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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야 Oct 27. 2024

계획된 인생의 결말은 같을까?

혼자만의 삶을 살았다면 달랐을까~

제법 비 내리는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거실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숲 속에서 듣는 듯합니다. 가을이라 조금씩 단풍 든 나뭇잎 위로 빗물이 흐릅니다. 영호는 빗소리가 듣고 싶었고 비 내리는 모습이 보고 싶어 졌습니다. 향긋한 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고 적당한 온도로 맞춰서 살짝 한 입을 마셨습니다. 담백하면서 뭔가 쫙 느껴지는 맛이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영호는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  풍경을 즐기는 동시에 빗소리를 들으니 스르륵 잠에 빠져들고 싶어 졌습니다. 포근하고 달콤한 카스텔라빻같은 잠이 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영호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여유롭게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영호는 특별한 일정도 있고 해서 2박 3일 다녀올 생각으로 여러 개의 가방에 짐들을 넣어 담았습니다. 양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고 출발은 했습니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빗속을 20분 정도 달려가는 중에 영호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거부감이 일어났습니다. 여행도 좋지만 강한 비도 내리는데 장시간 먼 길을 가서 수많은 사람들 틈새에 끼어 일정을 펼쳐나갈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이번에는 집중해서 기도를 하고 싶었는데 뭔지 모르지만 몸이 받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영호는 고민 끝에 달리던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렇게 먼 곳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곳이 생각나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예정했던 목적지는 두 시간 이상 달려서 가기에는 비도 많이 내리고 마음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빗속에서 달리던 방향을 변경하여 도착한 곳에서 영호는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며 비가 내리는 바깥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창밖의 빗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들리듯 말 듯했는데 점점 비가 굵어지더니 소리도 강해져서 귓가에 시원한 폭포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음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빗고리는 생음악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영호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남편이란 사람을 신뢰하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이란 사람에 대한 모든 것에 이젠 콩깍지가 벗겨지고 그 실체를 정확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호는 모든 것을 남편만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혼초부터 상대방을 잘 파악해서 대처하고 대우를 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영호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호는 상대방에게 무조건 존중해 주고 배려와 양보해 주면 100%는 아니라도 그 대가로 상대방도 영호와 같은 생각과 마음으로 조금은 상대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호만의 생각이었고 상대방은 그런 베풂을 전혀 몰랐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28년이란 시간 속에서의 수많은 아픔과 고통의 순간들을 영호는 잊고 다시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영호는 남편과 다시 시작할 시기마다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행복을 꿈꾸며 설레기도 했었습니다. 그러한 영호와는 다르게 남편은 변함이 없었고 또다시 아픔을 겪어야만 했었습니다. 영호의 남편은 평소에는 말도 없고 하숙생처럼 새벽에 나가고 밤 9시가 넘어 들어오거나 만취가 되어 새벽에 들어오거나 했습니다. 만취가 되어 몸에서는 심한 술냄새와 담배냄새 등으로 악취가 나는 그 상태가 되어야만 영호한테 달려들거나 간단하게 말을 했습니다. 영호는 그런 남편의 행동이 너무나 싫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만취된 모습과 술과 담배로 인한 악취를 심하게 풍기는 아빠의 모습을 아이들이 볼까 두려움에 영호는 신경이 쓰였습니다. 매일 아이들을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하고 책을 읽어주거나 음악을 들으며 잠자게 했습니다. 영호의 남편은 그런 본인의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조금도 미안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예 그런 것은 생각조차도 않고 인지하지도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부부관계도 결혼초부터 본인의 감정대로 아무 때나 기습공격하듯이 요구했습니다. 영호를 아껴주고 사랑을 주셨던 외할머니께서 영호의 결혼초기에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영호는 부모보다도 더 외할머니를 좋아했고 그래서 외할머니와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과 추억이 많았습니다. 영호는 외할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져서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호는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남편이었고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 영호는 남편의 태도에 더 당황했었습니다. 남편은 외할머니의 사망소식으로 놀라고 슬픔에 젖어 우는 영호의 말소리를 듣고 짜증 나는 말투로 퉁명스럽게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영호는 아무 말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던 것이 생각났니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슬픔이 가득한 영호의 몸에 남편은 요구했고 그것을 거부한 영호는 남편으로부터 매우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아픔이 있는 영호는 언젠가부터는 강하게 거부하면서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10년 이상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영호는 40대 초반에 역경으로 가득한 삶 속에서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고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폐경과 갱년기를 이른 시기에 맞이했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50대가 되어야 겪는 일인데 영호는 너무나 이른 나이에 혼자서 오로지 모든 것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에 하혈이 심하고 통증이 심해서 혼자 병원을 찾아갔었습니다. 급성자궁경부증으로 하혈이 너무 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하혈이 심해서 참고 있다가 영호는 혼자 병원에 갔었습니다. 의사로부터 지궁경부에 혹이 있다고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영호는 수술하기가 싫었습니다. 폐경기라면 두고 봐도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견뎌보기로 했었습니다. 그 뒤로 폐경이 되었고 갱년기가 동시에 덮쳐서 몸의 이상한 반응들로 힘들고 괴로운 시간들을 홀로 외롭게 이겨내야만 했던 영호는 늘 슬프고 비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습니다. 남편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고 원가족들도 얘기를 나눌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창 성장기였던 두 딸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감추고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두 딸이 사춘기를 지나 더 성장했을 때에 얘기해 보니 이미 딸들은 엄마인 영호의 슬픔을 몸으로 느껴서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두 딸들한테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영호는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딸들에 슬픔을 감추려고 영호는 무척이나 신경 쓰고 애썼는데 그 결과는 의미가 없었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듣거나 보거나 이런 것이 아닌 본능적으로 느낌을 몸이 체득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영호는 두 딸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한창 성장기 때에 원만하지 못한 가장환경으로  불안감을 주고 편안하지 않는 집안의 환경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게 한 것이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그 보상이랄까 혹은 대가로 영호는 딸들에게 경제적인 여유로움을 누리게 해 주고 싶어서 더 강하게 온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영호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빗나가기만 했습니다. 영호는 50세가 지나면 모든 것이 예상대로 잘 될 줄로만 알았습니다. 영호는 50세가 지나고 더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을 살아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영호는 50세 전까지 미친 듯이 열심히 살고 그 후에는 인생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거라고 예상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혼이란 게 혼자만의 생활이 아니고 혼자만의 계획대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영호는 몰랐습니다.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해야 할 50세 이후의 일상은 영호를 더 힘들고 괴롭게 했습니다. 차라리 혼자만의 삶이었다면 이보다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영호는 생각했습니다. 영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창밖의 강한 빗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합니다. 모든 것을 가라앉이고 영호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집중하여 빠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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