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만 마주하면 밀려오는 애틋함, 간절함을 담은 그날의 샌드위치
“으 덥다…”
익는다는 느낌이 이런걸까?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도로에서 열기가 뿜어져나왔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덕분에 더위에 강하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던 나도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여름 내내 한몸처럼 챙겨다니던 양산이 선사하는 조그마한 그늘에 몸을 의탁하여 햇빛을 피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금새 땀범벅이 되어버린 나의 팔이 시야에 들어왔다. 구릿빛으로 물들어가는 피부가 젖어 번들거렸다. 저 너머 도로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너머로 기다리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양산을 야무지게 챙겨쓴 엄마는 멋들어진 까만 썬글라스로 얼굴 절반을 가린채였다. 특유의 가벼운 총총 걸음으로 등장해 나를 발견하고는 엄마가 가녀린 팔을 휘휘 저으며 반가운 표시를 했다. 화답하듯 손을 흔들어주니 엄마가 날듯이 건너와 내 이름을 불렀다.
“더운데 어디 들어가있지.”
유난히 햇빛을 눈부셔하는 엄마는 낮에는 늘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가끔 엄마에게 점심 먹고 산책도 다녀오라며 낮에 카페를 대신 봐줄 때도 엄마는 선글라스부터 챙기곤했다. 엄마의 작은 얼굴을 절반이나 가린 까만 선글라스 아래로 예쁘게 그려진 호선이 햇빛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금새 걱정으로 번졌다.
“나도 방금 막 왔어.”
애써 덥지 않은 척 얼른 가자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맞닿은 엄마의 손은 여전히 뜨거울 정도로 따뜻하고 포근했다. 한 줌의 작은 손 끝에서 거칠거칠한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제 손가락은 괜찮아?”
카페에서 손가락을 자주 사용하다보니 엄마는 손가락 통증을 달고 살았다. 퇴근 후 지친 얼굴로 매일 손찜질을 하며 졸다가 잠들고는 했다. 종종 테이핑을 붙였던 엄마의 손은 물을 많이 만지다보니 갈라지고 트기 일수였다. 덕분에 맞닿은 피부의 거칠거칠한 감촉을 느끼며 속상해하는 나에게 이제 많이 괜찮아졌다며 엄마가 손가락을 쭉 폈다가 구부렸다.
“이제 제법 잘 구부러져. 예전에는 퉁퉁 부어서 구부러지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하고부터 머신기는 내 담당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손가락과 손목에 힘이 덜 들어가는 역할을 엄마에게 부탁하고 ‘샷은 내 담당!’을 외치며 호기롭게 머신기 앞에 서도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어느새 엄마가 머신기 앞에 서있고는 했다. 아프면 힘들다 못하겠다 투정이라도 부릴 법도 한데 엄마는 한번도 나에게 먼저 일을 해달라고 미룬적이 없다. 잘 구부러져지지도 않는 손가락의 통증이야 오죽했겠냐 싶은데도 엄마는 불평 한마디 없이 마지막까지 꿋꿋이 해냈다.
못 드는 무거운 짐을 척척 드는 엄마, 잘 열리지 않는 뚜껑도 만능따개처럼 다 분리해내는 엄마의 든든한 손이 마치 영원할 것같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그러나 이제와 마주잡은 엄마의 손은 한줌의 모래처럼 너무도 작고 가벼웠다. 그만큼 엄마의 시간이 많이 흘렀고 또 엄마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거겠지.
내 마음 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엄마와 함께 가기로 한 빵집이 멀지 않기 때문이었다. 밖과 대비되어 더 차갑게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이 온 몸에 달라붙었다. 열기로 가득찬 몸 구석구석을 빠르게 식혀주는 냉기와 고소한 빵냄새까지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늘은 최근에 새로 오픈한 빵집에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카페를 정리한 후 동네 곳곳을 산책 삼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던 엄마가 발견한 곳이다. 우리는 워낙 샌드위치를 좋아했다.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신메뉴로 내놓을 때 조사 차 이곳저곳의 샌드위치를 잔뜩 시켜먹은 이후로 그리고 우리 카페에서 남은 샌드위치를 매일 아침으로 헤치운 이후로는 한동안은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아주 오랜만에 빵집을 둘러보는 우리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렸다.
자신의 가게를 운영한 사람이라면 유난히 애틋한 메뉴가 한두가지는 있지 않을까. 엄마와 나에게 가장 애틋한 메뉴를 뽑으라면 아마 서로 말하지 않아도 샌드위치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가 어려운 현실을 돌파하고자 간절하게 선택했던 메뉴이자 희망을 담아 마지막까지 정성으로 만든 메뉴였다.
