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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an 30. 2024

갈림길에서 선택을 마주하다

서화랑 작가 <갈림길에서 선택을 마주하다> 전시 서문

 안녕하세요, 도영입니다. 오늘은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고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한 주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대학 시절 조각을 전공한 것을 계기로 현재에도 열심히 작업 활동을 진행하고 계시는 몇몇의 작가분들을 소개받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서화랑 작기님이 제가 기존에 쓴 글들을 좋게 봐주셔서 개인전의 서문을 작성해 드렸습니다.


 이번에 서화랑 작가님이 진행하신 전시의 주제는 간단하게 말해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었습니다. 저 또한 여러 가지 업계에 몸담으며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던 터라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주제였습니다. 나아가 저, 혹은 작가님만의 고민도 아닐 것 같았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사회 속에서 내가 서있을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아래 서문의 전문을 가져왔습니다. 공감을 통해 작게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서화랑 작가님 인스타그램 계정 @seowharang



                                                    <갈림길에서 선택을 마주하다>


 우리의 인생은 매 순간의 크고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는 삶의 방향, 미래의 배우자, 진로와 직업 등이 있을 것이고 작게는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여가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 등이다. 크고 작은 선택이건 간에 한 번 실행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사전에 선택이 불러올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택을 앞두고 고민한다. 특히,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 그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최고의 선택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최악은 피하고자 우리는 집중한다.


 작가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서 어느 화가가 문득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떠올랐다고 하자. 화가는 생각한 바를 평면과 입체 중 어떤 것이 더 잘 나타낼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평면으로 표현하기로 했다면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추상화 중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그것을 종이, 한지, 캔버스, 건물의 외벽, 담벼락 중 어디에다 그릴 것인지, 그린다면 흑연, 잉크, 먹, 파스텔, 목탄, 수채, 유화, 아크릴 등의 다양한 재료와 물감 중에서 ‘내가 생각한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재료는 무엇일지 등,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만나는 작품들은 작가가 창작의 고통 속에서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여 빚어낸 선택의 산물이다. 선택의 과정에서 작가의 감정은 작품으로 녹아들어 가며, 결국 작품은 작가를 따로 떼어 두고 온전할 수 없다. 작품에는 작가의 혼이 불어넣어 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마주한다면 감상의 차이는 더욱 깊어져 간다.


 우리는 오늘 어떤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그의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기 위해 관람객들에게 그의 배경을 일부 전달하기로 한다.


 작가 서화랑은 1998년에 출생하였으며 2024년 올해를 기준으로 만 27세이다. ‘아직 어리다’고 볼 수도 있는 그가 품고 있는 나이테는 절대로 순탄하게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이러한 소개 문구를 이해시키자면, 여러 사건 중에서도 작가가 희소 암과 싸워 힘겹게 ‘판정승’을 거머쥔 환자였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악성 혈액암의 일종인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과의 사투에서 승리하였으며 지금도 혈액 속에 ‘활동을 멈춘 암세포’를 지닌 채 ‘잠정적 완치자’로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죽음의 편린을 마주하고 온 서화랑 작가는 작품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커다란 변화를 주어야만 했다. 석고, FRP, 활석 등의 재료를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해 오던 작가는 의사로부터 암 재발의 위험성을 이유로 기존에 선호하던 재료 사용에 대한 중단을 권고받았다.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재료들의 사용을 멈춰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반면, 이 역설적이고 어쩌면 폭력적일 수도 있는 문제 앞에서 작가가 내놓아야 했던 답안은 전혀 간단히 내놓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작가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고 만다. 작가로서의 삶은 여기서 중단하고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혹은 기필코 방법을 찾아내어 작가의 삶을 유지할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작가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 중이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작가의 작품들은 여전히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작가가 힘겹게 내놓는 일종의 중간 답안이다.


 작가는 암 완치 이후 건강 상태를 유지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에 사용해보지 않은 재료들을 연구하였고, 그 결과 생각해낸 것이 바로 ‘디지털 공간에서의 작업’이다. 서화랑 작가가 새롭게 시도하는 픽셀 형태의 작품에는 작가가 추억 속 친구들과 즐겼던 게임에서 찾았던 행복감과, 기존 선호하던 조각의 원초적인 재료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망을 풀어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픽셀로 이루어진 작가의 작품들은 일부 관람객들에게 ‘몇 분 만에 쉽게 그린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는 작품의 제작 과정 자체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몇 번의 행위 예술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작가가 ‘1픽셀의 재료’들을 활용해 정성 들여 쌓아 올린 노력의 결정체이다. 동시에 ‘어떻게 작가로서의 삶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대한 풀이 과정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1픽셀의 조각가’, 서화랑 작가의 이번 전시를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예술가로서 힘겹게 전진하고 있는 작가의 처절한 발버둥, 작가가 느꼈던 어릴 시절의 순수한 행복, 또는 ‘나’ 만이 볼 수 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마주할 수도 있겠다. 이 질문에 대해 작가는 따로 정답을 정해 놓지 않았다. 당연히, 무엇을 느낄지에 대한 선택의 자유는 우리의 몫이기에.


                                                                                                                        전시서문_김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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