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대, 같은 것을 바라봤던 두 시대의 군중들
머큐리 스튜디오 타이틀이 떠오르고, 관중들의 함성이 공간을 메울 때, 여전히 화면은 암전이었지만 그 순간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어둠이 공간을 덮으면 스마트폰의 조명을 켜곤 하는 21세기와 달리 40여 년 전의 그곳은 라이터를 켜서 무대의 주인공들을 반겼다. 누구도 촬영을 시작하지 않았고 그저 각자의 눈을 최대한으로 크게 떠 모든 순간을 머리에 담으려 최선을 다했다. 우리와 그들은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시대에 있었다. 어쩌면 공연실황은 다른 두 시대를 하나로 합칠 수 있는 묘수일지도 모른다.
사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한 편의 작품을 통째로 본 적은 없었지만 퀸의 곡들을 즐겨 들은 입장에서 어쨌든 괜찮은 버전의 비디오가 본 공연 비디오였기에 유튜브로 이전에 단일 영상들을 여러 차례 봤었고, 공연실황이 태생적으로 콘서트 현장의 아류일 수밖에 없다 여기는 내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이 광음시네마와 같은 특별관 포맷은 특히 나의 두 번째 우려를 상당히 상쇄시킬 만한 것이었다. 밴드 사운드에 있어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의 차이가 가장 큰 지점이 드럼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우퍼가 강조된 광음시네마는 현장감이라는 즐거움을 상당한 수준으로 구현해 준다. 육중한 저음의 드럼 소리는 특히나 'I'm in love with my car'나 중반 기타 솔로 등에서 그 빛을 발한다. 멜로디를 즐기기 위해선 돌비시네마라는 포맷이 정말 훌륭하지만, 묵직함에서 비롯되는 현장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광음시네마는 정말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겠다.
볼 맛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밴드 공연은 들을 맛은 있지만 볼 맛은 떨어질지도 모른다. 안무와 같은 비주얼적 요소가 덜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우려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괴물에 의해, 해소를 넘어 해결이 되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말해야겠다. 퀸은 이상한 밴드다. 퀸을 좋아하냐는 말은 프레디 머큐리를 좋아하냐는 말과 동의어다. 누군가는 비틀즈를 좋아하지만 존 레논을 좋아하는 대신 폴 매카트니를 싫어할 수 있다. 누군가는 오아시스를 좋아하지만 리암 갤러거의 감성을 좋아하는 동시에 노엘 갤러거의 감성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다. 누군가는 본 스콧의 AC/DC를 좋아하지만 브라이언 존슨의 AC/DC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퀸을 좋아하면서 프레디를 좋아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보다 자세한 분석의 과정에서, 혹은 심술 맞은 홍대병에 기인해서 등 나머지 멤버를 더 좋아하는 '과정'이 있을지라도, 결국 퀸에 대한 애정은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애정으로 돌아가게 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래서 퀸에 대해 설명하긴 어렵다. 프레디 다음으로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브라이언 메이, under pressure와 같은 곡에서 착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존 디콘, 분노에 가까운 속주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로저 테일러 모두 눈이 가지만, 본작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프레디는 정말 무대를 잘한다는 생각이었다. 사실상 프레디 홀로 볼거리를 모두 책임지는 무대의 구성은, 동시에 공연의 완성도를 프레디라는 인물에게 너무나 많이 의존한다는 인상이 크게 든다. 그래서 프레디가 페이스 조절을 하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무대의 힘은 다분히 약해진다. 한 명의 존재가 너무나 거대한 재능을 타고났기에 생겨나는 아쉬움이라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