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앞에 앉으면 키 작은 연민들이 먼저 알짱댄다. 옛날에 그때 그 일, 그 일을 끄집어 내 하소연 좀 하면서 어서 눈물 찔끔 짜라고 부추긴다.
중학교 때 첫 생리가 찾아왔다. 학교에서 가정과목 시간에 미리 배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신체의 변화와 맞닥뜨리니 두려웠고 당황해 훌쩍였다. 어머니가 “이번엔 너여? 세 년들이 번차례로 내지르는구나.” 자주 그녀에게 맞아 다치는 심장은 그날도 맞아 아팠다.
스무 살 무렵 정릉에 있던 00 회관에서 아버지 환갑잔치가 있었다.
음주가무가 한창인데 그곳에 온 악단 중 한 여인이 장구를 치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내가 그 자리로 가서 앉아 그녀 대신 장구를 쳤다. 한복을 입고 있던 나는 장구를 처음 잡았지만 흥에 겨워 박자를 변화해 가며 노랫가락에 맞췄고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에 취해서 치고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다가와 이년은 기생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장구채를 놓았고 그날 밤 모멸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른들이 나쁜 소리를 뱉을 때마다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마음속 여기저기에 악의 씨앗을 충실히 배양시켰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저주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뱉어냈다.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쁜 싹들이 내 몸과 함께 자라며 아우성이었고 그것들은 무수한 가시로 변해 나를 찔렀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나는 늘 그렇게 피해자의 자리에만 있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이곳저곳 머물다 떠난 나의 자리는 부끄럽다. 또한 내 아가들에게 가한 짓은 어찌할 것인가.
내 부아에 받쳐 소리를 질렀을 때 겁에 질린 큰아이의 표정과 돌아앉은 작은 아이의 등이 보인다.
얼굴에 탈을 쓰면 나의 죄를, 한숨을 감출 수 있으려나. 아니 이것들을 녹여 탈을 만들자. 더러는 베풀기도 했을 사랑도 함께 버무려서.
이 탈을 쓰고 더 깊은 비밀로 부끄러운 손은 한삼으로 가리고 탈춤을 한바탕 추어보자.
타고난 기생의 신명으로 나 이제 탈춤을 춘다네 덩 더쿵
어머니도 떠나시고 세 자매 생리도 끊긴 지 오래,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다네 덩 더쿵 얼쑤!
험한 시절 많은 자식들 밥 굶길까만 불안했다던 어머니, 꽤나 드세어서 가족들에게 이해 한 번 받지 못한 어머니도 실은 아픈 세월 살다 가셨다네 덩기 덩 덩 더쿵
용돈 가끔 드리니 내가 제일 좋다 의지하시던 작은 아버지도 떠난 지 오래라네 덩 더쿵 얼쑤!
나의 두 아들 예론 가별!
얘들아 못난 어미 품어줘서 고맙구나.
덩 더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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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 더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