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싸에 다녀온 소감 그리고 여기서 이대로 행복하리라.

그곳 거기에 머문것처럼

by 수호천사

티베트에서 목장지대에서 티벳 목장주들의 집을 지나칠때면

그 집의 부유함을 알수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고 한다.

바로 집앞에 티벳털소 똥으로 만들어 놓은

당장 높이다. 높이가 높을수록 수많은

티벳털소를 소유하고 있다는 증명이니까.

드넓은 산악 지대에서 자유 자재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털소들 그 털소들도 고단한 삶인것 같다.

내륙의 황소들처럼 들에서 늘쩡 늘쩡 풀을 뜯어 먹고는 그늘을 찾아 쉬는 그런 호사가 그들에겐 없는 것 같다.

자는 시간 외에는 끝없이 풀을 찾아 다니고

풀을 뜯어 먹다가 때가 되면 삶을 마치는게 티벳 들소들의 삶이다.

우리들의 삶과 닮아 있지 않은가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들 삶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돌보고 가꾸고 팔고 잡고 하는일

또한 티벳목장주들의 삶이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자

어쩌면 또 그들을 그 땅에 묶어두는

보이지 않는 족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그 고원지대에서 수천년을

살아냈고 이민족의 침략은 거의 받아 본적 없이 수천년을 그들만의 문화를 지키고 발전 시키며 오히려 전성시기의 몽고족들에게 구빌라이칸의 스승으로 티벳불교를 전해주며 그들의 문화를 빛내왔다.


총포로 무장된 현대 군사력이 생기기전

그들에겐 천적이 될 이민족이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그들은 전세계에

그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마윈 회장도 가수 왕비도 홍콩 액션 배우

이련걸도 유리대왕 복요그룹 회장도

사회에서 일각을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티벳승려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자신만의 깨달음을 깨우친다.

그들이 후원 하는 자금만 해도 수조이상에 달한다.


내가 알고 느껴온 티벳 승려들은 내륙 불교계처럼 온갖 파계를 다하고 수억짜리 수입차를 끌고다니고 숨겨놓은 내연녀 자녀들을 갖고 있는 그런 망나니 승려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존중받으려면 도덕적으로 일반 사람 이상으로

계율을 지켜야 하는 이 단순한 진리가

어떤 사이비 종교재단들은 돈을 세탁하는 목적으로

전락되어 진전한 진리가 철학이 외면받기도 하는 세월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마도 내가 느낀 말못할 그 무엇인가를

그들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때론 말할수 없는 그 것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 한다.

영혼에 진동을 가해 같은 사물 사람 사건을 대해도 전혀 다른 맘가짐으로 대하고 대처할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가장 맘에 와 닿은것은 그들의

삶이 전혀 다른 이들에게 독과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털소의 똥까지 모아 정성껏 말려서

귀한 목재대신 땔감으로 사용하는 삶

그야말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천연적인 산소 부족외 부족할것 없는

신앙 풍요로운 먹거리 아름다운 풍경

그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샹그리라 가 아닐까.

산소 부족은 적응하면 해결될 문제일것 같다.

산소 부족속에서도 그들의 선인들중

가장 위대한 의학자로 불리는 宇妥·宁玛云丹贡布(위퉈 닝마윈단꿍뿌)라는 의학자는 기원 708년에 태어나 833년에 별세 하셨다. 무려 125세를 사셨다.


뭐라 딱히 말할수 없는 현대의학으로 해석이 안되는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정신세계를 풍요롭고 안정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티벳인들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 같다.

그것이 전세계 인들이 티벳 문화 종교 의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라 생각 된다.


티벳털소는 야생에서 풀만 먹기에 그 똥을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해도 실내에서

전혀 역한 냄새가 나지 않고

오히려 청초의 향이 난다고 한다.


티벳털소 말린 고기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지방은 거의 없다고 한다.

2박3일에 불과한 문화 탐방이었지만

뼈 줄거리들만 모아 사진으로 머리속에 담아왔다.

대소사만 관련된 전설 역사만 한글로

다시 풀어내도 책 한권은 나오고

달라이라마 역사에 대해서도 책 한권은 나오고 티벳은 캐도 캐도 끝이 없는

보물창고 같은 지역이라 생각 된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서

나의 미래를 그려볼수도 있다.

나의 상처를 치유 해낼수도 있고

그 과정을 적다 보면 인연이 닿아

보게 되는 이들도 치유의 느낌을 얻으리라

생각 한다.


모든 변화에는 고통이 동반한다.

모든 성장에는 희생이 동반한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거부한

공동체 민족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거란족 만주족이 그렇게 사라져 갔고 유럽 까지 정복 했었던 몽고족들은 지금은 외몽골 인구가 350만명도 채 안되고 문학 작품 음악 등 세계에 내놓을 만한 현대명작이 별로 없다.

티벳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문화를

알리고 전해내랴가는 작업을 통해

문화와 전통을 이러 내려가고 있다.


