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26(진정한 자유인, 조르바)

by AMAP

전에 어떤 기사에서 본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50-60대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 문학작품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아마 생활전선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사는 중년 남성들이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순간의 행복(일명 소확행)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행복전도사 조르바를 많이 흠모하나 보다. 내 선배님 한 분은 그 책을 읽으면 바로 회사를 때려치울 거 같아 두려워서 아직 안읽었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작품을 읽어보셨거나 안소니 퀸(Anthony Quinn)이 열연했던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조르바는 자유 그 자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잠자고 싶을 때 자고, 욕하고 싶을 때 욕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내일의 희망이나 약속보다는 지금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누군가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니 늘 자유로운 사람이다. 물론 작품을 읽을 때 중간중간에 여성비하적인 발언이 나오는 게 좀 불편하긴 하지만 약 100년 전 크레타섬이 배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다.


이 책에서 내가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쳐놨던 구절 몇 개를 소개한다. 인생의 진리를 탐구하는 데에는 시공간의 차이는 큰 의미 없나보다. 19세기 그리스 작가의 생각이 인류의 지혜를 집대성판이다.


- 행복은 체험하는 동안에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 볼 때에만 우리는 갑자기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다.


-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마치 어렵고 어두운 필연의 미로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놀았다.


-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포도주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 단지 그 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묘비.jpg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

몇 해 전에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북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초대손님으로 나오신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님께서 하신 말씀이 특히 와닿았다. 자유란 '원하는 것이 없는 상태'라는 것. 이 말이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생각을 그대로 대변해 준다. 크레타섬에 있는 그의 무덤 묘비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I hope for nothing)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Δε φοβάμαι τιποτα.(I fear nothing)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Είμαι λεύτερος.(I'm free)

나는 자유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원하는 게 없으니 누군가에게/무언가에 얽매일 일이 없고 그러니 당연히 자유롭지. 먹고 살자고 온갖 험한 꼴 다 보며 생업전선에서 고생하는 가장들에겐 평생의 희망과도 같은 말이다.


박물관.jpg
조르바책2.jpg
(좌)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 (우) <그리스인 조르바> 다양한 번역본들

크레타섬에 갔을 때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과 그의 무덤은 Must-See 장소 중 하나였다. 조르바를 탄생시킨 작가의 흔적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에 지어진 박물관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간 작은 산 중턱에 있었다. 그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전시하고 있었고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이 위대한 작가의 작품 중 아는 게 조르바 하나 뿐이라는 점이 아쉽기만 했다.


컵2(춤).jpg
주차장.jpg
(좌) 조르바 기념 머그컵, (우)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 앞 주차장 벽화

나오는 길에 기념품숍에서 세계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기념 머그컵도 사고, 주차장에서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안소니 퀸의 조르바 댄스까지 따라해 봤다. 조르바의 자유를 떠올리면서.


와인 피칸.jpg 하루를 마감하는 와인 한잔

위에 언급했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작품에서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포도주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 단지 그 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라고 했다. 살아보니 인생 별 거 없더라. 매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그날그날 누리는 작은 행복을 즐기면 그걸로 충분하더라. 딱히 바랄 게 없으면 그게 자유더라. 군밤 대신 피칸 몇 알 놓고 와인 한잔 하면 됐다. "한잔 해~"




작가의 이전글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25(외국에서도 한식은 못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