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정통성의 빈곤과 이란 신정 체제의 구조
Ⅰ. 검은 터번의 의미, 종교적 정통성의 시각적 정당화
혹시 이란 최고 지도자나 수뇌부의 사진이나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터번 색깔을 한번 살펴보자. 보통 검정색이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우리가 보는 일반인들의 터번의 색깔은 주로 흰 색이다. 어째서 그들의 터번은 검은 색일까? 시아파 세계에서 검은 터번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핏줄(세이드)을 이어받았다는 증표이다. 마치, 동양에서 관료제가 다져질 때 관복의 색깔로 그 품계를 나타냈듯이 이슬람 시아파 세계에서는 터번의 색깔로 그 핏줄을 드러낸다.
새삼 저 먼 나라 최고지도자의 모자 색깔을 논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2026년 2월,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 소식과 함께 일어난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그리고 수년전부터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이란 전역의 전례 없는 반정부 시위의 불길. 그로 인해 요동치는 국제정세. 그러니까, 어쩌면 일종의 시사에 편승한 글쓰기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많은 언론과 대중의 인식은 이란의 모습과 정치적 문제를 '이슬람 광신도 국가의 한계' 혹은 '종교근본주의 국가의 몰락 과정'이라 평한다. 하지만 이란이라는 국가의 정치권력구조 자체를 단지 '광신도'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게 납작한 관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란의 정치구조의 형성 과정을 되짚어보면, 이란이라는 국가는 종교적 광신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저하게 마키아벨리적 관점에서 종교적 이념조차 강력한 통치의 도구로 치환한 철저한 정치공학적 설계의 결과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루홀라 호메이니가 있었다.
Ⅱ. 두 시대의 교차: 이란 수뇌부가 구축한 권위의 실체
이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아파와 수니파가 어디서부터 갈라지는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의 양대분파인 시아파와 수니파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함마드의 피를 이은 '알리'와 '후세인'에 대한 태도이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이며, 아들과도 같은 대우를 받았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그의 후계를 정통 칼리파(군주 겸 최고 종교 지도자)로 지지하였다. 그에 반해 자격이 있는 자(예를 들면 무아위야 1세라든지)가 칼리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분파가 바로 수니파이다.
이란 신정 체제의 가장 아이러니한 전환은 시아파 역사의 '두 시대'를 교묘하게 뒤섞은 데서 출발한다. 시아파 초기의 역사는 '신성한 이맘'의 시대였다. 초기 시아파에서 알리와 후세인의 직계 핏줄은 그 자체로 완벽한 통치의 필수조건이었다. 시아파에서는 신이 지명한 단 12명의 '이맘'(시아파에서는 오로지 무함마드의 직계만이 이맘의 자격을 가진다)만이 오류 없는 절대적 권위(무류성)를 가지고 쿠란을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874년, 12번째 이맘(마흐디)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며 '대은폐기'가 시작되었다. 신성한 이맘이 부재한 상황에서 혈통은 더 이상 율법 해석의 권위를 주지 못했다. 이맘이 없어진 자리에서, 혈통을 대신하여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학문의 최고 반열에 오른 학자(마르자)가 율법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자리에는 혈통과 무관한 '흰 터번'의 대학자들도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맘이 갖는 절대적 권한과 마르자의 해석권에는 하늘과 땅과도 같은 격차가 있었다. 따라서 흰 터번의 대학자들은 이슬람 종교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이는 오로지 마흐디(구원자)만이 행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신정일치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란 정권의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란의 최고지도자들은 무함마드의 직계가 사라진 이후에, 검은 터번으로 무함마드의 방계혈통임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학식의 시대에서는 단지 핏줄의 증거일 뿐인 검은 터번을 통해, 이맘의 시대에 근거한 절대 권력을 쟁취하고자 한 것이다. 마흐디가 사라진 이후, 터번의 색깔에는 더이상 교리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Ⅲ. 종교적 전도현상: 세속에서 시작된 수니파, 순수성에서 비롯된 시아파
낭만적인 종교적 분석을 넘어서, 현실정치와 역사적으로 분석해본다면,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한 초기의 수니파는 세속적인 권력 탈취와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종교 교리를 사후적으로 꿰맞췄다는 혐의를 짙게 받고 있다. 반면,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시아파는 철저히 세속 권력을 거부하고, 또 경계하였다. "완벽한 이맘(마흐디)이 돌아올 때까지, 어떤 인간의 통치도 완벽할 수 없다." 이 숭고한 '정숙주의(Quietism)'와 압도적인 학문적 깊이야말로 시아파가 소수파의 설움을 견디며 1,000년을 버텨온 진짜 정통성이었다.
