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갑이 되는 것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된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제목을 보면, 글을 쓴 사람이 “AI영역을 엄청 잘 알고 있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인문학전공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누군가, 필자에게
“AI 란?”이라고 묻는다면 나이에 맞게,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라고 답한다. 내게 AI는 책을 들춰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무엇이든지 물어도 답해주는 친절한 동료 같다. 예컨대, 어느 특정 영역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또는 어느 특정 공간에서만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의 요청이 온다.
지금까지는 주로 내가 주고픈 메시지에만 집중했다면, 어느 날부터 인가 그런 직장인들이 원하는 게 과연 무얼까? 어떤 고민들이 그 직업에서 혹은 그 제한된 공간에서 생길 수 있는가? 를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히 그런 직업군과 그런 공간에서 지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필요한 메시지가 무엇일까를 AI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예외 없이 친절하게 줄줄이 나오는 그 해결책에서 강의 내용의 가르마를 탄다. 그렇게 준비된 내용들은 전과 달리 호응이 좋아서 이제는 AI가 없으면 안 될 지경이 되었다. 이쯤 되면, AI는 내게 다른 의미의 소중한 동료이다.
이즈음 매체를 보면, AI에 관해 쏟아지는 내용들로 넘쳐난다. 수많은 유튜브 썸네일만 보면, 괜스레 AI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 같다. 고학력 전문직은 물론 사무직 서비스 업 같은 단순 종사직부터 변호사 작가 분석가 회계사 등 전문직까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어쩌면 AI로 인해 인류 파멸이라는 시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시무시하다. 그러니 우리는 미래를 위해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라는 시청자나 청중들의 근심 어린 질문에는 하나같이 독서를 많이 하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해력과 창의력을 길러 AI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AI의 능력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그런데 외국의 AI 관련 매체들을 보면 메시지가 달라진다.
AI 관련 회사 CEO나, 그 영역에서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했던 전문가들은 한국과 달리 AI에 관한 활용도 내지는 미래 인류의 전망에서 AI가 어떻게 인류의 삶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또는 의료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하는 좀 더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들도 미래에 AI 가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으로 어쩌면 무서운 현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잊지는 않는다.
똑같은 현상을 두고 한국과 외국의 차이나는 강조점을 보면서 문득 기시감이 든다. 기시감이 든다는 것은 한국은 여타 학문처럼 늘 다른 나라를 따라가는, 아니 새로운 것을 찾아 몰입하고 또 다른 창조작업에 애쓰기보다는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팔로우하는데 항상 익숙해져 있다는 인문학을 하면서 느꼈던 감상이 생각 나서다.
-인류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도구-
문제의 핵심은 무스타파(Mustafa Suleyman)가 말한 것처럼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라는 것이다. 마치 구석기시대 인류가 ‘망치’라는 연장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엄청난 인류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 냈듯이 또는 페니실린이라는 약을 발명해 당시 페스트라는 전염병으로 수많은 죽음을 봐야만 했던 상황을 막아내 결과적으로 인류의 장수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물리적인 도구나 페니실린 같은 화학적 기재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지난 몇 년간에도 우리는 여지없이 그에 합당한 면역제재 개발로 위기를 극복해 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도구가 AI 인 것이다.
-AI 가 '갑'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그 AI라는 도구는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그 어떤 도구보다 가장 막강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능력은 인간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구석기시대 망치 같은 연장이나 페니실린 같은 명약이 인간이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쓸 수 있는 도구와는 달리 역으로, 그 도구인 AI가 인간을 자신의 도구로 쓸지도 모른다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가정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즈음 언어로 하자면 AI가 ‘갑’이 되고 인간이 ‘을’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AI에 관한 미래 전망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의학분야 등 실생활에서 바람직하게 활용되고 있는 내용들을 접하면서 AI라는 도구가 인류복지에 활용될 수 있는 접점을 더 열심히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AI라는 주사위가 던져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AI가 몰고 올 공포스러운 이야기 대신에 그 도구가 쇠로 된 망치나 페니실린 같은 명약처럼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이끌어야 하는 선도적인 마인드가 절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서, 필자는 다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자타공히 AI 영역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독서해서 이해력과 창의력을 키우라고 한다. 이러한 강조점은 독서를 많이 했던 그들의 경험에서 나온 언어이다. 늘 자신의 경험 범주에서 이해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 같은 인간 인지 능력의 최고점을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다른 답변을 주고 싶다.
독서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인지능력을 확장시키는 일에 몰두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직관력 창조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간단한 예시를 들자. 이미 미국에서는 AI가 인간의 건강을 위한 케어 시스템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누군가를 진단할 때 AI는 그 사람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는 통계적인 기반에서 설명하지만, 인지능력이 고도로 발달되면 그런 데이터 없이 이름만 들어도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럴 때는 AI에게 '울'이 아니라 '갑'이 될 수 있다. 그 '갑'은 '을'인 AI가 만들 데이터에 새로운 정보 및 기초를 위한 설계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데이터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결과물을 데이터가 형성되기 전에 감지한 내용을 미리 예측해 줌으로써 더 빠르고 더 정확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예시는 실지로 필자가 실험했던 내용들이며 이미 저서(The Mysterious Human Body:How We Can Unlock our Human Potential. amazon.com) (노화,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책세상)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제 인류사회에 AI가 등장한 이상, 어떤 일이 있어도 AI가 '갑'이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갑'이 되어 AI를 '을'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접근법이 모색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