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예전 직장 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교수님이 맡으신 학회의 간사로 일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아이들 기르고 전업주부로 지낸 지 너무 오래되었던 터라, 그 제안이 약간 설레기도 했다. 재택근무로 일할 수 있고, 페이도 받고 말이다. 물론 중간중간 전화나 온라인상의 처리해야 할 업무들로 중간중간 많이 분주해질 터였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리고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따르는 멘토님과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고 무엇보다 나의 마음은 어떤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엇이든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편은 못된다. 하지만 무언가 해야겠다 생각하면 앞뒤 안재고 하는 편이다. 그것이 나의 가치관과 소명과 맞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아이들을 온전히 육아하는 전업주부로 지내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어떤 다른 일보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연락 주신 교수님 전화는 조금 달랐다.
'혹시 이게 내 비전과 관련된 일 아닐까. 더욱이 일 감각이 더 떨어지기 전에 전공 관련해서 뭐라도 해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조바심도 나고, 그냥 앞뒤 가리지 말고 하는 게 맞는 건 아닐까.. 고민하는 내가 겁쟁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걸까.
하게 되면 바로 시작을 해야 하는 일이다. 재택근무이긴 하지만, 교수님들과 학회 회원분들과 대면하는 일들이라 꽤 꼼꼼하고 실수하지 않아야 하는 업무였고, 일처리를 익히는데만 연말, 연초의 시간들을 다 사용해야 하고 그러자면 가장 즐거워야 할 가족 추억의 시간들이 어쩌면 이도저도 아닌 불만의 시간들로 채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안될 것 같은가?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
밤새 뒤척이며 고민하고 또 고민을 해보았다.
아침시간, 나에게 일을 권해주신 교수님께 너무 감사하지만 이번에는 못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올까.. 시간이 지나 갈수록 난 과연 세상가운데서 생산적인 일을 할 수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두려움도 한 구석 생기지만, '아이들은 내 삶의 축복'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지금 나는 전업주부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엄마도 엄마의 삶의 때가 되면 엄마의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우리 아이들과 눈 오는 길 따라 눈 오리를 만들며, 따듯하게 대야에 물을 받아 발과 손을 녹여주며, 출출한 배를 채워줄 간식을 준비한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나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