 조급하고 감정 기복이 큰데, 도덕적 잣대는 엄격하고, 타인의 이목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

이제 작은 일엔 화내지 않는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안심했었는데

내 마음에서 쏙 빠져나온 것 같은 아이가 내 곁에서 그야말로 불같은 화를 내지를 때면

나도 기어이 그 화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버린다.

그렇게 폭풍 같은 시간이 매일 같이 반복되어 말들이 더 험악해지는 것을 느꼈다.


위기 상황 발생이다.

이때를 위해 주방 벽에 붙여놓은 서약서를 읽었다.

지난번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 가족들이 모두 화가 날 때 할 일! 이란 목록을 만들어두었다.

나는 적어둔 대로 일단 아이와 멀리 떨어지고, 나만의 방법으로(이날은 빨래 개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곁에 있는 딸아이에게 화를 전가하지 않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았다.

한결 좋았다.


항상 화를 내면 화를 낸 이유는 잊고, 아이에게 큰 소리를 치거나, 손을 잡아 끄는 행동 같이 아이에게 했던 행동 때문에 자괴감이 든 경우가 많았다. 넘실대는 화를 거스르려 하지 않고, 화나는 그 감정의 나를 그저 바라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씩씩댔다. 자신이 약속한 행동은 지키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마다 벌칙을 수행하기로 했는데 그건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아이도 화에 휩싸인 자신을 바라보길 바랐다.


아침 시간 그렇게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고 출근을 했다. 다행인 것은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켰고, 아이는 하교할 때 그때의 감정은 모두 잊은 듯 나에게 다가왔다.

말랑하고 따끈한, 끈적거리는 손을 언제나처럼 내밀었다.

아침의 일은 모두 잊은 채 나는 아이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네가 와서 참 좋다.

화는 고이고이 접어 비행기 날리고

엄마랑은 좋은 말 고운 말만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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