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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야 Oct 21. 2024

준비 없이 보낸 힘든 날들

슬픔 속에서 새로 알게 된 인간성

영호는 따사로운 가을볕에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다. 그리고 바다색깔을 하늘에 펼쳐 놓은 듯한 깔끔한 파란 가을하늘이 보고 싶어 눈을 떴습니다. 고개를 들어 실눈을 살며시 뜨고 바라본 가을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맑고 깨끗하게 염색한 커다란 천을 깔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문득 지난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그날은 약간 더위가 남아있었던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초등학교 6학년인 큰 딸이 "엄마! 잠깐 와 보세요~ "라고 말하면서 엄마를 급하게 불렀습니다. 영호는 주방에서 잡일과 설거지를 하다가 깜짝 놀라서 급히 달려갔습니다. 큰딸 옆에는 잔뜩 겁먹은 4학년 초등학생인 둘째 딸이 쪼그리고 앉아있었습니다. 놀란 영호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왜 그렇게 앉아 있어? 어디 아프니? 무슨 일이 있어?"라고 말을 조심히 걸었습니다. 둘째 딸은 대답 없이 그대로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주 작은 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 엄마! 조금 전에 움직이는데 소리가 나서 봤더니 바지 뒷부분이 뜯어졌어요. 어떻게 해요?"라고 울 먹으며 말했습니다. 순간 영호는 황당했고 두려워하는 딸을 껴안아주었습니다. 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잔뜩 겁먹고 두려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큰집 거실에서는 남편과 시댁 사람들이 조의금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영호는 이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둘째 딸의 모습을 본 후에 더욱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윗동서인 형님한테 그런 상황을 말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거실에서는 큰 시누이가 놀라면서 옷을 살 수 있게 돈을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댓 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영호는 깊은 한숨과  서운감을 느꼈습니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황당한 일을 겪고 있는데 무반응이라는 그 상황이 야속했습니다. 남편이란 사람은 장남인 형의 눈치만 살피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인 영호는 두 딸을 불러서  집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둘째 딸에게 말했습니다. "옷은 찢어질 수도 있고 그 바지를 너무 오래 입어서 그럴 수 있어.  지금  가서 네가 입고 싶은 옷을 사줄게"라고 말하고 두 딸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햇볕이 너무 따갑게 느껴져서 인상을 더 쓰면서 영호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 지역이 시댁이라 지리도 잘 몰라 사람들한테 물어보며 옷가게를 찾아갔습니다. 둘째 딸이 원하는 옷을 사서 입히고 다시 시댁으로 걸어갔습니다. 발걸음이 아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 사연이 있었습니다. 영호네 가족은 며칠 전 일요일 아침에 윗동서 형님이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암투병하시는 시아버님이 둘째 아들인 영호의 남편과 가족을 찾는다고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바로 시댹에 와서는 일주일이상 머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시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시아버님은 암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셨고 영호네 가족이 보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시아버님은 거의 15년 전부터 뇌졸중으로 병든 아내인 시어머님을 옆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병시중을 하셨습니다.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하시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는지 시어머님보다 먼저 암으로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시아버님의 질병 원인은 스트레스는 높고 제대로 풀지 못해 쌓이고 쌓여서 생겼을 것 같습니다. 시아버님이 사망하는 전날 아침에 갑자기 시댁에 오라는 윗동서의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두 딸을 챙겨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당일치기로 다녀올 생각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달려갔습니다. 운전을 하는 남편은 불안감으로 편하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시댁에 도착해서 시아버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먼저 누워계신 시아버님 옆으로 가서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남편 뒤를 따라 들어간 영호는 방안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영호의 시선에 보인 것은 방 한쪽에 놓여있는 작고 동그란 나무로 된 상이 었습니다. 그 상위에는 작은 간장 종지와 말라있는 소량의 김치가 있었습니다. 방치된 시간이 얼마나 지났기에 말라버린 김치가 그대로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영호의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편은 이불속에서 달달 떨고 있는 시아버님을 보고는 당황해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넣고 찜질할 수 있는 빨간색 물찜질팩을 찾았으나 없었습니다. 큰집에는 아예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남편은 급하니까 비닐팩에 물을 담아 시아버님의 몸에 갖다 놓아드렸습니다. 남편은 여러 번을 그렇게 했습니다. 시아버님이 조금 좋아진 듯했습니다. 암진단받은 시아버님이 더 이상 병시중할 수가 없어 시어머님은 요양병원으로 가셨습니다. 영호는 늘 그랬듯이 시댁에 도착하면 바로 주방으로 가서 윗동서를 도와 일을 했습니다. 주방에서 일을 하고 저녁 식사까지 모두 함께 먹었습니다. 시아버님은 영호네 가족이 먼 길을 가야 하니 빨리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시아버님께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고 인사했습니다. 영호네 기족을 배웅해 주신다고 시아버님은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서 현관 앞까지 어렵게 나오셨습니다. 영호네 가족은 다시 인사를 나누고 현관밖으로 나와서 출발하여 집으로 향해 달렸습니다. 영호네 부부는 시아버님을 뵙고 오는 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아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영호네 말라있던 김치와 그 작은 나무상이 자꾸 생각나서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두 딸은 잠이 들었습니다. 주말이라서 도로정체가 심하여 거의 두 시간을 달려서 톨게이트를 벗어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윗동서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시아버님이 응급실에 들어가셨다고 다시 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영호네 가족과 인사를 나눈 후에 시아버님은 현관밖으로 나오셔서 담배를 피우시다가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골든타임에 응급처치를 할 사람이 없었고 112를 요청하여 병원 응급실로 모셨다고 했습니다. 영호도 놀랐지만 더 충격을 받은 것은 남편이었고 떨리는 몸자체로 운전을 했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영호네 기족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톨게이트에서 회차했습니다. 두 시간 이상 달려왔던 도로를 다시 달려갔습니 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시아비님이 중환자실로 올라가셨고 그 앞에서 대기해야만 했습니다. 영호와 다른 가족이 모두 초조함으 로 한참을 대기실에 앉아있다가 잠시 일어나서 걷기를 반복했습니다. 자정이 한참 지났을 때에 시아버님이 운명하셨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장례식을 준비하고 여러 과정을 거치며 병원장례식장에서 지냈습니다. 시아버님을 보내드리면서 영호는 많이 울었습니다. 아니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서울 삼성병원으로 항암치료받으려고 오셨을 때 영호네 가족이 살던 집이 반지하로 공기가 좋지 않아서 시아버님을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분양받은 아파트에  1년 뒤 이사할 예정이었고 그 집은 환경이 좋은 곳이라서 시아버님을 모시려고 영호는 생각했었습니다. 시아버님이 문어를 좋아하신다고 남편은 그것을 드리라고 사 왔습니다.

