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라파엘전파 화가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 1827–1910)가 그린 <길 잃은 양들>(1852)을 소개한다. 헌트는 자연의 충실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예술과 종교가 자연 안에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당시 매너리즘에 빠진 영국 교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였다. <길 잃은 양들>에서는 섬나라인 영국의 해안 절벽에 모여있는 양 떼 무리를 그리고 있다. 양은 기독교 신자를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인데, 자신을 보호해줄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해안 절벽까지 밀려난 양들의 모습을 통해 막다른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자" 라는 구호로 창립된 라파엘전파(Pre-Raffaelite) 화가들은 당시 영국 왕립 아카데미의 식상한 고전주의 양식을 거부하고 오직 자연에 충실한 꾸밈 없는 화법을 구사함으로써 영국 미술계를 혁신하고 동시에 부패한 영국 교회의 갱신 운동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William Holman Hunt <Strayed Sheep> 1852
헌트의 <길 잃은 양들>은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난다.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 출신이자 현대미술의 중심을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동 시킨 주역 작가인 다미안 허스트(Damian Hirst)는 <Away from the Flock>(1994)이라는 작품에서 헌트의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을 보호해줄 교회와 자신이 어울릴 무리를 떠나 홀로 남겨진 어린 양을 보여줌으로써 어린 양 하나 쉴 곳 없는 거대한 영국 교회 조직을 비판하고 있다. 실재 동물 사체를 부패 방지액인 포름알데히드에 절여 전시장에 내 놓는 방식으로 세간을 놀라게 한 허스트의 작품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종교는 무엇이고 현대인의 믿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파격적 언어로 제시한다.
Damien Hirst <Away from the Flock>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