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성 Aug 16. 2022

실크로드 기행 8 : 카슈가르로 가는 길

타클라마칸을 가로질러

우루무치 발, 카슈가르 경유, 허티엔 행 7556 열차

 우루무치 발 카슈가르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 번호 7556. 보통 중국 기차는 알파벳+숫자로 열차 번호가 매겨지는데, 앞의 알파벳은 기차의 등급을 나타낸다. 아무 알파벳도 없는 기차는 가장 낮은 등급인 푸콰이. 카슈가르까지 예상 소요시간은 24시간 55분이지만, 30분 연착되어 출발, 가는 도중에 또 한 시간이 연착되어 총 26시간 반이 걸렸다. 빠른 기차는 17시간 만에도 가지만 가격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난다. 객차 천장의 선풍기는 고장 나서 돌아가지도 않고, 침대 칸에는 난간 대신 끈이 묶여있는 아주 오래된 기차지만, 1500km나 되는 거리를 2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데려다준다. 무더운 날 늦은 오후에 출발하는 기차였지만, 역에 오기 전 호스텔에서 샤워 및 용변을 해결하고 아주 가벼운 복장으로 기차에 올랐기에 기분이 제법 상쾌하다. 객차에는 아직 나 밖에 타지 않았는데 기차는 느릿느릿 역을 출발한다.

 기차에 누워 생각해 보니, 여행의 딱 절반이 지났다.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빠르게 달려왔고, 우루무치에서는 완전히 충분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충분히 쉬었다. 오는 도중 많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했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많은 걸 느끼고 생각했다. 내가 몸을 실은 기차는 밤새 달려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질러 날 진짜 변방에 떨궈 줄 것이다. 변방, 가장 역동적이고 그 역동성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생하는 곳. 그러나 그 역동성으로 인해 여전히 억압받는 곳. 그렇지만 언젠가 다시 중심으로 떠오를 곳.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변방으로 간다.

 출발할 때는 나 혼자였는데 우루무치남역에 도착하자 객차가 꽉 찬다. 대부분이 위구르 사람들이다. 내가 탄 침대 칸에는 후난에서 온 한족 아줌마, 위구르족 아저씨 둘과 대학생 하나가 올랐다. 한족 아줌마는 신장에 온 것도 처음, 위구르족을 보는 것도 처음인 듯했다. 아니, 이곳에 이런 사람들이 산다는 걸 생전 처음 알았다는 눈치였다. 같은 칸에 탄 위구르 아저씨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당신들은 도대체 외국인이냐 이 동네에 사는 소수민족이냐 물었다. 하긴, 그 아줌마가 사는 후난의 소수민족들은 생김새가 한족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전혀 다르게 생긴 위구르 사람들의 모습이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신기할밖에. 이렇게 이 동네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신장 여정에 오른 대담한 아줌마 이야기가 궁금했다.


 아줌마는 신장 허티엔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후난에서 우루무치까지 40시간을 달려왔지만 아직 32시간을 더 가야 한다(허티엔은 카슈가르에서도 5시간이 더 걸린다). 3일이 꼬박 걸리는 힘든 여정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남편을 본다는 사실에 몸은 고돼도 기분은 좋아 보였다. 나는 이렇게 세상 물정(?)도 모르고 긴 여정에 오른 시골 아줌마가 더 걱정스러웠는데, 그 아줌마는 외국인인 내가 그렇게 멀리까지 가는 게 걱정이 되었나 보다. 연신 내게 조심하라고 충고를 하며 내릴 때쯤엔 자기 남편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란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처음 보는 사람의 과한 친절에 괜히 쑥스러워져 내 걱정은 하시지 말고 아줌마나 남편 잘 만나고 돌아가시라고 퉁명스럽게 얘기하고 차에서 내렸지만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바로 옆자리였던 위구르족 아저씨는 우루무치에서 대학을 다니는 자식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 유창한(?) 중국어에도 내가 한국인인 걸 바로 알아차려서 무척 신기했는데 (사실 내 중국어가 유창한 건 절대 아니고, 후난 아줌마는 내가 밝히기 전까진 몰랐는데 이 아저씨는 바로 알아차렸다), 한족들과는 눈 부분이 다르게 생겼단다. 보통 한국인을 만난 경험이 별로 없는 한족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잘 구별해내지 못하는데, 한국인을 처음 봤다는 그 아저씨가 바로 알아차려 무척이나 신기했다. 보통화를 잘 못하고,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아저씨였는데, 자식 얘기가 나오니 사진까지 보여주며 자랑이 늘어진다. 아들딸 둘 다 우루무치에 있는 신장대학교에 다니는데, 아들은 공부를 잘해 베이징에 있는 대학교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 중이란다. 아들딸 모두 예쁘고 잘 생긴 데다 공부까지 잘해서 좋으시겠다고 하니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 참, 사람 사는 건 세상 어디나 비슷하다.



