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백/비틀쥬스 비틀쥬스
올해 극장에서 영화를 진짜 몇 편 안 봤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콘텐츠들에 대한 기록이랄까.
룩백의 원작자는 체인소맨의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다.
나 또한 체인소맨으로 작가를 처음 접했고, 제법 좋아하는 애니 중 하나다. 정의바보인 대다수 점프 애니의 주인공들과는 전혀 달리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 돋보이는 덴지의 캐릭터성이나 사람의 두려움으로 힘을 얻는 '악마'라는 설정, 고어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액션씬이 포인트다.
체인소맨으로 대박을 터뜨린 후 2021년에 공개된 단편 만화 룩백은 더욱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2022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남성 부문 1위에 올랐다. 후지모토 타츠키에게는 '단편의 악마'라는 별명이 있다. 스스로 주간연재는 급하게 마무리해야 될 때가 많아 통제할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단편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연재라고도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체인소맨의 2부는 1부에 비해 루즈해진 스토리와 작화에 아쉽다는 의견이 많이 들리곤 한다.
영화화된 룩백은 아직은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던 9월 5일, 한국 극장가에 찾아왔다.
그래서인지 여름 특유의 아련함과 함께 기억되는 이 영화는 6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오랜 여운을 남겼다.
오래간만에 하나도 버릴 부분이 없는, 완벽하게 들어맞는 러닝타임의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사실 그래서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중하지만, 영화를 본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내게 파문을 일으키는 장면은 몇 달 동안 만화 그리기에만 매진했던 후지노가 쿄모토의 만화를 보고서 "그만할래."라 말하는 장면이다. 나는 무언갈 포기하기 전에 그렇게 모든 걸 바쳐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말하는 초등학생 후지노를 생각하면 아연해지곤 한다.
그리고 역시 하이라이트는 극의 후반부다. 이랬다면 어땠을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래서 너를 구할 수 있었더라면. 일본의 많은 작품에서 이런 시도가 엿보이는데(대표적으로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등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몇 번이고 이런 연출에는 무너져 내리고 만다. 어떻게 안 사랑하는데... 태초부터 자연재해가 많은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기반 정서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후지모토 타츠키'라는 이름에 퍼뜩 아 이 영화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겠구나 싶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의 이름은 후지노와 쿄모토.
아래는 룩백과 관련한 작가의 인터뷰 일부들에서 찾은 내용이다.
"후지노와 쿄모토 둘 다에게 자신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Q. 주인공은 내 안에서 데려온 아이인가요?
A. 후지노는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것을 생각하는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렸죠."
"내가 대학생 직전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커다란 사건이 있으면 '왜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라고 스스로 묻게 되거든요.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은 만화를 그려봤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야말로 농업이라도 하는 편이 피재지에 물자를 전해줄 수 있을 거고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그런 고민들은 아무리 생각해 본들 해결할 수 없어서 쳇바퀴처럼 돌거든요.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뭔가의 형태로 만들어서 토해내지 않으면 좀처럼 마음 정리를 할 수 없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말자'라고 타협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 룩백을 그리는 것으로 드디어 내 안에서 매듭을 지었다고 느꼈어요."
만화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와 함께 만화를 그리며 느꼈던 열등감, 열정, 그리고 무력함 등이 엉겨 붙은 자전적 이야기까지 완벽한 기승전결로 녹여낸 룩백은.. 작가를 단편의 악마로 불리게 하기에 충분한 작품인 것 같다.
그의 다른 단편 만화들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왔어요 왔어요 비틀쥬스가 36년 만에 돌아왔어요~~
팀 버튼의 작품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팀 버튼은 그야말로 '팀 버튼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붙어도 될 만한 독보적인 스타일을 갖춘 창작자다.
특유의 다크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그리고 약간 의 B급 감성은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나는 늘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독특한 비주얼이나 취향을 가져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거나 소외당하곤 하는 그의 캐릭터들 역시 너무나 매력적이다.
모두 모두 사랑해.. 어쩔 수 없이 조니 뎁의 사진이 상당수 들어가는데, 그래 나는 팀버튼의 페르소나로서의 조니뎁을 지독하게 사랑했다...
기괴하게 생긴 팀버튼의 '괴물', 혹은 '외톨이' 들을 들여다보면 사실 상처받은 마음과 무언가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구축한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 연기를 조니뎁은 끝내주게 해냈었다..)
DDP에서 열렸던 팀버튼 특별전에서 그의 작품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그의 작품 세계는 어릴 적부터 공동묘지에서 노는 것과 B급 공포영화를 좋아했던.. 그런 다소 '음침한 소년'이라고 불렸던 자신에 대한 치유작업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걸 알고 보니 더욱더 그 세계가 좋아졌달까.
다시 <비틀쥬스 비틀쥬스>로 돌아오자.
아, 처음 비틀쥬스를 본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36년 만에 다시 돌아와, 대중이 좋아하는 것, 최신 영화 기술들은 한편으로 치워두고 팀 버튼의 초기 작품 스타일을 진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갑툭튀, 으.. 소리가 나오는 그로테스크함, 다크 코미디, B급 감성,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스톱모션과 곁들여진 뮤지컬 요소까지. (뮤지컬 장면들은 너무 어이없어서 너무 웃겨버렸다ㅋㅋㅋ)
2024년에 초기 팀 버튼 스타일을 그대로 가지고 나오니까 오히려 센세이셔널함이 느껴지고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았다.
그리고 제나 오르테가.
아, 제나 오르테가..
웬즈데이의 주인공, 제나 오르테가가 위노나 라이더의 딸로 출연하면서 팀 버튼의 새로운 페르소나로서의 출발을 알렸다.
웬즈데이를 보면서부터 도대체 어디서 제2의 위노나 라이더를 찾아온 거지 싶었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내내 진짜 모녀라고 해도 믿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너무 역할에 찰떡이라, 웬즈데이 2를 비롯한 다음 팀 버튼 작품 속의 그녀가 더욱 기대가 된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아쉬운 점은 딱 한 가지.
당신... 모니카 벨루치를 왜 그렇게 쓴 거야..
유령신부를 실물로 옮겨온, 아니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캐릭터로 등장시켜 오프닝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만들어주고는, 그저 비틀쥬스와 리디아를 위한 도구로서 퇴근해버리고 마는 돌로레스..
갈수록 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는 비틀쥬스에 비해 그저 중간중간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해서, 모니가 벨루치라는 대 배우를 왜 이렇게 소모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의문이 남는다.
사실상.. 없어도 되는 역할 아니냐며....
사실 스토리적인 측면에서야 부족한 면이 많았겠지만, 팀 버튼의 과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울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나야, 팀 버튼
나 아직 이런 거 잘 만들 수 있어 그동안 안 한 것뿐이지ㅋ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달까.
이런 거 좋으니까 또 만들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