그러나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은 이 모든 도덕적 우월성을 스스로 불태워버렸다. 권력을 쥐기 위해 교리를 뜯어고쳤다는 수니파의 혐의를, 이란의 시아파 성직자들이 그대로 답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할 수 있는 사고가 뿌리내린 20세기 이후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니파의 논리는 오히려 '자격을 갖춘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민주적인 메시지를 함양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아파는? 시아파는 종교적 순수성도, 민주적 가치도, 그 어느것도 명확하게 갖지 못한 채,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 서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아파 이슬람 국가주의의 본질이다.
Ⅳ. 호메이니의 룰 브레이킹과 종교적 키메라
이슬람 혁명시절, 호메이니는 "성직자가 이맘을 대신해 통치해야 한다"는 법학자 통치론을 내세웠다. 이는 당시 이란의 팔레비왕조에 저항하기 위한 구심점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아파가 천년간 수호해온 종교적 순수성과는 완벽하게 모순되는 이론이었다. 정치적 필요성은 법학자 통치론을 호출했지만, 이는 시아파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들고, 오히려 수니파의 마이너카피 내지는 대립칼리파를 연상케 하는 기괴한 결과물을 낳게 된다.
급기야 1988년, 그는 "나의 통치권은 마흐디와 동일하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마흐디란, 시아파에서는 일종의 구세주, 불교로 치환한다면 미륵불과 같은 존재이다. 호메이니는 죽기 직전, '나는 미륵불이다'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이라는 단서가 붙어있긴 했지만, 그것이 정치적이건, 율법적이건, 마흐디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는 시아파 교리의 심장인 '마흐디의 귀환(종말론)'을 현실 정치에서 지워버리고 스스로를 신격화한 교리적 전복이다.
그의 이중성은 극단적이었다. 그는 "국가(권력) 생존을 위해 이슬람의 핵심 율법인 기도나 메카 순례조차 중단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위에서 보았듯이, 그의 종교적 선언은 이슬람 교리에 기반한 선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정당성의 확보를 위한 것에 가까웠다. 그는 권력을 위해 신의 율법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한 철저한 권력 지향적 현실주의자였다. 그렇다면, 국민에 대해서는 어떨까? 이란 하면 항상 떠오르는 히잡 강제, 여성 차별, 그리고 모든 일상을 '율법'으로 통제하려는 철권통치가 그 대답이다. 이 괴리는 광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를 철저히 이용한 결과물이며, 그 종교라는 도구가 정치권력을 지향할 때와 피지배층을 지향할 때의 다른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에 가깝다. 따라서 호메이니를 단지 종교적 광신론자로 간주하는 것은 그의 한쪽 면만, 정확히는 한쪽면조차도 아닌 드러난 현상적 표면만 바라보는 것이다.
