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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by Redman


고전철학을 주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아카넷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강연을 엮은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8명으로, 저자소개를 보면 한 명은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철학을 전공하여 교수나 기자인 사람들이다. 때문에 이 책은 AI와 미래기술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대한 인문학적 담론이 많이 다뤄진다. '현재의 시대와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대한 이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여 8개의 강의가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지만, 유기적으로 관련이 높다.


1강 3만년만에 만나는 낯선 지능(이상욱)

신상규 교수는 인공지능이 3만년 전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처럼, 인간에게 낯선 지능이라고 설명한다. 네안데르탈인 이후로,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존재을 처음으로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신상규에 의하면, 인공지능의 지능은 매우 뛰어나지만 자각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지능과는 다르다. 인공지능에게 프로그램을 입력하여 바둑을 두게 하고, 소설(비슷한 것)을 쓰게 하고, 그림도 그리게 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인공지능에게는 의식적 자각이 없으며, 오직 지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기능적 기능(functional intelligence)만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 보다는 기계지능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휴머니즘은 시매다마 새롭게 재정의되었으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현재의 휴머니즘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포스트휴먼 담론이란 인간의 가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2장 사이보그 - 인간에서 초인으로? 기계가 된 인간(이영의)

이영의는 공각기동대 등 SF매체에 나오는 사이보그 이미지를 빌려 사이보그는 "의체라는 기계적 요소와 전뇌라는 생명체의 요소가 결합한 존재(60p)"라는 정의를 내린다. 그는 케빈 워릭과 휴 허, 신체 미술가 생트 오를랑의 예시를 들어 사이보그에 대한 이해를 더 구체화시킨다. 인간은 왜 사이보그가 되려고 하는걸까? 가장 근원적인 동기는 생존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은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co-evolution)이다. 엔디 클락의 "학장된 마음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과 기계의 공생관계를 주장하면서 호모 사이보그를 그 방안으로 내놓는다.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는 걱정을 불식시키며 저자는 호모 사이보그를 통하여 인간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을 지향할 수 있다며 낙관적인 관점을 내놓는다.



3장.인공자궁 - 재생산 기술로 태어나는 인간. (김애령)

저자는 <멋진 신세계>나 SF영화 등에 나오는 인공자궁이 영화적 상상이 아닌 현실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냉동 태아, 상업적 대리모,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기술적 배경인 신재생 기술로써 영화적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저자는 이 신재생산 기술을 중요하게 언급하면서, 이러한 기술이 발전하고 활성화되는 배후로 "나와 유전적 연계가 있는" 더 나아가 "나의 아기가 갖고 싶다는(102p)" 욕구를 언급한다. 자연적으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부부에게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기술은, 저자의 표현을 따르면, "욕망의 컨베이어 벨트"를 탔고, 이로써 신 재생산 기술이 일반화될 수 있었다. 끝으로 이러한 기술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부분을 짚고 있다. 첫째, 성공 뒤에 가려진 수많은 실패. 둘째, 과베란제를 통해 생성된 쓰다남은 잉여 난자 문제. 그리고 셋째로, 아직까지도 자료가 없는 생식보조기술을 통해 태어난 아기와 산모들의 건강 문제이다.



4장 로봇과의 사랑? 관계의 재구성(신상규)

제4장은 로봇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인간은 로봇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논한다. <블랙미러>나 <그녀> 같은 작품에서 보여지듯, 로봇은 이제 인간과 뗄려야 뗄 수 없는 정서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아직은 낯선 풍경일 수 있으나 점점 더 이러한 풍경은 흔해질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로봇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할까? 전통 윤리학의 논의는, 로봇의 지능이나 의식적 능력에서 답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저자 신상규는 "관계론적 접근"을 통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의 맥락속에서만 도덕적 지위 부여가 가능함을 역설하며,(맹자가 제선왕이 도살당하는 소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이 논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계"를 하나의 단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비판한다. 동물이 다 똑같은 동물이 아니듯, 기계도 그것이 처한 맥락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5장 가짜뉴스 - 디지털 사회와 보이지 않는 권력 (구본권)

저자는 이제는 인간의 손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된 인공지능의 위험을 지적한다. 인공지능처럼 인간의 사회와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인격적 주체의 출현은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형성된 인공지능과 소셜미디어 맞춤광고 등은 인간의 주체적 사고력을 빼앗으며 점점 더 인간을 인공지능에 의존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비인격주체로 인하여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 개개인의 역할과 능력을 제한시킨다고 본다. 저자는 알고리즘이 우리 생각보다 공정하고 정확하지 않으며, 데이터가 갖는 편향성을 경고한다. 무엇보다 소수만이 기술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정보 비대칭성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라고 밝힌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본 포스트휴먼 사회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사회이다. 민주주의를 지킬 방법으로,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을 공상과학적 상상이 아니라, 소수에 의해 다수가 지배당하는 구조의 문제, 그리고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통제할지에 대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포스트휴먼 사회에서 인간이 기술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시민의 적극적인 감시와 참여가 필요하겠다.



