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그와 나는 한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맨 꼭대기집에서 사는 우리집과 그의집은 서로 친하게 지냈다. 20여가구가 사는 곳에서 선후배사이로 어린시절은 함께 어울려 놀았던 것 같은데 기억에는 없다. 단지 어릴적 그는 큰 나무대문이 있는 집에 살았고 텔레비젼이 있었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대문앞에서 지키는 그의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문앞에 서기만 하면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그와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 후 직장을 다닐 때였다. 추석이라 집에 갔을 때 사촌여동생을 통해 학교운동장으로 나를 불렀다. 만날 의향이 있는지 물어봤고 같은 동네에서 그럴 수가 없어서 확실한 대답은 회피했던 것 같다. 그 후로 근무하는 직장으로 편지가 왔고 답장을 보내기에 망설이는 나를 명절에 다시 불러 정확한 답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 광주에 친구를 만나러 간 길에 충장로 파출소에 의경으로 복무하던 그를 면회를 갔다. '동네오빠 파출소에 한 번 보러갈래?'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날 광주역까지 나를 배웅해주던 그와 그렇게 서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 익산과 인천을 오가며 만남이 시작되었다. 워낙 작은 동네였기에 비밀로 하고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이리역에서 만나 전주 등지에서 데이트를 했다.
만남이 계속되며 여름 휴가를 맞춰 그의 친구들과 나의 친구들이 지리산 피아골로 캠핑을 갔다. 웅장한 물줄기와 맑은 공기아래 자연스레 단체미팅이 되었지만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시골로 가려고 광주터미널에 갔다. 마침 시골로 들어가려던 아랫집 순자엄마를 만나버렸다. 왜 같이 있냐는 물음에 멋쩍게 웃음만 짓던 우리를 보고 동네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게 해서 만남이 공식화되는 사이가 되었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