까작. 바삭한 바게트을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입천장을 다 할퀴고 지나갈 듯한 바삭한 겉면 아래로 퐁신하고 부드러운 속살이 느껴졌다. 얇게 채 썬 양파가 아삭거리며 신선한 양상추와 함께 입안을 프레시함으로 가득 채웠다.
엄마가 바게트 샌드위치 옆으로 흘러내린 연노란색의 소스를 포크로 콕 찍어 맛을 보았다. 먹느라 바쁜 나와 달리 엄마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먼저 시선으로 분해했다. 어떤 햄을 썼는지 어떤 종류의 치즈가 들어갔는지 소스 맛은 어떤지. 샌드위치가 카페 메뉴로 등장한 후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거나 또 빵집에 샌드위치가 있을 때는 엄마는 늘 이런 식으로 조금이라도 더 배워가려 애썼다.
“참 신기하지. 치즈 한 장, 햄 한 장을 뭐로 채웠는지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져.”
꼬릿한 치즈 풍미와 전혀 짜지 않은 담백하고 두툼한 햄이 바게트와 제법 잘 어울렸다. 강하지 않게 얇게 발린 상콤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진 소스가 전체적인 감칠맛을 더해주는 듯했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샌드위치에 톡 터지는 토마토 슬라이스가 큼직하게 들어가 있어 더운 여름 입맛 없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먹기 좋겠다 싶었다.
엄마는 바게트로 만들어 샌드위치가 더 맛있는 것 같다고 했다. 빵을 직접 만들 수가 없어서 바게트로 못해본 것이 아쉽다고.
“우리 그때 부드러운 우유식빵 찾는다고 온 식빵들을 다 주문해서 먹어본 거 기억난다. 식빵 샌드위치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 식빵이 부드럽고 고소하잖아.”
그건 그렇지. 엄마가 짧게 동의를 표하며 옆에 놓인 포카치아 샌드위치를 집어들었다. 까작한 겉면이 매력적인 바게트와 달리 올리브유가 발라져 부드럽고 퐁신한 포카치아는 먹을수록 쫄깃했다. 얇게 썰린 사과와 짭조름한 햄이 쫄깃한 식감과 생소한 맛을 냈다.
“이거 먹을수록 매력있다. 먹다보니 이게 더 맛잇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바게트 샌드위치보다 간이 너무 강해 포카치아의 자체의 맛이 많이 묻히나 싶었다. 먹다보니 올리브유의 풍미와 사과의 상큼함 어우러져 짠 햄을 쓴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땀이 식어 살짝 추울 정도로 강한 냉방 덕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곁들이는 식사는 간만에 너무도 만족스러운 한끼여서 문뜩 우리 카페에서 아침을 샌드위치로 열던 손님들을 떠올렸다.
카페에 샌드위치가 메뉴로 등장하게 된 지는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재료도 많이 필요하지만 손도 더 많이 가는 메뉴라 선뜻 시도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느날처럼 퇴근길에 올라 엄마와 함께 먹을 저녁 메뉴를 양 손에 무겁게 들고 카페를 찾은 나를 카운터에 앉아 졸고 있던 엄마가 반겨주었다. 습관처럼 카페 안에 손님이 있나 한바퀴를 빙 돌아 확인한 나에게 엄마가 아무도 없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심심해서 혼났어.”
오늘 손님이 너무 없었다며. 졸음이 가득 묻어나는 엄마를 마주보고 카운터와 가장 가까운 자리를 골라 앉았다.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떡해.”
텅 빈 카페를 보고 나니 절로 입맛이 떨어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꾸역꾸역 누르다가 결국 잇새로 터져나왔다. 애써 태연한 척 하는 엄마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 우리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만히 앉아 경기가 좋지 않다, 손님들이 없다 불평만 하지 말고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 엄마와 나는 곧바로 신메뉴 개발에 착수했다. 프랜차이즈로 시작했지만 대표가 횡령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게 되는 바람에 본사가 사라진 후 우리는 개인 카페처럼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해야만했다.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화려한 신메뉴와 광고로 손님들의 이목을 끄는 동안 메뉴개발과 투박한 홍보자료 제작을 우리가 손수 맡아서 해냈다.
최종 후보로 올라온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생크림이 올라간 크로플이었고 하나는 샌드위치였다. 생크림 크로플은 기존에 아이스크림 크로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크림과 토핑만 준비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생크림이 보관기간이 짧아 남은 것은 다 폐기해야 한다는 위험성이 있고 기존에 잘 나가던 허니브레드와 같은 메뉴를 대체하게 될 뿐이라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최종 메뉴는 샌드위치로 채택이 되었다. 우리 카페에 부족한 식사 메뉴를 보충해주고 남아도 워낙 우리 가족이 샌드위치를 다 잘 먹으니 우리 먹거리라도 되지 않겠나 싶었다.
