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외나무다리가 아닌 직장에서 만난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나의 회사생활을 돌이켜보면 원수와 갈등의 시간 + 원수를 뒷담화 하는 시간으로 하루에 한시간 정도를 소모했다. 원수와 갈등의 시간은 20분 정도 내외인 반면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뒷담화로 나의 화를 해소하는 시간은 4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사실 40분의 시간만으로는 분노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주변 동료 중에는 이것이 수년간 누적되면 몸과 마음에 병에 생기는 경우도 목격하게 되었다.
어쩌면 지옥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길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 회사에서 원수와 생활하는 하루하루로 디자인된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환경을 해쳐 나가야만 한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오랜 담금질을 통하여 자신만의 관리 방법을 만들어 살아나간다.
그렇다면 서로 간의 노하우를 공유해보는 시간을 갖으면 조금 더 우리의 멘탈을 다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12년 회사생활을 하면서 아래와 같이 원수를 대하는 방식을 갖게 되었다.
1. 원수에 대한 고찰을 한다.
누군가가 끔찍하게 싫을 때 그 사람에 대하여 생각도 하기 싫을 수 있다.
나도 그를 생각하는 것이 불쾌하긴 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원인을 꽤 오랜 시간 고찰했다.
보통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는 이유들은 아래와 같았다.
1) 나에게 반복적으로 피해를 주는 경우
- 업무능력 부족, 게으른 태도, 책임회피, 독단적, 고집스러워 협업이 어려운 경우 등
2) 불공정, 비도덕적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
- 무례, 공격적/이기적 태도, 질서와 규칙을 어기는 태도 등
3) 가치관이 다른 경우
- 부정적, 비판적 태도가 강한 경우, 사람중심-업무중심으로 나누어지는 경우 등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하고 싸우게 되는 이유는 사실 원수와의 관계가 개선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 과정에서 우리는 1), 2), 3)을 내가 싫어하니 신경 좀 써달라는 표출을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이는 원수가 되지 않는다. 그는 아마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나를 받아드리려고 노력하는 좋은 동료일 것이다.
하지만 원수는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갈등과정에서 그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든가, 어떤 이유이건 그가 바뀌기를 기원해도 원수는 그다지 변화할 생각이 없다. 나도 처음에는 상대방의 원인을 찾고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을 했다. 심리적인 지식까지 습득하며 저 사람은 어떤 병증이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도 알아봤다.
고민 끝에 원수의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전달하여도 원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그를 변화시키기 위한 기대감과 노력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괴로움도 길어진다.
이쯤되면 그와 나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나와 다른 존재이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하지 않는다.
그를 변화시키는 불확실한 방안보다 나의 괴로움을 컨트롤하는 것이 더욱 건설적이다.
그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나는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거리 두기
과거 미성숙한 시절의 나는 원수를 대할 때 활화산 같았다. 화를 내면서 싸우기도 하고, 회유도 해봤으며, 슬퍼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원수에게 별 효과는 없다.
여러가지를 고민하다가 원수에 대한 기대감을 없애고 그가 나와 다른 존재임을 고찰했다.
이는 일종의 포기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한 행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의 효과들이 발생되었다.
원수를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을 처음 경험할 때 묘한 감각을 느꼈다.
기존에 원수와 갈등이 발생할 때는 나라는 1인칭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런데 고찰 이후에는 3인칭의 관점에서 원수가 나를 공격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는 느낌.
뭔가 방어막이 있는 듯한 느낌으로 직접적인 타격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공격받는 나는 분명히 나인데 남인듯한 감각, 뭐 그것도 썩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양은냄비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분노는 없어졌으며 상대를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대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성과 냉철함은 기존처럼 감정적일 때와는 달리 나에게 약간의 승리감을 주었다. 그는 더 이상 나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아니며 왠지 내가 더 넓은 그릇을 갖추고, 더 높은 곳에서 원수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원수들에게 상처를 받는 동료 및 지인들은 그래도 동료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했다. 그리고 좋은 관계 구성에 실패를 하면 본인을 자책하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집에까지 가져와서 그것을 해결해보려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며 최소한의 교류만 하겠다는 방향성이 생기자 오히려 스트레스가 감소했다. 그가 어떠한 행위를 하던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며 공적이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엄청나게 예의 바르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례할 필요도 없었다. 일이 메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부수적인 요소로 여기는 것이다.
3. 신체적/정신적 건강관리
원수에 대한 고찰은 곧 거리두기로 이어지게 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한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지만 그럼에도 피곤하거나 체력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거리두기를 하여도 감정적으로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예민한 사람의 경우에도 신경을 이것저것 써서 피로감으로 인한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나면 앞서 말한 고찰과 거리두기에 따른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짜증을 컨트롤 하지 못할 경우 누군가에게 내가 원수가 될 수도 있다.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위하여는 쉽게 지치지 않을 정도의 체력이 필요하다.
또한,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회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집에서까지 가져오지 말고 확실하게 OFF를 시키는 것이다. 자기만의 내적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내야 한다. 신체적인 활동을 신체와 정신을 함께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앞서 말한 방법들은 어떻게 보면 냉소적인 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원수와의 부정적인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며, 좋은 동료들과의 관계가 더욱 많을 것이다. 냉소적인 태도가 삶의 전반을 차지하지 않도록 긍정적이고 좋은 관계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어려서 친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 해라는 착한 아이들로 자라났다. 또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도 들어왔다.
물론 도덕적으로 좋은 방침이긴 하지만 적어도 직장생활 내에서는 개인이 상처를 받으면서 까지 좋은 관계를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다.
도저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관계라면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고 본인을 더욱 소중히 하기를 추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