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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와 1인실

by 다시

달그닥 수저가 밥그릇 국그릇에 살짝살짝 스치는 소리가 정겹다.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여 학교 가는 딸 아침을 차려줬다. 지난주 수요일에 아들이 입원을 하고 어제 퇴원을 했으니 집에서 찌개를 끓여 밥을 한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아침엔 눈이 일찍 떠졌다. 어제 밤늦게까지 깐 마늘 냄새가 채 가지시도 않은 거실에 나와서 소파에 앉아 있으니 진짜 집에 온 것이 실감 났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병실이 아니라, 불편한 좁은 간이침대가 아닌 내 집.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이동식 링거대가 아니라 맛나게 밥 먹느라 나는 소리라니.. 이 소소한 차이가 좋았다.


남편이 어제부터 서울로 출장을 가서 아들 간병을 위해 이틀 동안 연가를 냈다.

교사의 연가는 일반 회사원의 연차와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원한다고 아무 때나 낼 수 없다.

연가를 낼 때 합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그마저도 관리자가 승인을 해야 쉴 수 있다. 수업일에는 연가를 큰일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이다. 교사가 연가를 쓰면 그 시간만큼 보결 교사가 수업을 대신해야 하므로 보결 수당을 지출해야 하니까 제한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학교의 장은 휴가를 승인함에 있어 소속 교원이 원하는 시기에 법정휴가일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되, 연가는 수업 및 교육활동 등을 고려하여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수업일을 제외하여 실시하도록 한다’

그래서 대부분 교사는 연가를 방학 중 휴가 기간에 사용하지만 그래도 다 소진을 못하기 때문에 최근엔 남는 연가를 학기 중 금요일 오후 조퇴로 사용하는 교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왜 연가를 소진해야 할까?

남는 연가를 연차보상비로 되돌려 받는 대부분의 회사원과 달리, 교사는 연가보상비가 없다.

나만해도 벌써 연가일수가 21일이나 되지만 일 년에 반절이상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어제와 오늘은 아들 손목 골절 수술 후 회복을 이유로 이틀 연가를 써서 아침에 여유가 있다.

시리얼, 식빵이 아니라 딸에게 방금 끓인 찌개를 끓여 아침을 해주고, 빨리 일어나라! 밥 먹어라! 양치해라! 잔소리도 안 하고 있다. 어제보다 덜 아픈지 아침에 깨우지도 않았는데 아들도 잘 일어났다. 드림렌즈도 편안하게 잘 뺐다.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아침이다.

며칠사이에 이렇게 한가하고 편안해질 수 있는지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아들은 수요일 저녁 입원하고 월요일 오전 11시 반에 퇴원했다.

목요일은 내가, 금요일은 남편, 토요일엔 내가, 일요일은 남편이 퐁당퐁당 돌아가면서 아들 곁을 지키다가 남편이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서울로 출장을 가야 한다길래 월요일 화요일은 연가를 써서 퇴원 수속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가뜩이나 짜증도 많고 겁도 많은 아이가 수술도 하고, 6일 동안 병원에서 그래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딱 두 가지 때문이었다.


티비와 1인실.

병실을 묻길래 당연히 다인실을 신청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프면 연달아 둘이 다 아프고, 두 살 터울이라지만 21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아 쪼끄만 아이들 둘을 돌보자면 1인실을 써야 했다. 지금까지 네다섯 번 입원을 했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동시에 아팠고, 남편과 나까지 병실에서 지내야 해서 1인실이 당연했지만, 이제 다 컸으니 1인실은 좀 사치려니 해서 6인실을 신청한 것이다.


병실에 들어가니 아들 포함 2명뿐이었고, 어린이 병실이라 신발 벗고 들어가고, 침대도 난간이 다 되어 있어 딱 좋았다. 아들은 정신없이 검사받고, 돌아다니다가 이제 한숨 돌리며 슬며시 잠이 들었는데 이윽고, 간호사 선생님이 체온, 혈압, 산소포화도 등 바이탈을 체크하러 왔는데 물어보셨다.


- 애기 많이 안 울어요?

손목이 부러졌는데도 안 울고 꼿꼿이 앉아 있던 모습이 기특해서 그 짜증쟁이 울보를 다 잊어버리고 대답했다.

-예! 잘 안 울어요.


하지만 이 말이 거짓말임이 들통난 것은 10분도 안되서였다.