6장 기본 소득 - 고용 없는 노동과 일의 재발명(김재희)

이 장은 인공지능 문제가 화두가 됐을 때부터 줄곧 이슈가 되어왔던 인간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 . 저자는 한나 아렌트, 질베르 시몽동, 스티글레르의 통찰을 상기시키며, '일'과 '노동'을 동일시하는 관점과 고용중심 사회를 반박하고, 자동화시대의 인간과 기계간 상호협력적 작업, 그리고 일의 부활을 주장한다. 즉, 세 철학자의 논의를 빌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얘기는, 노동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고 "포스트 노동"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포스트 노동 사회는 어떠한 사회일까? 우선 고용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다. 스티글레르에 의하면, 고용 중심의 현대 사회는 인간을 상품소비를 위해 돈을 버는 존재로 격하시켰으며, 진정한 일의 가치도 없애버렸다. 따라서 스티글레르는 고용을 폐지하여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부활시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그는 노동생산물이 아닌 인간의 "일"에 가치를 매기는 실용가치를 내세우면서 일을 중심으로 부를 분배하는 기여소득을 주장하였다. 결론적으로 포스트노동 사회란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자신의 일을 발명(199p)" 하고 싶은 일을 하여 "고용을 벗어나서 진정한 일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199p)"주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저자의 논의는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가 시사하는 바와도 상당히 겹쳐서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부분이었다.



7장 마이크로워크 - AI 뒤에 숨은 인간, 불평등의 알고리즘(하대청)

6장에서 노동의 철학적 문제를 다룬데 이어 7장은 인공지능 기술 이면에서 이 기술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인간이 있다.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딥러닝은 엄청난 아웃풋을 자랑하지만, 이는 방대한 데이타가 모였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인공지능 자체는 만능이 아니기에, 데이터 수집, 데이터 처리, 레이블링, 콘텐츠 조정(인공지능은 분별 불가능한 직관적 정보를 인간이 대신 구별하는 것) 등의 작업을 통해 인공지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데이터처리를 맡아하는 노동자들은 클라우드 워커 또는 마이크로워크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마존 한 곳에서만 적어도 수만명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일은 질낮은 일자리를 무수히 양산하면서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재로 작동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대다수가 저개발국가 국민인 이 마이크로워크 노동자들은 하루일당 평균 시간당 4달러를 받으며 일한다. 하대청은 이러한 최첨단 기술 뒤에 숱하게 깔린 저임금/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있음을 중요하게 지적한다. 그는 '인간 없는 인공지능 없음'을 강조하며, 건강한 사회 재생산을 위하여 이러한 마이크로워커 같은 돌봄노동자들을 관심있게 볼 것을 촉구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의 무쓸모를 주장하는 네러티브를 저자는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인공지능 시대과 포스트휴먼 시대에도 인간은 무쓸모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8장 인류세 - 인간이 만든 인류의 곤경(송은주)

이 장은 직접적인 미래사회의 기술 문제가 아닌 기후와 환경 문제를 다룬다. 인류세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은 지질학 개념인데, 인간 문명 발달로 인류에 의해 새로운 지질학상의 연대가 생겼고 이를 인류세라 부른다. 인류세 연구는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까지 넓혀지며 점점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킬 수 없게 만든다. 저자 송은주는, <인터스텔라>처럼 탈지구로 자연재해와 기후문제를 극복하려는 도피적 해결방식을 비판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우리는 "지구에 묶인 자(earthbound, 258p)"이며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자연의 다른 존재들에게도 의존하는 태도를 지녀야함을 역설한다.



결론

저자들이 전부 철학 등 인문학 전공자이고, 공학 등 더 인공지능 기술과 밀접한 분야의 전문가가 없던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인공지능, 포스트휴먼 사회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볼 부분과 생각지 못한 논의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처음에 우려는 주제가 너무 인공지능, 4찬 산업혁명, 사이보그 같은 문제에 집중되어 있지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8개의 강의가 전부 다른 관점에서 포스트휴먼이라는 문제에 접근하여 이러한 걱정은 싹 사라졌다.

이 책은 8명의 저자들의 강의를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따라서 각 주제는 독립적이라 목차를 보고 가장 흥미로운 부분부터 읽어도 된다. 비록 주제는 독립적이지만, 저자들의 문제의식과 취지는 동일하다. 2020년을 맞이하여 "2020년대에 우리에게 몰려올 새로운 변화 혹은 지금 태동되고 있는 미래환경을 정확히 이해하자(23p)"는 것이다. 본서의 제목에서도 나오는 포스트휴먼이라는 단어는, 탈(脫)휴먼이라는 의미로, 서론을 쓴 신상규 교수는 기술 발전을 통하여 기존의 인간관을 위협하는 포스트휴먼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개념화하는 주요 요소가 될 것이라 말한다. 인공지능 등의 발전으로 인간과 기계의 근본적 차이마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신상규 교수는 기후 문제, 불평등과 같은 문제, 더 나아가 非인간 존재와의 관계 설정 문제로 포스트휴먼 담론을 확대하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 수록된 강좌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파생된 것이다. 사이보그, 인공지능, 생명과학, 기계에 도덕적 지위 부여 문제, 노동, 사회불평등, 기후 등. 이러한 주제들로 이 책은 앞으로의 인간, 더 나아가 앞으로의 사회와 다가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해야하는지를 말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인공지능이나 4차 산업혁명 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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