SNS와 기존 샌드위치집을 통해 여러 가지 샌드위치 메뉴를 준비했다. 많이 먹어도 보고 또 샌드위치 만드는 영상을 통해 다양한 노하우를 익혔다. 처음에 엉성하게 만들어진 샌드위치는 반을 제대로 자르지 못해 두 조각의 크기가 확연히 달랐다. 꾹꾹 눌러 포장한 것이 아니라 자르고 보니 풀어헤쳐지기도 했고 너무 재료를 한가득 넣어 자르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주로 나였고 엄마는 아이디어를 실현시켰다. 엄마와 함께 일하며 엄마에게 대해 더 알게된 것이 있다면 엄마는 느리지만 묵묵히 또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가지고 있었다. 신이 나서 아이디어만 잔뜩 뱉어놓고 실제로는 생각만큼의 비주얼이 쉽게 나오지 않아 금방 싫증을 내는 나와 달리 엄마는 샌드위치 영상을 수백개를 보며 혼자 수십번을 연습했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 포장을 꼼꼼하게 해내는 달인이 되어 자르는 족족 거의 절반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다.
샌드위치 아이디어의 출발은 나였을지 몰라도 완성은 분명히 엄마였다. 도중에 충격적인 맛으로 가장 손이 많이 가지만 메뉴에 등극하지도 못하고 내려온 불고기당근라페 샌드위치도 있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샌드위치 메뉴로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에그마요가 가득 들어간 에그폭탄 샌드위치. 괜히 스테디셀라가 아닌 듯 꾸준히 찾아주던 햄치즈 샌드위치까지 만들어냈다. 분명 우리 입맛에는 맛있었지만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해 아쉽게 빠르게 카페에서 사라진 떡갈비 샌드위치, 통새우 샌드위치 등 다양한 샌드위치가 우리 카페를 거쳐갔다. 겨울맞이 딸기와 리코타치즈를 듬뿍 넣어 상큼한 딸기리코타치즈 샌드위치는 비주얼이 제일 요즘스러웠다. 다행이 많은 손님들의 관심 속에서 무사히 우리 카페의 정식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카페에 샌드위치가 등장하고서부터는 나는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로 오늘의 샌드위치 판매량을 가장 먼저 묻고는 했다.
“오늘은 몇개?”
처음 10개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날 신이 난 엄마가 대박이라며 먼저 연락을 주기도 했다. 30개의 단체주문이 들어온 날에는 그래도 엄마와 내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니 그 보답이 돌아오는 구나 싶어서 엄마와 함께 감격스러움을 나눴다. 영업을 종료하기 전 매번 단체주문을 해주시는 손님께 엄마가 카페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 카페에서 에그마요를 먹는 즐거움으로 출근한다는 손님께서 아쉬움을 표할 때 우리가 걸어온 순간들이 비로소 헛되지 않았음이 조금은 보상받는 듯했다.
엄마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사람들의 수요에 선견지명이 있는걸까? 우리가 시작하게 된 샌드위치가 주변 카페들에서도 메뉴로 내놓기 시작했다. 오픈 샌드위치, 그릴 샌드위치… 홈메이드식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정성이 가득 들어가 그야 말로 집밥 스타일의 샌드위치는 화려한 샌드위치의 비주얼들에 그 열기가 조금은 사그라드는 듯 했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 판매량이 계속 느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일 만드는 분량은 남김없이 팔리고는 했다. 처음에 아빠와 나는 거의 모든 식사를 샌드위치로 할 정도로 남는 샌드위치가 넘쳐나는 현상에 행복해야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불안감에도 우리 카페 샌드위치가 제일 맛있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다보니 어느 순간 남는 샌드위치가 없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시작이 미약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빛을 보는 순간들이 오는 것일까? 샌드위치 단체주문까지 한달에 몇번씩 받아보았으니 매출난을 타계하겠다던 그날의 엄마와 나의 간절함 외침이 어느 정도는 이뤄졌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날 주저 앉지 않고 뭐라도 도전해본 것, 쉬운 메뉴처럼 보이던 샌드위치에 얼마나 많은 디테일이 필요한지(소스 하나, 치즈 한 장 등) 또 하나하나 꼼꼼히 비교하고 예쁘게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한 엄마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글을 적으며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제 샌드위치를 낱낱이 분해하려는 시선이 아닌 조금은 편하게 온전히 음미할 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메뉴 하나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엄마와의 추억이 담겨 애틋하기 그지 없는 샌드위치는 언제까지나 엄마와 나의 최애 메뉴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