아까 그 간호사 선생님이 수액 맞은 팔에 부목을 해주러 오셨는데 아들은 반창고를 떼고 있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발길질을 하며 온갖 짜증을 부리는 것이었다.


한 팔이 저 지경인데 도대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뒤에서 아이를 안고 있어도 몸을 사정없이 뒤트는 바람에 수액 바늘이 다시 빠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부목 대는 것이 별로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간호사 선생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아직 아홉 살인 아이가 손목이 부러졌다는 것을 너무 간단히 생각했나 보다.


아이가 잠들 기 전 간호사 선생님이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셨다.


1. 12시부터는 절대 금식, 물도 안된다.

2. 수술 시간은 내일 아침 회진 때 알려줄 것 같다.

3. 팔 내리면 안 되고 냉찜질하면서 배에 올려두고 자야 한다.


1번과 3번은 간단하지 않은 미션이라 조금 긴장했는데, 나도 아이도 고단했는지 저녁 먹고 10시쯤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잤을까?

아이가 엥!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더워! 너무 더워!


덥다고?

병실 안은 선선했고, 25도로 맞춰져 있었다.

다만 바람이 조금 약했다.

반대쪽 침상에서 다른 환자분이 주무시고 계셔서 에어컨 바람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일단 징징거리는 아들을 진정시켜야 해서 말했다.


-아닌데 별로 안 더운데. 여기 우리 집보다 더 시원해.

-아니! 더워! 내 쪽은 너무 더워.


시스템 에어컨 있는 천장에서 아이 침대가 멀어서 그런 것 같아서 아이 머리를 돌리고, 커튼도 젖혔다.

그런데도 계속 덥다고 징징 거리니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애기 왜 그래요?

-덥다고 그러네요.

-아. 알겠어요.


간호사 선생님이 에어컨 온도를 더 낮춰주고 바람 세기도 훨씬 세게 조절하자 아이 때문에 순간적으로 올랐던 열이 식히는 것 같았다. 아들도 조금 진정이 됐는지 덥다고 말을 안 했다. 그리고 또 조용해져서 자는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10~20분 정도 지났을까?

또 엥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목이 마르다는 것이다.

그건 진짜 안되었다. 12시부터 금식이라고 했는데 12시가 막 넘은 시간이었고, 분명 아까 일어났을 때 물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12시 넘으면 물 마시면 안 된다고 했어. 아까 마셨잖아.

-목말라. 물 마시고 싶어.

안된다고 하니 더 목이 마르는지 징징 거리는 강도가 점점 세졌고, 우는 소리가 병실을 넘어 복도까지 갔는지 또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또 왜 그래?

-목마르다고 하네요.

-안돼! 12시부터 금식이야. 물도 안돼.


간호사 선생님의 단호한 말에 아이는 수긍했는지 더 보채지 않고 눕는가 싶더니 또 얼마가지 않아 일어나서 물을 달라고 했다. 도저히 다른 환자분께 죄송해서 밖으로 나갔다. 병실 복도 끝에 있는 휴게실에서 좀 진정하다 들어가려고 했는데, 휴게실 앞에 정수기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평생 물도 한 번 못 마신 사람처럼 정수기로 돌진을 하길래 안된다고 아이를 잡아두었다.


-왜? 왜 물 마시면 안 되는데? 이유가 뭐야

-수술을 해야 하니까 먹으면 안 돼.

-수술이랑 물이랑 무슨 상관이야?

-수술할 땐 음식, 물이 위에서 역류할 수 있어서 그렇대.


여기까지가 내 상식이었고 더 묻는 아이에게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있을 때 구세주처럼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물 마시면 안 되는 이유. 수술실 앞에 있음

-애기 왜 울어요?

-목마르다고 우네요. 아까 자기 전에 많이 먹었는데,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더 마시고 싶은 것 같아요.


시계를 보시던 선생님은 조금 고민을 하시더니 아직 1시가 안 된 시각이라 그런지

-그럼 마지막으로 마시게 해 주세요. 마지막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정수기 컵을 빼서 달고 달게 물 2잔을 마시고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이번엔 바람이 너무 세서 바람 세기를 약하게 하고, 온도도 다시 24도로 설정했다.

아이는 별말 없이 다시 잠이 드는가 싶었다.

그런데 다시 한 시간이 채 안되어서 일어나더니 또 덥다고 일어났다.


