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 가족 여행’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발갛게 상기된 얼굴, 설렘 가득한 눈동자를 지닌 우리는 베트남 다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렇게 말했다.
“글쎄, 가족 여행 간다니까 다들 부러워하더라고.”
엄마와 아빠,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 3쌍의 커플로 구성된 한 가족의 딸로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화목’이란 단어가 인간화한다면, 우리와 같은 모습일 거라고.
그러나, 희극이라 굳게 믿었던 우리의 여행은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서막은 생각보다 빨리, 다낭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아빠는 수화물을 찾고 입국 심사를 거쳐야 공항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긴 비행시간 강제로 금연했던 애연가 아빠는 몹시 흡연이 급했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공항 출입구부터 찾았다. 평소 아빠의 흡연 습관이 못마땅했던 나는 공항이 무슨 버스 터미널인 줄 아냐며 짜증 섞인 말투로 쏘아붙였다. 딸의 신경질에 주눅이 든 아빠는 말 한마디 없다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연달아 담배를 뻑뻑 피웠고, 나는 또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다음날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되자, 우리 가족은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다’라는 말을 뼈저리게 경험해야 했다. 가족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기엔 우리들의 취향은 너무나 달랐다. 조식을 꼭 먹어야 하는 사람과 잠을 더 자고 싶은 사람, 현지 문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과 자연 관광을 원하는 사람 등 6명이 원하는 것이 다 달랐다. 패키지여행인 데다가 가족 여행이므로 ‘모든 행동을 함께 한다’는 암묵적인 법칙은 우리의 다양성을 무시했고, 이로 인해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첫날은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문제는 둘째 날부터였다. 일정을 마치고 주어진 저녁 자유 시간. 현지 분위기도 느낄 겸, 우리는 해산물을 먹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길을 걸으며 나는 총무를 맡은 동생과 여행 경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큰 소리로 서로에게 답답함을 토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식당을 정하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조금 비싸더라도 해변에서 분위기를 즐기며 먹자는 의견과 가성비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서로 충돌하다가 결국 후자의 의견이 이겼다. 그렇게 우리는 현지 분위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흔한 횟집 같은 가게에서 랍스터를 뜯어야 했다. 다들 언짢은 얼굴로 랍스터를 뒤적거리다 계산서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터지고 말았다. 계산서에 찍힌 금액이 원래 흥정했던 가격과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던 것이다. 남편은 식당 종업원과 실랑이를 벌였고, 나는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 차이 나지 않으니 그냥 가자고 남편을 잡아끌었다. 남편은 과거 유학 생활의 경험으로 현지인에게 소위 말하는 눈탱이 맞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고, 나는 관광지에서는 적당히 바가지를 당해 주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길 한복판에서 대판 싸운 후, 잔뜩 골이 난 나는 홀로 휘적휘적 호텔로 향했다. 우리 부부를 잉꼬부부로 알고 있었던 동생은 헐레벌떡 나를 쫓아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누나도 다 행복한 건 아니었구나.”
그렇게 나는 호텔로 돌아오는 내내 동생의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고, 그 말은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유행어가 되어 내가 화만 내면 재사용되고 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 모인 가족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밝게 인사했다. 아마 다들 불편하고 힘들지만 서로를 배려해 꾹 참는 듯했다. 그러나 마지막 날까지도 엄마와 아빠의 다툼, 동생과 엄마의 싸움으로 우리 가족은 셰익스피어도 울고 갈 3박 5일 분량의 비극을 끝내 완성해냈다.
가족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화목은 우리’라는 오만한 생각을 버렸다. 그리고 싸우고, 힘들고, 돈도 많이 드는 이런 바보 같은 짓 따위는 다신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튿날, 나는 기념 앨범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사진에서 쓸만한 사진을 고르느라 눈이 빠질듯한 고통에 허우적거렸고 반나절의 사투 끝에 시력과 맞바꾼 앨범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것이 반전의 묘미일까?
완성된 앨범을 넘겨보며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기념사진이라며 풀메이크업에 멋진 의상까지 갖춘 아오자이 쇼 모델 옆에서 강제로 온 가족이 오징어가 되어야 했던 사건, 이국적인 풍경과 달콤한 커피, “우리 바구니 배 노 젓는 분, 팁 더 드렸어.” “어? 우리도!” “우리도 그랬는데?” 하고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공감. 그렇게 사진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불편함 대신 좋은 추억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앨범의 가장 마지막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우리에게 다시는 가족 여행이 없을 거라고 함부로 장담할 수가 없었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