치료 중이라서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는데 답답한 남편의 행동에 영호는 화가  났습니다.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영호는 알기 때문에 남편이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접시에 문어를 썰어서 초고추장과 같이 담아서 시아버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시아버님은 바라만 보시다가 문어 한 조각을 입에 넣으셨습니다. 잠시 후 바로 드시기가 어렵다고 상을 밀어 놓으셨습니다 영호는 미리 준비했던  부드러운 음식을 시아버님께 드렸습니다. 각종 야채를 넣어 만든 음식으로 씹기가 좋고 부드러운 음식이라 시아버님이 드시는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하기 도전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영호는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영호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습니다. 장례식 시작일부터 삼우 제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영호네 가족은 속옷. 겉옷 등 갈아입을 것이 없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영호는 장례식을 치르면서 두 딸의 모습에 놀랐대견함을 느꼈습니다.  초등생이라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조문객을 위해 심부름을 아주 잘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다 보니 둘째 딸아이의 바지가 수선할 수 없게 뜯어져서 의류매장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영호의 마음은 아프고 속상했습니다. 영호와 두 딸은 이리저리 옷들을 보고 둘째 딸아이에게 맞는 옷을 찾아서 구매하고 시댁으로 돌아갔습니다. 시댁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거실에서 조의금을 계산하던 사람들은 정리하고 각자 쉬고 있었습니다. 영호도 걸어오느라 힘이 빠져 거실에 앉아서 시원한 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때 윗동서가 큰 보자기를 갖고 나와 펼쳤습니다. 와우~~ 그 펼쳐진 보자기에는 아주 커다란 금두꺼비부터 크고 작은 금반지까지 온갖 금을 모아놓은 듯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금을 좋아하셔서 모으셨다고 이전에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이 정도로 많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막내 시누이의 전남편이 금은방을 해서 더 많은 금보석을 모으신듯했습니다. 한쪽에서 쉬고 있던 영호는 펼쳐진 보자기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금도 아닌 주화를 들어서 영호가 보려는 순간 시아주버니가 큰소리로 윗동서한테 말했습니다."이것을 당장 치워!. 아직 엄마가 살아계신데 왜 갖고 나왔어?"라며 굉음을 내어 깜짝 놀란 영호는 바로 떨어뜨렸습니다. 얼마나 큰소리로 말했는지 영호는 그때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청 심하게 충격을 받은 영호는 소리쳤던 그 사람이 괴물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그 많은 금은보화는 그날 이후로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 부부의 품속으로 들어가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염호의  남편이 직장생활을 10년 이상 근무했지만 그동안 집안의 큰일이 없었고 이번 시아버님의 장례식이 처음이었습니다 다. 그래서 조의금이 제일 많았습니다.  알다시피 조의금으로 받은 돈은 다시 되돌려줘야 하는 빚과 같습니다.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조의금 결산 후에 영호네는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시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윗동서와 아주버니라는 사람들의 두 얼굴 볼 수 있었습니다. 영호는 시부모님 다음으로 시아주버니와 윗동서를 믿고 잘 따르며 좋은 사람들이라고 칭찬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언행을 보고  큰 충격과 실망으로 영호는 머리까지 어지 러웠습니다. 영호는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혼자 돈문제로 고민하고 신경 쓰느라고 더 힘들어했습니다. 아파트대출이자, 교육비, 생활비 등 월지출 금액이 기본적으로 큰 금액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영호의 남편은 경제 개념이 없고 가정생활에 대해 무관심하여 함께 논의하거나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달마다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며 살아가는 영호는 삶의 자체가 힘들고 매일 지친 몸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아버님의 장례를 모두 치르면서 영호는 스트레스와 상처만 받고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그다음 날부터 영호는 몸이 너무 아팠습니다. 무심한 남편은 영호가 아프다고 해도 모른 척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두 딸 케어도 영호의 몫으로 남습니다.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자차로 움직이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틈새시간에  두 딸을 케어하는 것도 영호가 해야 할 일이라서 쉴 틈이 잠시도  없었습니다.

영호는 지금도 지난 긴 시간을 생각하면 눈에 살짝 물이 고였다 사라집니다. 어떻게 그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왛는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호는 파란 가을하늘을 다시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봅니다. 시간은 흐르고 이 또한 모두가 지나가는 것이 인생임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영호는 오늘도 무사히 보내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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