그냥 조용히 일어나면 좋은데

일단 일어날 때 팔이 아프니까 울면서 깨고,

깨고 나면 불편하고 답답하니까 짜증을 내고,

짜증을 내면 나도 그만하라고 닦달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너무 소란스러워서 또 밖으로 나가기를 계속 반복했다.


3시부터 4시까지 한번 좀 길게 자고 그 이후에 나와서 아침 동이 틀 때까지 계속 티브이를 보았다. 입원 첫날을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이 왔다. 같은 병실의 환자분께서는 우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 탓인지 아침 늦도록 주무셨고, 아침을 못 먹는 아들 옆에서 나도 밥 먹기가 미안해서 강제로 동시에 금식을 진행했다.


아침이면 좀 괜찮을 줄 알았던 아이의 짜증은 만화를 볼 때만 조용해졌다.

책 한 권 가져온 것은 벌써 몇 번을 본터라 지겹다고 하고, 마침 바깥 휴게실에서 봤던 라바(만화)가 재미있었는지 조금 더 보여달라고 하기레 아이패드로 한 시간짜리를 틀어줬다. 30분만 봐야 해!라는 내 말은 허공에 산산이 부서졌는지, 내가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눈이 빠져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아파도 영상 시청을 그렇게 오래 하면 안 된다는 마지노선은 지키고 싶어서 태블릿을 강제로 껐더니 다시 칭얼대기 시작했다. 굳이 자기 침대에서 내려와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앉아 있겠다며 나도 못 쉬게 하는 이 녀석을 어찌하면 좋을까, 수술하면 더 심할 텐데 계속 6인실에 있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결정적으로 병실을 바꿔야 하는 계기는 아이 때문이 아니라 맞은편에 새로 들어온 환자 때문이었다.


아들 침대 바로 맞은편에 새로 들어온 환자는 중학생 정도되는 학생으로 오자마자 커튼을 쳤는데, 이름이 어디서 많이 봤던 이름이었다. 내가 3년 전에 담임을 했던 아이의 이름인 것 같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잠깐 열린 틈으로 보인 아이의 모습은 3년 전 모습에서 키만 멀쑥이 큰 모습이었다..


아.. 안 되겠다. 싶어 바로 병실 이동을 요청했다. 바로는 안되고 오후에 수술하고 나서 바꿀 수 있다고 하셔서 그때까지는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아들은 배고프고 목마르고, 아프고, 간지럽고 답답하다면서 나에게 온갖 짜증을 퍼붓는 바람에 조용히 있을 수가 없었다. 수술 시간이 오전에서 오후로 바뀌고,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인내심의 한계치도 점점 끝을 보이는 와중에, 다행스럽게 병실을 바꿔주셨다.


오후 1시, 담당 의사 선생님의 수술 방법 및 후유증 설명을 듣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조금 더 기다리니 아이를 수술용 침대에 눕히고 2층 수술실로 들어갔다.

마취 시간 30분,

수술 시간 30분에서 1시간

회복 시간 30분 최대 2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그 수술 시간 동안 몰래 물 한잔을 하고 썰렁한 수술실 앞을 지켰다.

일부러 아이가 들어갈 때 눈을 안 마주치고 싶었는데, 열린 문틈 사이로 아이가 끝까지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병실로 올라가서 한숨 잘까 싶다가도 엄마 찾을 아이 생각에 그럴 수도 없었다.


모니터에 수술 종료 메시지가 뜨고 한참 후에 나온 아이는, 채 두 시간도 안되었는데 홀쭉해져서 나왔다.

그 이후 금식이 풀리는 9시까지 어떻게 버텼을까.

바로 티브이와 1인실 덕분에 버텼다.

짜증을 내고 울어도 1인실이라 민망하지 않았고 티비는 돌릴 때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를 오래오래 방영해 주었다. 배가 고프니 잠도 안 왔는지, 아니면 마취할 때 조금 잤다고 그러는지 아이는 손목에 핀을 두 개나 박는 수술을 했는데도 지치지도 않고 찡얼대고, 쉬지 않고 티비를 봤다.


오늘 아침, 수업을 시작하며 한창 바쁠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여유롭게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비현실적일 만큼 병원에서 보낸 첫날과 둘째 날은 정말 힘들었다. 나머지 시간은 티비와 1인실 덕분에 손목이 아파도 조금 덜 울고 보낸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지만 또 아프게 된다면, 그래서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두말없이 1인실을 택해야겠다. 내일 학교 갈 일이 너무 두렵지만, 어쨌든 지금은 너그럽다.

아까 끓인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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