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미니멀리스트였던 거 같다.
정리를 칼같이 잘하고 집을 군더더기 없이 꾸민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 물건의 소유 개념으로 볼 때 말이다. 나는 필요한 물품이 하나 있으면 더 이상 그 종류의 물건에는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 올 가을 입을 재킷을 하나 샀다? 그럼, 다른 재킷에는 관심이 없었다. 향수를 하나 샀다? 그럼 다 쓸 때까지 다른 향수에 별 관심이 없다. 너무 오래 동안 하나의 아이템만 썼다 싶거나 그 물품이 다 떨어지면, 다시 새로운 살 것 들에 관심이 생기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물건을 여러 개 구비해두고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돌아가며 사용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건의 갯 수로 볼 때면 분명 미니멀리스트다.
미니멀리즘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책이나 tv 프로그램을 접하며 느끼는 것은 나는 원래 미니멀리스트였구나 였다. 딱 두 가지만 빼고 말이다. 책이랑 CD.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차지하는 공간은 전혀 미니멀하지 않아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라 할 수 없었다.
책과 CD는 용돈 받아 쓰던 학생 때도 꾸준히 구입했고,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한 달에 얼마씩 쓰도록 정해놓고 샀다. 물론 그 책을 다 읽었고, 음악을 즐겼고, 둘 다 소중히 소장했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도록 두고 눈으로도 즐기면서 말이다.
미니멀 라이프 진행 중
지금의 우리 집은 정말 많이 미니멀해졌다.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아이들의 책은 물론 내 책과 남편 책도 거의 처리하고, 장난감과 아이들 물품도 많이 처분한 상태이다.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접하게 된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책들의 영향으로 책과 CD, DVD의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되었고,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에 내 공간에 더 이상 책과 CD와 DVD를 쌓아 놓지 않게 되었다. 이제 책은 더 이상 구입하지 않으려 한다. 도서관 대출을 이용하면서 보고 싶은 책이 아니라 대출 가능한 책을 읽는다. 그래서 현재 우리 집에서 책장의 쓰임새는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이다. 버리고 정리하는 끝판왕은 TV 아니었을까? TV가 없어도 폰과 노트북 만으로도 넷플릭스를 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큰 화면을 원하긴 하지만, 아직은 여유로운 공간이 좋다.
여전히 미니멀리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챙겨 보곤 하는데, 얼마 전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미니멀리즘’이란 제목의 다큐를 2편 보게 되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2명의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이미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내용은 충분히 많이 접했기 때문에 내게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나이가 어린 남자들이 본인의 인생을 얘기하는 게 진정성 있게 느껴져서 집중해서 보았다. 자본주의 시장의 넘쳐나는 광고 속에서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2편을 보고 나니 자동으로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다큐멘터리가 추천으로 떠서 그 첫 회를 보게 되었다. 이미 그 책도 읽었봤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정리의 달인이라 알고 있어서 나이가 많은 여성인 줄 알았는데 곤도 마리에가 많이 어려 보여서 놀랐다. 어려 보이지만 강단 있게 일을 해결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옷을 정리할 줄 모르는 어른들
첫 회에 등장한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젊은 부부는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물론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건 힘든 상황이지만, 옷장마다 옷이 넘쳐나고 옷을 개고 정리하는 방법을 몰라 그 부분만 사람을 고용해서 해결하고 있었다. 일단 어른이고 아이고 옷이 너무나 많았다. 주택이다 보니 여러 공간이 많고 넓었는데, 그 공간마다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풍요로운 아메리카인가 싶었다. 그 부부에게 곤도 마리에가 티셔츠 개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내게는 그 모습이 너무나 놀라운 장면이었다. 나는 엄마가 빨래 개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을,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 내가 빨래 갤 때 같이 개고 했었는데(지금은 안 하지만). 그래도 시키면 어찌 되었던 서랍에 들어갈 크기의 직사각형 형대로 접어 놓는 데, 그걸 모르는 아이 엄마와 아빠에게 크게 놀랐다.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본인의 생활이 안 되는 사람으로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미니멀의 문제가 아닌
나의 아이가 자라서 혼자 살든지, 누군가와 같이 살든지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식사는 간단한 요리여도 상관없다, 매번 라면이나 끓여 먹지. 배달이나 시켜먹지. 가 아닌, 식은 밥으로 김치볶음밥을 해 먹더라도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고, 설거지를 해놓을 수 있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세탁기를 돌리고 옷을 서랍에 개어 넣어두든, 옷걸이에 걸어두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옷을 정리하고 사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기를 돌리든, 한 달에 한번 돌리든, 자신의 공간을 의미 있는 물건으로 채우고, 그 공간을 행복하게 여기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서 둘이 살다가 혼자가 되어도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아들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내 말을 잔소리로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나의 진심을 알릴 수 있을까?
지금도 식사 시간에 숟가락을 놓고 자신의 밥은 스스로 푸고, 반찬 그릇을 차리는 일은 시키고 있는데, 투덜거리는 게 이제 좀 없어진 상태인데 말이다.
흑. 앞으로 해야 할 숙제가 정말 많겠다.
** 덧붙이는 말 **
어제 이 글을 발행을 하기 위해, 맨 상단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다가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첫 회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글의 소재로만 생각했을 때는 첫 회의 젊은 부부가 티셔츠 개는 것을 배우는 데만 눈이 갔었는데, 다시 한 번 보게 되니 그들이 얘기에 더 귀가 기울여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알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없이 도움을 요청했으며,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가장 어른스러운 행동 아니던가?
그 부부는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그들 나이일 때는 남편을 비난하기에 바빴던 거 같다.
지금 이 나이에도, 티셔츠 개는 법을 몰랐다는 데만 눈이 간 나의 편협한 사고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