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은 닫았고, 대신 생각을 열었다.

언제부터 지식은 온전한 나의 지식일까

by 피디아

어느 날인가, 책을 읽다가 문득 머릿속이 번쩍했다.

책이 아닌, 나에게서 튀어나온 생각 같았다.


책에서 직접적으로는 다루지 않았지만,

분명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지점에서 생겨난 발상이었다.


나는 그 생각을 기록하려고 메모장을 열었다.

한두 줄쯤 썼을까. 이내 메모장을 닫아버렸다.



'이거... 진짜 내 생각 맞아?'



우리가 배우고, 보고, 듣고, 읽은 지식은 도대체 언제부터 나의 것이 되는 걸까?

방금 떠올린 발상이 분명 나름대로 참신하다고 느껴졌지만, 그게 정말 나만의 생각인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진짜 생각해낸 게 맞긴 한 걸까?’


이 문장이 맥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씁쓸했고, 결과적으로는 조금 허전하기도 했다.


혹시, 이건 그 책이 말하고자 했던 핵심을 단지 반복한 것 아닐까? 창의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저 책의 주제를 따라간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는 저자가 던진 문장을 그대로 되새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인지주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지식이 기존의 인지 구조와 연결되어 명확히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지식이 나의 것으로 내면화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내가 그 내용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순간에 지식이 나의 것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셈이다.


행동주의 관점에서는, 그 지식에 기반한 외적 행동 변화가 관찰될 때 비로소 학습이 일어났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생각이 실제 내 행동에 반영될 때 진짜 내 것이 되는 셈이다.


구성주의 관점에서는, 각자가 지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내면화했을 때

비로소 그것이 진정한 지식이 된다고 본다.

즉, 내가 그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삶 속에서 되새겼을 때 비로소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뇌과학적으로는, 반복과 의미 있는 연결을 통해 특정 뉴런 회로가 강화될 때, 지식은 장기기억화되며

그때 비로소 '내 것'처럼 작동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방금 떠올린 그 생각은, 이 네 가지 중 어느 기준에도 명확히 들어맞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메모장을 닫았다.

그렇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은 그 생각이 내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미하일 바흐친은 대화성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정의했다.

"언어는 언제나 타인의 말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한다"

"모든 발화는 이전 발화에 대한 응답이며, 동시에 미래의 응답을 예견한다"


언어가 타자의 목소리와 얽히듯, 생각도 언제나 타인의 사유와의 교류 속에서 발생한다.

생각 역시 일방적 생성이 아니라, 무수한 타자의 문장들과 맺는 대화적 관계에서 응답으로 피어난다.


즉, 내가 떠올린 생각이 완전히 독립된 창조가 아니며

들었던 말과 읽었던 문장들에 대한 응답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 생각이 전혀 아닌 것은 아니다.

그 응답의 방식이 나만의 것이었기에,

그 생각이 떠오른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나만의 발상이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생각이 나의 것이 되기 시작하는 진짜 순간'이 아닐까?


언젠가는 그 발상을 더 깊이 확장해, 나의 것으로 완전히 만들고, 나의 단어로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직 설익은 생각일 뿐이다.


지금은 대신, 그 과정에서 피어난 단편적인 생각만을

이렇게 짧은 글로 남긴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읽고, 내 생각으로 일궈내는 것.
그때, 비로소 지식은 생각이 되고, 철학으로 무르익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