Ⅴ. 하메네이의 승계 과정과 진짜 권위의 외면
이 종교적 키메라를 열심히 기워덧댄 자국이, 1989년 후계 승계 과정에서 전 세계에 노골적으로 폭로된다. 호메이니가 승계구도를 모두 완성한 뒤, 충격적이게도 호메이니의 후계 1순위자였던 대아야톨라 몬타제리(Montazeri)가 호메이니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호메이니는 대노하며 그를 후계구도에서 파문시킨다. 그리고, 당시 이란의 대통령이던 하메네이를 자신의 후계로 잠정적으로 내정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란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과 달리 라흐바르(이란 최고지도자)에게는 평신도들이 순종하고 모방할 수 있는 원천의 자격(마르자; 대 아야톨라)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하메네이는 모방의 원천이 될 자격(마르자)은커녕, 그 아랫단계인 아야톨라(율법에 대한 해석권을 가진 학자)조차 아닌 호자톨레슬람이었다. 이 격차를 거칠게 비유한다면 마치 추기경과 신부님의 격차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추기경이 아닌 신부님에게 교황의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이란 수뇌부는 아예 국가 헌법에 규정된 라흐바르의 자격 요건 자체를 뜯어고쳐 버린다. 한편으로, 하룻밤 사이에 언론에서는 그의 호칭을 아야톨라로 격상시켜 부르기 시작한다. 이는 '아야톨라'라는 위치가 공식적인 커리큘럼의 이수보다는 종교계의 자발적인 인정과 대중적 영향력에 기반한다는 허점을 노린, 철저히 정치적으로 기획된 추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호메이니 사후, 이란 수뇌부는 하메네이를 최고지도자로 옹립한다. 종교적 순수성보다 '정치권력의 쟁탈'이 우선임을 헌법과 언론이 보증해준 사건이었다.
이 기괴한 왜곡 때문에, 현재 전 세계 시아파의 진짜 최고 권위자인 이라크 나자프의 대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는 이란 체제를 교리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반대로 무시한다. 정확히는 이란과 시스타니 둘 다 서로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서로를 정면으로 부정하기에는 정치적으로 너무 중요하고,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부담스럽거나 교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불편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란 신정 체제는 이미 정통 시아파의 관점에서는 내부에서조차 고립된 존재에 가깝다.
Ⅵ. 광신도의 착시와 체인점의 슬픈 딜레마
세계는 종종 이란을 맹신자들의 국가로 오해한다. 하지만 체제를 호위하는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는 종교적 광신도라기보다는, 거대한 국가 경제를 독점하고 배급 권력을 쥔 '이권 카르텔'에 가깝다. 이들에게 종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슬람 국가주의'의 깃발일 뿐이다. 해외의 체인점(대리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예멘의 후티 반군이 이란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그들의 교리를 맹신해서가 아니다. 가혹한 수니파 중심의 중동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란의 무기와 자금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생존 전략의 채택일 뿐이다. 그리고 시아파의 정치지도자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종교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인식하고 있는 냉정한 전략가들이다. 반면 종교를 맹신하며 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시아파의 종교적 교리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라흐바르를 믿고 있다. 맹신자들은 종교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맹신하고 있다.
Ⅶ. 공허해진 교리적 순수성, 그 자리를 채운 권력 논리
이란 신정 체제는 시아파 교리를 무기로 권력을 쥐었지만, 역설적으로 시아파의 철학적 정통성과 가장 멀어진 결과에 닿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터번을 두른 마키아벨리들의 전략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이란은 한때 중동에서 가장 세속적인 국가중 하나였으며, 21세기의 이란 국민은 텅 빈 교리와 정치적 폭력에 서서히 피로해지고 있다. 반면, 이란 지배층의 권력 구조는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단단하며 공고하다.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고상한 교리에 기반해서 이란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경제적 기반을 독점함으로써 이란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이상 그 모순이 유지되기에는 점차 한계에 도달한 파열음이 들리는 듯하다.
이란은 지금 안팎으로 위기에 닿아있다. 2022년부터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란의 시위,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공격. 지금 이란의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분노는 단순한 항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은 종교의 탈을 쓰고 천 년의 교리를 전도시켰던 이란의 지배층과, 이를 더이상 용납하지 못하게 된 민중들의 충돌일 것이다. 이 결과가 어디에 닿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점차 선명해지는 것은, 이미 무언가 임계점을 지나버렸다는 것이다. 이 시위 이후의 이란은, 지금의 체제가 유지되건 전복되건, 이전의 이란과는 꽤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