예를 들면 宗者拉杰라는 티벳 화가는

400여명의 티벳 화가들을 동원하여

27년에 거쳐서 기네스

기록에 오른 중국 장족문화예술대관 이란 작품을

완성 해냈다.

사라질 의기에 있던 천여년전 탕카 작품들을 복원하여 다시 그려 냈고 천여년간의 종교지도자들의 초상화를 담고 의학서적 벽화 등을 탕카 그림으로 다시 재생헤 냈다.

어떤 신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탕카 작품은 일반 그림처럼 붓과 먹이 있으면

그릴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기본 그림을 연필로 그린후 갖곡 천연광물로 만들어진

염색재료들로 한땀 한땀 수 놓듯이 칠해간다.

그리하여 수백년 천년이 지나도 그 색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 독특한 예술 작품 가치로만으로도

그 어느 나라 예술품도 따라 갈수가 없다.

그 염색도료중에는 금 은을 비롯한 산호 마노석 진주 보석 등등 귀중한 귀금속과 광물 보물들이 들어 간다.

그야말로 작품 자체만으로도 보물인것이다.

중국도 가난 하던 시절 70~80년대

자금이 부족하면 다른 작품을 그려 일본 한국에

가져다 팔던가 이미 완성된 작품들을 해외에 갖고 나가 전시해서 전시비용 들어 오면 계속 그려나갔다고 한다.

신앙의 힘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되는 기적같은

일들이 그곳에서는 수없이도 많이 일어 나고는 한다.

사찰의 난간 손잡이 조차 동으로 멋지게 만들어

예술품처럼 만들어 내는게 그 민족의 품격이다.

그런 정신력이 그들을 수천년간 생존해내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후대를 남기고 싶은 인간의 기본 본능마저

억제하게 만드는 시대

티벳인들의 삶의 지혜

삶의 철학이

우리에게 새로운 해결책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게 유익한것은 공짜로 주어 지는 법이 없다.

내 몸을 건강하게 근육덩어리로 튼튼하게 만들려면

매일 시간을 들여 운동을 해야 하고

내 정신을 평온 하게 유지하려 하면

수박 겉핡기 식이 아닌 진짜 과학적인

방법으로 명상을 배우고 명상을 하면

예하면 김주환 교수님이 가르치는 대로

하면

그 평온을 얻을수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그만큼 시간과 정력을 누구든지 쉽게

투입할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후대는 안 남겨도

나 자신이 건강하게 행복 하게 살다 가려면

자신에게 맞는 그런 인생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 된다

그게 니체 철학이 될수도 있고

불교가 될수도 있고 기독교가 될수도 있고

티벳불교가 될수도 있다.

모든 종교 철학의 궁극적 지향점은

고통을 줄이고 이생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세에 임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민족도 천손신앙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단군이 하느님의 아들이

지상의 곰 토템을 한 부족과 연을 맺어

최초 나라를 건국 하고 법 제도를 확립하고

죄를 지으면 벌을주고 공을 세우면 상을 주고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군사를 키우고

삶이 고리타분하지 않도록 음악을 만들고

결국 목적은 잘 살고 잘 죽기 위해서가 아니였을까.

그런 면에서 티벳 신앙과 닮은 면이 많아 보인다.

본교는 우리의 토속 신앙과 닮았고

티벳 불교는 토속 신앙과 불교의 융합된 교리라 생각 한다.

홍익인간 재세이화 사상과 천손후예라는 점

샤머니즘 등등 거기에 더해 윤회 사상까지 합쳐서

이생에서의 체험 뿐만 아니라 내세에 대한 기대와 탈출구까지 만들어 놓은 정교한 철학체계가 우연히 만들어 진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도 네팔 과의 인접한 지리적 위치와 풍요로운

유목생활이 뒤받침 해주지 않았으면

완성될수 없는 사상이 티베트를 통해서

생겨나고 완성되어 오늘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적 힘을 보여주며

상처를 치유해주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해준다.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된후 하게 되는 공부는

좋은 대학에 붙기 위한 공부가 아닌

스스로의 삶을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인생이 아닌

적어도 고통이 점점 줄어 들어

고통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 도달하는 삶

그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가

아닌가 싶다.

아침은 성도에서 먹고 점심이 되기전

내 삶의 타전인 항주집에 도착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15분이면 지하철로

도착 할수 있는 내 보금자리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 그때도

알았었더라면

그 생각을 이번은 마지막으로 생각 하리 하면서 이렇게 핸드폰으로 타자를 멈춘다.

잃어버린 시간 만큼 올해는 더욱더

많은 곳에 가서 보고 느끼고 충전 하리라 다짐 하며 또 항주에서의 일상으로 돌아와 본다.

본업은 잃지 말아야 하니까

아직 멀리 날아가기엔 날개가 빈약하니까.

좀 더 훈련이 필요하니까.


15년간 세운 공든탑 스스로 무너뚜릴 이유는 없으니까.


여기서 이대로 행복하리라.

그곳 그곳에 머문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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