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딸아이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말

나의 외사랑

by 하얀 나비
오래전 중고 마켓에서 구입한 그림



우리가 이민을 떠난 후 몇 년 안 되어서

새엄마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오빠와 부인이 오랜 시간 간병을 했다.



사실은 오빠의 부인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몸 한쪽이 마비된 새엄마와 몇 번 통화를 했는데

언제나 오빠의 부인이 전화를 받아

새엄마 손에 쥐어 드렸다.



처음 통화했을 때 새엄마는 말없이

그저 흐느껴 울기만 하셨다.



그 울음 끝에 하신 말씀은


“아버지가 부러워.

이 꼴 저 꼴 안 보고 일찍 돌아가셔서”



그 한마디 속에 아버지를 의지하고 사시다 홀로 된 엄마의 외로움과 체념이 느껴졌다.


자신이 몸도 가누지 못해

시골집에서 혼자 자유롭게 다니시지도 못하고

서울 아파트 방에서 아들 며느리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리셨다.


못 하셔도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도와드릴 수가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내가 전화했을 때 오빠부인이 말했다



“아휴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찬장에서 기름 한 병을 다 드시고 온 집을 기름으로 칠해 놓으셨어요”



치매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 이후 새엄마는 방 안에서만 지내셨고 마지막에는 아들부인을 엄마라고 부르셨다고 했다.



나는 전화하는것도 오빠 부인에게

일이 될까봐 미안해서 더이상 하지 못했다.



새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충격에 머리가 텅 빈 듯했다.



내가 살면서 중요한 자리엔 언제나 새엄마가 계셨다.


학교에 다닐 때도, 결혼식에도, 내가 아기를 낳고 나서도 새엄마가 언제나 나의 엄마의 자리에 계셨다.


나는 그런 새엄마가 늘 자랑스러웠다.



비록 새엄마의 사랑받기에서 오빠에게 내가 늘 밀렸지만 그래도 나를 한가족으로 품으셨다.



나의 출산조리를 해주시느라 한걸음에

서울에 올라오셔서 우리 아기들을 예뻐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많이 안쓰러웠다.



저토록 아기를 예뻐하시는데 다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우릴 위해 포기하셨구나.



그런 새엄마에게 사춘기 때의 철없던 내가 엄마 편을 들어서 새엄마는 얼마나 놀라시고 배신감이 크셨을까?



자신이 낳은 핏줄로 묶인 자식이 없으니 항상 관계가 그리 탄탄하지 못하고 위태로움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새엄마가

뒤처리를 하느라고 힘드셨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엄마의 마지막을 새엄마가 손수 정성스럽게

어루만져서 보내드렸다는 뜻이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두 분이 함께한 어느 순간에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측은지심과 연민의 정이 생기고

서로를 보듬어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그런 운명으로 만나서

그렇게 고생만 하며 긴 세월을 함께 사셨을까?

두 분이 모두 불쌍하여 눈물이 앞을 가렸다.


새엄마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엄마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했을까?


새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집과 가게가

작은엄마 아들의 집보증으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동생과 내게는 거의 한 푼도 주지 않고

아끼셨던 돈이었다.


새엄마와 아버지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 되어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출발점에 허탈하게 서 셨다.


“자식도 없는 내가 아껴서 뭐 하려고 이렇게 사는지 몰라”

새엄마는 가끔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혼잣말을 하셨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새엄마는 한때

이웃 아주머니들과 호주로 여행을 갔다 오셨다.


여행에서의 재밌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양의 털을 깎는 모습이며 호주 남자들의 유머스러움을

설명하시며 아주 좋아하셨다.

새엄마에게 그런 모습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다음 여행도 가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새엄마의 인생을 찾으시는 것

같아서 나는 속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다음 여행지는 먼 하늘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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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가야 하는데 남편도 허리가 아프고

시부모님도 건강이 좋지 않으셨고

가게와 아이들 모두 내가 필요했다.

나는 남편에게

“나 혼자라도 가봐야 할 것 같아”

하고 가능하지도 않은 말을 꺼냈으나



그 말을 들으신 시부모님이 난감해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냥 돈이라도 보내 드리면 안 되겠니?”



섭섭했지만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정신도 올바르시살아계실 때 갔었어야지

지금 가기엔 너무 늦었다는 후회의 마음도 들었다.

새엄마는 돌아가셨고 내가 간다고

달라질게 뭐가 있겠나 싶기도 했다.


항상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 하고 미루던 일들이 있지만

그 여유가 있을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빠에게 못 간다는 말을 전했을 때

오빠는 엉엉 울고 있었다.


“당장 와” 하고 소리쳤다.



오빠의 슬픔은 나의 슬픔의

몇 배가 될 거라는 걸 나는 안다.



나는 얼마간의 돈을 보내고

오빠와 동생에게 장례를 맡겼다



넉넉지 못한 가족들은 간소하고 초라한

장례를 지냈고 장례식에 온 친척들은

딸인 내가 오지 않은 것을 섭섭해했다고 들었다.


문득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산소마스크를

빼달라고 하시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첫 번째는 돈을 좋아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나를 키워주신 것 말고는 한 번도 주신적이

없는, 돈을 좋아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돈을 한 푼도 안 주었던 것이 미안하다는 뜻인지

남은 작은 유산도 탐하지 말라는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은 대학교를 복학해서

마치라는 말씀이셨다.


결혼 후 나의 어려운 상황을 한 번도

말씀드리지 않아서 모르고 계셨다.

어차피 말씀드려 봤자 걱정만 하실 테고

"좋은 집에 시집가서 잘 산다더라"


하고 동네사람들이 아는것 만큼 알고 계셨다.


시댁에서 고아처럼 취급받던 내게

대학교에 다시 복학 한다는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꿈같은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세 번째로 중환자실에서 마스크를 벗겨달라며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셨지만

담당 의사의 좋아지시고 계시다는 말에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 나으시면 천천히 듣자고 생각했으나

끝내. 그 말씀을 듣지 못했다.


세 번째로 하고 싶으셨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새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을 떠나는 나에게라도

엄마를 부탁하려 하셨던 것 같았다.


생활이 어려워진 아들과 며느리에게 새엄마를

부탁하기가 힘드셨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춘기 때 아버지에게 담배를

방에서 피우지 말라고

부탁드렸을 때 아버지가 실망한 표정으로

나에게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새엄마의 장례식에 가지 못한 나를 향해

나는 스스로에게 자책하며 그 말을 떠올렸다.


“딸아이 키워봤자 소용없다”

아버지 말이 맞았구나.


그러나 아버지가 네번째로 나에게

하고싶었던 말이 있으셨다면


"아들도 키워봤자 소용없더라"

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새엄마가 돌아가시며

기나긴 나의 외사랑도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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