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봉숭아꽃 향기

나의 신발을 씻어 말려주던 마음

by 하얀 나비


남편의 허리 재 수술 때문에 13년 만에 한국에 갔을 때 서울은 많이 변해 있었다.


동생과 오빠가 살고 있는 서울.

그러나 내가 다시 만난 그들은

내가 떠날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우리는 동생 집에 머물렀다.

동생과 올케는 안방을 우리에게 내주고

맛집이라며 우리를 여기저기 데려갔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동네 아주머니들이 아기를 구경하러 와서 내게 물으셨다.



“동생 예쁘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개구리 같아”라고 말했고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갓 태어난 동생은 내 눈에 작고 약해 보였다.

나는 늘 동생이 가엾고

내가 지켜줘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다.



동생도 나와 같은 처지라서 엄마가

없는 거나 다름없는 힘든 세상을

스로 헤쳐나가야 할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도 살기가 버거워

동생을 챙기지 못했다.



동생은 시골에서

부모님을 도와드리며

대학을 마쳤다.



이웃 아주머니가

속삭이듯 내게 말해 줬다


“걔가 고생한 거 말로 다 못해”


나는 뭔가 큰 일들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았지만 밝은 표정의 새엄마와

동생의 얼굴을 보고 상처가 될까 봐

차마 묻지 못했다.



동생이 서울에 있는 오빠나 나와는

다르게 매일 마주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동생이 언젠가 말했었다.

자신은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가 살아온 힘든 세상을

자기 자식이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동생은 진흙이 묻은 우리 신발을

물로 깨끗이 씻어 마루아래에

가지런히 물이 빠지게 기울여 놓고 있었다.


동생이 씻어낸 것은 진흙이 아니라,

나의 고단한

세월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의 손마디에 얹힌 삶의 무게가

너무나 선명해서, 나는 그저 마루 끝에 앉아

젖은 운동화가 마르는 소리만 가만히 듣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나는 아들의 이름과 동생의 이름을 언제나

내 마음 같은 자리에 놓고 있다.



꿈을 깨고 나면 꿈속의 얼굴이 아들 같기도 했고

동생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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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보았던 고향집의 처참한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고 웃음과 울음으로

가득했던 그 집이 이제는 흙담으로 겨우 버티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서 있었다.



정말 내가 살았던 그 집이 맞는지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방 안 벽에는 사진들이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간은 흘렀어도, 그리움은 먼지 쌓인

유리 액자 속에 박제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세를 주었었다고 들었는데

10년 넘게 세입자들도 사진에 손을 못 대고

그대로 걸어 두고 살았고


삶의 여유가 하나도 없었을

오빠와 남동생도 그 사진들을

치울 생각을 못 한 것 같았다.



유리가 끼워진 액자에 빼곡히 채워진 사진 속에

나도 있었다.



나는 먼지가 자욱한 액자를 내리고

젊은 시절의 내 사진 몇 개를 빼어 가방에 넣었다.



어릴 적 그렇게 컸던 방도 마루도

너무 작고 초라해 보였다.


앞마당 한쪽엔 봉숭아꽃과 맨드라미 다알리아 채송화 이런 꽃들이 가득했었다.



할머니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 주시던 기억이 났다.

동여맨 손가락이 퉁퉁 불어 줄자국이 남았던 그 밤.



나는 불편했지만 지워지지 않을

분홍 손톱을 위해 참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묶었던 두어 개는 빠져 있었다.



분홍색으로 물든 손톱은 새 손톱이 자라서

손끝에 초승달 모양이 될 때까지 오래 남아 있었다.



그 여름밤의 백반을 넣어 으깬 봉숭아꽃의

싱그러운 향기가 선명하게

어제 일처럼 코끝으로 전해왔다.



심심하면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농원”이라는

집안에 유일한 책을 보곤 했다.


거기엔 왈순 아지매라는 만화가 있었다.



왈순 아지매는 아들과 함께 뾰족구두를 신고 온

며느리가 미워서


기다란 무를 뾰족구두에 다리처럼 꽂아 두었었다.



그 만화에는 농사일을 재밌게 하려고

고랑 끝에 음식을 하나씩 갖다 놓고

그 끝에 도착하면 하나씩 먹는 것도 있었다.



집안 정원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던 우물 펌프가 있었다


더운 여름날 어른들이 그 시원한 물로

등멱을 하며 너무 차가워서

소리를 지르던 모습도 생각났다.



마루에 걸터앉아 비 오는 날 다리를 흔들며

멍하니 앉아 있던 어린 내 모습도 떠올랐다.



여름날 해가지고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공중 부양을 한 것처럼

우주가 내 앞에 열리고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내게로 쏟아질 듯 보였었다.



호박이 들어간 칼국수 김치 부침개

삶은 옥수수 찐 고구마 그 단순한 음식들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어린 시절,

그런 순간순간이 지나고 보니 행복이었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 집도, 그 사람들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함께 할 것이다



서울을 떠나 캐나다로 돌아오던 날

동생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얼마 안 돼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몸싸움 끝에 결국 받게 되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

오빠가 우리를 차에 태워

공항 리무진 버스 앞에 내려 주었다.


우리는 동생에게 받은 돈과 우리가 쓰고 남은

얼마 안 되는 한국돈을 모두 그 봉투에 넣어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오빠의 차에 두고 내렸다.



동생의 땀이 배인돈을 나는 받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넉넉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고

너무 화가 났다.



마음은 넘치는데

삶은 늘 모자라는 현실이

그날따라 더 선명하게 와닿았다.



서울을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 비로소

자식들이 있는 내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땅들이

구름 사이로 희미해져 갈 때

산소를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 계셨다.


새엄마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찾아뵙는 자리이기도 했다.


거기에 가기 전에는

가족들 묘지에서 멀리 떨어져

외롭게 자리한 할머니 묘지에서

목놓아 울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내 마음이 그랬지만 같이 간

가족들을 눈물바람으로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리운 할머니 안녕 ~~~”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맨 끝에 우리 나이 세대의 육촌 오빠가

묻혀 계셨다.



이제 우리의 차례가 시작되고 있었다.

묘지 자리가 나의 현재 삶의 위치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음은 과연 끝을 의미하는 걸까.


이젠 친정 같은 서울을 떠나며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 귀에 맴돌던 이미자의 노래가 생각났다



안녕 ~안녕 ~서울이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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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하얀 나비]와 함께 울고 웃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동굴 밖으로 나와 스스로 날갯짓을 시작했을 때, 저를 반겨준 것은 비 오는 겨울 중에 잠깐씩 얼굴을 내비치던 밴쿠버의 투명한 햇살과 여러분의 따뜻한 '좋아요'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