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온도

남과 여

by 맑은샘

그 남자는 키가 176센티미터에 58킬로그램의 몸무게, 하얀 얼굴에 몸매는 갸름했다. 군대 갔을 때의 몸무게를 20년간 유지할 만큼 약한 체질이었다. 뼈대도 가늘어 다리에서 허벅지까지 거의 일자로 쭉 뻗어있다. 옷을 입으면 길쭉한 팔과 다리로 인해 옷맵시가 제법 좋았다. 기초체력이 약해 삼시 세 끼를 꼭 챙겨 먹어야 일상생활이 유지되었다. 입맛도 까다로워서 고기도 껍질이나 비계가 있는 것은 먹지 않고 살코기만 먹었다. 김치를 먹더라도 젓갈냄새가 나지 않고 정갈한 맛을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김, 햄, 소시지, 계란 아이들이 좋아하는 입맛이었다.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 엄마가 마흔여덟에 낳은 늦둥이였다. 아랫방 할머니 방에서 자고 밥상도 따로 받았다. 할머니 손에서 거의 키우다시피 했고 방 안에 있는 화로에는 늘 막둥이 먹일 갈치토막이나 조기가 올려 있었다. 초등학교 육 학년까지 애지중지 귀한 막둥이 위해 밥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던 할머니였다.


그 여자는 163센티의 키에 몸무게는 58킬로그램, 넓적한 얼굴에 건강한 체질이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마음껏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소를 키웠던 덕분에 소의 부산물로 끓인 내장탕을 많이 먹고 자랐다. 마당에는 늘 양은솥에 시래기 듬뿍 넣고 된장 풀어 도살장에서 막 잡은 싱싱한 부산물을 넣고 끓인 고기냄새가 진동했다. 솜씨가 좋았던 엄마로 인해 맛있는 김치, 된장, 각종 야채로 만든 무침,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2남 4녀의 넷째로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엄마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도록 반찬을 많이 해 주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평소에 먹지 못했던 갈치, 자반고등어, 세 꼬막으로 만든 반찬을 해 주었고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육 남매 모두 건강한 체질에 먹성이 좋아 가리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건강한 체질에 뼈대도 굵고 단단해 잔병치레 없이 자라 건강했다.


이십 대에 만나 사랑을 키웠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무궁화호를 타고 익산으로 내려왔다. 일요일 새벽, 기다리다 데이트를 했다. 봄에는 전주에 있는 덕진공원에 가서 흐드러지게 핀 연꽃을 보고 보트를 타고 서로를 알아갔다. 여름이면 채석강, 격로에 있는 바닷가에 가서 바다를 보았고 내변산의 아름다운 풍경도 구경했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이 예쁜 내장산에 가서 인파 속에 걸어보고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며 그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함께했던 시간만큼 서로를 알아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봄에 결혼을 하고 인천에 있는 단칸셋방에 둘이 덩그러니 놓였을 때 비로소 삶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느라 반찬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 출근하는 그를 위해 밥을 해야 했다. 연탄불에 노란 냄비 올려 밥을 짓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단칸셋방에 부엌하나 딸린 방이었지만 좋아도 두 사람이 함께 있기에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었다. 그는 입이 까다로웠다. 된장찌개에 들어간 두부나 호박도 작게 잘라야 했고 먹지 않는 야채도 많았다. 반찬도 먹어본 것만 먹으려 했다. 그래도 그를 위해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찌개를 끓였다. 국과 찌개, 반찬을 만드는 요리책을 사서 보면서 살림을 배워갔다. 다행인 것은 어릴 적 어깨너머로 엄마가 허던 음식을 본 것을 어슴프레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 보니 요령이 생기고 손이 점점 빨라졌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해 먹는 얘기도 들으며 하루하루 새댁에서 애기엄마로 주부로서 자리매김해 갔다.


세월이 지나고 강산이 몇 번 바뀌었다. 그와 그녀는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냈다. 남자에서 아빠가 되었고 여자에서 엄마가 되었다. 자신보다는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살아내려 애를 썼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지만 이십 년 동안 다닌 회사생활에서 결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냈다. 그녀도 엄마로서의 삶이 서툴렀지만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일과 병행하면서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먹을 음식에 신경을 썼고 가정살람도 아끼고 절약하며 조금씩 살림을 일궈나갔다. 둘은 톱니바퀴처럼 서로의 단점은 보완해 주고 장점은 보듬어주는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온도는 다르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 명확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냉장고에 들어있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하고 겨울이 오기 전이지만 내복을 입고 '춥다, 춥다'를 입에 달고 사는 그 남자, 아침이면 제일 먼저 커피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여 머그잔에 담아 뜨겁게 한 잔 마셔야 하고 주말이면 꼭 산에 가서 한 바퀴 돌아야 몸에 생기가 도는 그 여자, 그렇게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지고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면 측은함과 고마움이 공존한다. 오늘도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지고 하루를 함께 걸어간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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