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1999(1)

경춘선과 추억 수필

by 이현

1999년 여름. 세상이 녹아 없어질 것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다.

“더워 죽겠다. 우리도 휴가 가자!”

엄마의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강원도 외갓집. 외할아버지는 소양강을 끼고 있는 깊은 산 중턱에서 낚시터를 운영했다. 낚시터 앞 작은 개울은 우리 가족의 물놀이장이었다. 그곳에서 물놀이하고 마루에 앉아 시큼털털한 산머루를 한 알씩 먹고 있으면 어느새 시원한 산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당시 11살이었던 나에게 인천 집에서 강원도 외갓집까지는 매우 먼 길이었다. 외갓집에 도착하면 항상 녹초가 되었지만 ‘기차 타는 것’은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모험심을 자극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 긴 시간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미도 울다 지쳐버릴 만큼 덥고 지글거리는 도시를 떠났다.


2시간 정도 버스와 전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청량리역이었다. 유난히 비둘기가 많았고, 커다란 시계탑 아래로 여러 사람들이 부채질하며 서 있었다. 아빠는 많은 짐을 지고 앞장섰다. 엄마는 결의를 다지듯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문 채, 양손에 하나씩 나와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가족은 매표소로 가기 위해 수많은 인파를 뚫기 시작했다.


겨우 도착한 청량리역 매표소에도 사람들이 표를 구하기 위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줄을 서 있었다. 매표소 앞은 매우 혼잡했고, 간혹 새치기로 인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나는 역 안 의자 앉아있다가 표를 사서 돌아오는 아빠가 보이면 벌떡 일어나 아빠의 표정부터 살폈다. 아빠의 표정을 보면 언제 기차를 탈 수 있을지 대략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작게 미소 짓고 돌아오면 금방 출발하는 기차를 앉아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이라면 문제가 생긴 거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하거나, 입석으로 가거나 최악의 경우 둘 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아빠의 표정이 애매했다. 내가 아빠의 표정 분석에 실패하여 당황하고 있을 때, 아빠가 느리게 말했다.


“흠…… 좌석 3개, 입석 1개 이렇게 구했어. 40분 뒤 출발이라 조금 기다려야 해.”

나는 그제야 애매했던 아빠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40분이나 남은 시간을 무료하게 보낼 바에 차라리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이날 나는 내 11살 생애 최초로 햄버거를 영접했다. 나에게 있어 햄버거는 ‘참깨 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빠빠빠라 빰~’이라는 CM송으로 유명한 M사의 제품이었으나, 부모님은 역에서 가장 가까운 L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아빠는 ‘빵은 식사가 되지 않는다’며, 빵 대신 밥이 있는 라이스버거를 사주었다. 그날따라 유독 청량리역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햄버거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밀린 주문으로 인해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라는 명성과 달리 아주 늦게 나왔다. 그날 우리 가족은 햄버거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라이스버거를 급하게 먹고, 출발 직전 가까스로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개찰구에 들어서자, 태극기를 연상시키는 빨간색, 흰색, 파란색이 어우러진 무궁화호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기차는 너무 거대하여 경외감마저 느끼게 했다.


나는 앞으로 이 공간에서 펼쳐질 모험을 기대하며 무척이나 설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정 좌석에 가보니 창가 자리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언니가 먼저 와 앉아있었다. 엄마는 그 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린 동생과 나를 위해 앞 좌석 등받이를 뒤로 넘겨 의자끼리 서로 마주 보게 했다. 아빠는 짐을 정리해 주곤 ‘엄마 말 잘 듣고 있으라며’ 여러 번 강조한 뒤 입석 칸으로 향했다.


아빠가 떠나자, 우리 남매는 동시에 하나뿐인 창가 자리를 노렸다.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엄마의 인내심이 바닥날 때쯤,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물끄러미 보던 언니가 나에게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여기 앉아. 동생이랑 싸우지 마.”


자리를 비켜준 언니는 이내 팔짱 끼고 눈을 감았다. 언니의 표정이 다소 무섭게 느껴졌던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엉거주춤 양보받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엄마가 눈치를 주자, 나는 마지못해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언니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