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천변을 걷다보니...
아침에 일어나 법정 스님의 글을 필사했다. 필사는 좋은 글귀를 공책에 정성껏 옮겨 적는 일이다. 생각 같아서는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참선을 하고 싶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그 대안으로 ‘필사’를 한다. 뭐라도 하면서 거기에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 그냥 막연하게 앉아서 참선하는 것보다 나에게는 훨씬 수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에게 필사는 참선 대신이다.
“가난은 우리 자신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리는 길이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이웃과 나눠 가질 때 그것은 우리 자신을 들어 올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친 삶의 경제적인 위기는 우리 자신을 떨어뜨리지 않고 우리 자신을 들어 올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아침에 필사한 내용인데 경제적인 위기가 곧 자신을 향상시키는 계기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서둘러 준비하고 아내와 함께 과천 경마공원에서 열리는 직거래 장터, ‘바로마켓’으로 갔다. 지난주까지는 나도 장터에서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있었는데, 어제부터는 아내를 시장에 데려다주고 나는 돈암동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일을 한다. 시장에서 혼자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내가 거기 있는다고 아내의 고생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아내와 상의 하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오늘은 공휴일(한글날)이라 차가 밀리지 않아 1시간 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집으로 올라가려다가 성북천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몸이 찌뿌둥해서 천변을 걷고 싶었다.
공휴일(한글날)이라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여 년 전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봤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때도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들 저렇게 뛰나 싶었는데 요즘은 국내에도 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경제 환경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나는 도로 한 편으로 치우쳐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었는데, 문득 내가 땅만 보고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땅을 보고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등산하면서 힘이 들어 바로 앞만 보고 올라갔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평지를 걸으면서 땅만 보고 걸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평소에는 주변의 사람이나 건물, 차 등을 두루두루 둘러보며 걸었던 것 같다.
아무튼 땅만 보고 걸으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는지 마는지, 어떤 표정으로 보는지 따위를 의식할 필요도 없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태도가 어떤지도 보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 것들을 보면 자꾸 판단을 하게 되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등 감정의 기복이 생겨 피곤하다.
무엇보다 내 시선을 쓸데없는 곳에 빼앗기지 않으니 내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소리들이 들렸다. 그동안 내가 듣지 못하던 소리들이다. 바람 소리, 라디오 소리, 새소리, 자전거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등이 평소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아침에 필사한 내용도 떠올랐다. “경제적인 위기가 자신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라!” 새로운 경험이다. 아~ 내가 그동안 쓸데없는 것들에 내 눈과 귀를 빼앗겨 감정을 혹사했구나.
앞으로는 땅만 보고 걸어야겠다. 남들이 뭐 하는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따위에 신경을 빼앗기지 말고, 내 주변을 둘러싼 바람소리, 새소리, 자전거 소리 등과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