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 나 창업 시작하면서 돈은 몇 푼 못 벌고 매일 내 능력을 벗어나는 해야할 일들에 쌓여 있지만 다시 9개월 뒤로 돌아가서 앱 시작할래? 라고 누가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꺼같애 "
"기꺼이"
언니는 수화기 너머로 나에게 말했다 "우리 총, 많이 컸네" 라고
"수연아 학교 가자"
11살 정도였나, 그 즈음에 울산에서 전학 온 친구 한 명이 있었다. 하얀 얼굴에 큰 눈, 그리고 키도 참 컸었다. 수연이는 우리 집 앞 1층 빌라에 살았었는데 그래서 매일 나와 아침에 학교를 같이 가던 친구였다.
"수연아 학교가자"
1층 배란다 앞 마당에서 수연이를 부르면 늘 수연이 대신 수연이 엄마가 대답을 하셨다.
"달별이 왔어? 달별이 아침 밥은 먹었니?"
"아뇨"
"그럼 밥 먹고 수연이랑 같이 가자, 들어오렴"
한 발 내딛고 들어 온 수연이네 집 아침 풍경은 여러 소리와 여러 향이 가득 채워진 집이였다. 담백한 쌀 밥 향기와 사람의 온기로 후끈한 집 안의 온도, 그리고 거실에서 들리는 티비 소리와 주방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 수연이네 집은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보호 받는 기분이 드는 그런 집이였다.
우리 집의 아침은 아무 소리와 향이 없었기에 아마 그때 부터 내 꿈은 수연이네 집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집을 만든 수연이 엄마였다. 나에게 집과 엄마는 결핍이였고 결국 그것은 강력한 꿈이 되는 동기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시험관으로만 임신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술을 했고, 임신 성공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나팔관을 잘라야 된다고 했을 때도 기꺼이 수술을 했었다.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힘들게 임신을 했었고 그리고 그 꿈을 하늘로 다시 보내주는 과정을 겪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간들여였다. 꿈이 한개였던 나였기에 꿈이 없어진 이후 내 삶도 소용 없어졌던 나날들. 그렇게 매일 침대에만 누워 있으며 하루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예전에 했던 생각 하나가 번뜩 생각이 났다.
임신 기긴 중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며 창문을 바라보며 했던 생각.
" 왜 그렇게 임신에만 집착했을까 바보 같이,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자유롭게 내 인생을 먼저 살아본 후 엄마가 되고 싶다.."라고
그리고도 조급함으로 몇 번의 시험관 시도를 더 해본 후에야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간절했지만 현실이 아닌 환상만을 바라보고 시작 했던 창업이였다.
힘든 시절 내가 이겨냈던 방법인 일기를 앱을 만들면 이 앱으로 사람들도 위로를 받을 수 있겠지, 이 앱을 통해 나는 수익도 낼 수 있겠지, 나는 꽤 멋진 직업을 갖게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에서 나는 매일 실패와 좌절을 맛봐야했다. 행복해지려고 나름 큰 돈을 투자해서 앱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앱을 운영하는 건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였다. 젊어서 고생을 사서도 한 다던데 나는 내가 돈 주고 고생을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9개월, 아직도 새싹 창업가이지만 오늘이 아니면 잊혀질 지금의 과정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기로 결심하였다. 매번 중간에 포기한 나에게 이 기록들이 끝까지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게 하기를 기대하면서...
다음 이야기는 창업 준비를 하지 않고 창업을 하면 벌어지는 일들을 업로드 할 예정이예요.
3월 8일 월요일에 업로드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