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당을 만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몇십 년이 흘렀다. 고향의 의미도 없어지고 손주들이 생긴다면 시골의 정서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 했던 기억이 살아갈수록 힘이 됨을 느꼈다. 겨울 방학 서산에 있는 부동산에 미리 전화를 해서 조건에 맞는 집을 알아보고 몇 군데의 집을 가 보았다. 집이 마음에 들면 값이 비싸고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2년여를 주말이면 서산에 있는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지쳐갈 무렵 우연히 들린 부동산에서 조건을 설명하니 한번 가 보라고 주소를 주었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인천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들어선 곳은 고남저수지를 끼고돌아 들어가면 마을이 보였다.
띄엄띄엄 몇 집이 보이고 산속으로 한참을 달려가 안내가 멈추며 '목적지 주변입니다'를 끝으로 차에서 내렸다. 파란 지붕에 황토로 벽을 바른 전형적인 시골집 같아 보였다. 집 앞에 있는 터는 넓었고 산이 감싸고 있는 모습과 적송에 흰 눈이 쌓여있고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거실에는 검은색 벽난로가 놓여 있었고 방 세계에 거실이 넓은 집이었다. 벽면은 사람이 살지 않아 낡고 지저분했고 바닥은 먼지가 풀풀 날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의견을 나눴다. 땅도 넓고 집도 있고 무엇보다 화목보일러와 벽난로가 마음에 들었다. "괜찮으면 계약하자"라는 의견에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계약금을 넣고 그렇게 시골집이 생겼다.
고남리에서의 첫 봄 뜰에는 돋아난 쑥과 노란 민들레천국이었다. 작은 매실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었지만 풀과의 싸움에서 졌는지 자라지 않고 하얀 꽃을 피웠다. 쑥을 뜯어 된장 넣고 국을 끓이고 민들레 김치도 담그고 민들레 효소도 담갔다. 사월이 되면 점점 자라는 쑥과 풀을 예초기로 베고 한 달만 지나면 또 자라 있었다. 주말 은 풀과의 전쟁이었다. 예초기를 돌리면 세 시간은 기본, 구슬땀이 흐르고 힘들었지만 풀을 베고 나면 개운해진 마당을 보고 있으면 저저로 힐링이 되었다.
뒤편으로는 밤나무 세 그루, 매실나무 한그루 밭 주면으로는 감나무가 심겨 있다. 나무를 볼 때마다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사월로 들어서니 매실나무에 하얗게 꽃이 피었다. 나무 밑으로는 초록 잎을 한 나물이 자라고 있다. 윗집 언니에게 물어보니 참나물이라고 알려주었다. 참나물을 뜯어 살짝 데친 후 참기름, 소금, 참깨, 마늘 넣고 조물조물 무쳐 보았다. 왜 참나물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당가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졸졸 졸 흘러 미나리가 자라고 있다. 초봄에는 칼로 하나하나 캐지만 조금 더 자라면 낫으로 쓱쓱 베어 낼만큼 쑥 자라났다. 미나리는 다듬은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찬물에 담갔다가 고추장, 고춧가루, 참기름, 식초, 설탕, 다진 마늘 넣고 무치면 미나리초무침이 되었다. 손님들이 오면 고기 구워 먹을 때 미나리도 함께 구워 먹으면 미나리향이 그만이었다.
파란 지붕을 한 나의 첫 시골집 고남리, 그렇게 시작된 시골살이는 여유라는 단어를 알게 해 주었다. 느리고 여유롭게, 천천히 걸으며 고남저수지에서 뜨는 해를 맞이하고 마을길에 심어진 꽃도 보며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해 준 곳이다. 노란 수선화, 민들레가 피고 벚꽃이 터널을 이루던 곳, 힘들고 지친 세상 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평안당과 함께 주말은 화목보일러의 땔감 준비하고, 장작패고 벽난로 피워 놓고 군고구마 구워 먹으며 창가에 지저귀는 새소리와 산길 따라 걸으며 좋은 공기와 바람, 하늘까지 모든 것이 완전했던 곳, 나에게도 따스했던 곳이 바로 평안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