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과 디즈니의 철학

미국 영웅주의의 관점에서

by 루크

1.

라이온 킹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나는 항상 디즈니의 영화들이 미국 특유의 영웅주의에서 기반한 보수성이 짙게 깔려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른이 넘어 다시 본 라이온 킹 역시 그런 점들이 눈에 띄었다.

1.png 라이온 킹 스틸

주인공 심바는 왕자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잃고 집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티몬과 품바를 만나 “하쿠나 마타타” 즉 모든 근심 걱정을 잊고 YOLO (You Only Live Once) 처럼 주어진 삶을 즐기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던 그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갈증과 공허함을 느낀다. 이윽고, 그는 현자 라피키를 만나 돌아가신 아버지 무파사를 영접하면서 “Remember who you are” 이란 메시지를 듣게 되고, 왕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자각한다. 그는 과거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맞서야 함을 깨닫고 프라이드 락으로 돌아가 스카를 몰아내고 왕이 된다.

2.png 겨울왕국 스틸

이러한 본래의 왕으로서의 책임을 되찾고 자신의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서사는 겨울왕국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엘사는 자신의 기이한 능력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조심하며 살다가 마침내 성 밖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며 “Let It Go”를 부른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자유로운 생활은 얼마 가지 못하고 그녀는 다시 성으로 돌아가 왕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살아간다.


이렇듯, 디즈니는 그들의 캐릭터들을 자유의 길로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다. 디즈니의 주인공들에게는 각자의 소명 (calling)이 있으며, 그것을 가로막는 PTSD 등의 두려움을 이겨내어 결국 그것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 수많은 디즈니 작품들의 주제의식이다.

하쿠나 마타타 中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두 영화 모두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OST 가 “하쿠나 마타타” 와 “Let It Go”라는 점이다. 많은 관객들은 지금까지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감정이입을 하며 하루하루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디즈니가 의도했던 주제와는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2.

라이온 킹에서 심바는 왕이 될 운명으로 태어난다. 무파사는 심바에게 자신들이 죽어서 흙이 되고, 흙의 영양분을 통해 식물이 자라나고, 식물은 초식동물들이 먹고, 초식동물들을 우리가 먹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우열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프라이드락에서 초식동물들이 왕이 될 수는 없다. 그와 반대로 사자는 명백히 초원의 모든 동물들 앞에서 군림하며 대접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라이온 킹은 명백히 심바의 왕으로서의 결말을 찬양하는 영화이다. 제작자들은 라이온킹을 통해 관객들 모두 각자의 소명을 따라 왕이 되라는 주제를 전달한다.

3.png 라키치의 손에 들린 심바

여기서 재미있는 생각 하나. 라이온 킹 내러티브 안의 동물들이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프라이드 락의 동물들이 현재 유행에 맞추어서 라이온 킹을 다시 만든다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질까? 가젤이 사자들을 물리치고 왕이 되는 서사가 만들어지려나? 사자만 왕을 해먹는 세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있지 않을까? 글쎄. 나는 그런 영화가 그리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왕과 전혀 다른 가젤로서의 평범한 삶을 살더라도 행복하고 또 숭고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영화가 보고 싶다.


3.

여전히 라이온 킹은 훌륭한 영화다. 그러나 그 저면에는 미국의 자본주의적 개인주의, 즉 ‘모든 위대한 사회는 위대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이나 조던 피터슨의 ‘성공하려거든 너의 침대부터 정리하라’라는 일침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나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했듯 개인의 변화를 강요하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개인이 사회의 시스템적인 변화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너나 일회용품 쓰지 마”라는 식으로 개인의 작은 변화를 먼저 수행할 것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과 조던 피터슨의 토론 中 (물론 이는 한 유튜버의 썸네일 합성이다)

존 F. 케네디 의 국가관에 대한 연설이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는 미국 사회에서 라이온 킹은 그 사회를 완벽하게 대변하는 서사이다. 그렇기에 이런 훌륭한 자기 계발서와 같은 영화를 나 역시 결코 미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