 기차가 투르판을 지나 본격적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들어서니, 밤바람에 모래 날리는 소리가 요란한데 조명 어두운 기차 안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전화도 데이터도 안 터지는 기차 안. 무료해진 사람들은 하나 둘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나도 책을 좀 보다가 10시간이 넘게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내가 타본 기차 중에 가장 낡고 시끄러운 기차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잠을 잤다.


 고대 실크로드는 시안에서 둔황까지는 한 길로 이어지다가, 둔황을 지나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로 갈린다. 천산남로는 투르판에서 다시 타클라마칸 사막을 북쪽으로 돌아가는 서역북도와, 남쪽으로 돌아가는 서역남도로 갈라진다. 투르판에서 카슈가르로 이어지는 철길은 이 서역북도를 따라 이어져 있다. 옛날에는 낙타를 타고 몇 날 며칠을 걸려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었겠지만 이제는 아무리 느린 기차를 타도 하루면 족하다.

철길 북쪽으로 펼쳐진 천산산맥
고대 실크로드 천산남로의 서역북도를 따라 이어진 길은 계속 북쪽에 천산산맥을 두고 달린다.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 해가 중천인데 기차는 아직도 사막을 열심히 달리고 있다. 가져간 컵라면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우고 영화라도 한 편 볼 겸 노트북을 꺼냈다. 분위기에 맞게 서부극을 틀었는데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양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른 칸에 있던 사람들까지 내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누워서 편하게 보기는 글렀다. 언어도 영어고 자막도 한글이라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노트북 작은 모니터를 다들 열심히들 본다. 결국 내 침대 칸 미니 극장은 노트북 전기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막을 내렸다.

카슈가르역
키슈가르역

 카슈가르에 도착할 때까지 도통 3층에서 내려오지 않던 위구르 대학생과는 도착할 때가 다 되어서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금은 광저우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중국 대륙 남쪽 끝 광저우에서 서쪽 끝 카슈가르까지, 후난 아줌마보다도 더 먼 길을 달려온 셈이다. 대도시에서 대학교육을 받는 대학생답게 보통화가 아주 유창했다. 내릴 때쯤에 경황이 없어 위챗 번호를 교환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위구르인 친구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다섯 시간을 더 가야 하는 후난 아줌마의 배웅을 받으며 카슈가르 역에 내렸고, 역에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있던 대학생과도 짧게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히잡을 쓰고 역까지 마중을 나와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을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대학생을 뒤로한 채 올드타운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이동해 왔지만 피곤함은 전혀 없었다. 여기서는 내가 기대하는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샘솟았다.


 일주일을 머물렀으면서도 떠날 때 가장 아쉬웠고, 떠나오면서 죽기 전에 꼭 다시 한번 오리라 다짐했고,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애잔해지는 변방의 도시 카슈가르. 이제부터 카슈가르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실크로드 기행 7 : 투르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