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친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인다

by 피디아

이처럼 우리는 같은 경험도 '기질'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감정 중 하나인 '분노'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단지 우리가 피해야만 하는 파괴적인 감정일까? 어쩌면 그것은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창조의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제1부 - 제1장. 인간, 너무나도 인간적인】

네 번째 글: 빡친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인다


혹시 그런 적 없는가? 빡쳐야 일이 잘 되는 순간.

나는 그렇다. 평소에는 방바닥의 얼룩처럼 늘어져 있다. 타고난 귀차니즘으로 인해 아무도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나를 빡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이건 왜 이래, 이건 대체 누가 만든 건가. 왜 날 화나게 하는 거지? 왜 비합리적인 태도로 날 공격하는 거지? 어이가 없네?"


그 순간 방바닥의 얼룩은 분노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의아한 것은, 그럴 땐 오히려 일이 잘 된다. (대신, 눈은 살짝 돌아있다) 빡침이 뇌를 두들기면, 일단 뭔가를 만든다. 계획서를 열고, 구조를 짜고 시스템을 뜯어고친다. 가끔은 내가 봐도 내가 무서울 때가 있다.


분노는 생리학적으로 강한 각성 상태를 유발한다. 심박수는 올라가고, 교감신경계는 활성화되며, 뇌는 '위협'으로 인식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가용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한다. 그 순간의 주의력, 반응속도, 단기 집중력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신체는 일종의 '각성모드'로 전환되며 전두엽은 이 각성모드를 통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활성화된다. 즉,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의 분노가 아니라면, 문제 해결 능력이 순간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건 사고 능력이 아닌 생존 본능이다.


이는 다른 연구에서도 증명된다. 2011년의 연구(Glotzbach et al.)에 따르면, 감정 유발 자극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성화를 일으킨다. 전전두엽은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과 문제 해결 능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위로, 이는 문제 해결 능력의 상승을 시사한다. 즉, 빡침은 뇌를 각성하는 일종의 트리거이자, '지금 이거 해결 안 하면 끝장'이라는 뇌의 경고 신호다. 그래서 그 순간에는, 방바닥의 얼룩처럼 늘어져 있을 시간이 없다.


심리학적으로 감정은 각각 다른 행동을 유발한다. 그런데, 모든 감정이 사람을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지는 않는다. 기쁨은 관계 지향 행동을 유발해서, 가까운 이들과 함께 환호하게 만들고, 슬픔과 수치심은 위축을 유발해서,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지게 만들거나 동굴로 들어가게 만든다. 하지만 분노만은, 감정의 원인―마치 자물쇠로 잠긴 두꺼운 문 같은―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돌파하려는 감정, 그게 분노다. 심리학자 캐럴 이자드(Carroll Izard)는 분노를 "방해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에너지를 증가시키고,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행동을 촉진하는 감정"으로 정의했다. 다시 말해, 빡침은 "이건 내가 처리하겠다"라는 말 없는 결단이다.


하지만 모두가 빡쳤을 때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는 감정의 칼이다. 누구는 매섭게 벼리는 반면, 누군가는 다짜고짜 휘두른다. 누구는 조용히 워드를 열고 분노의 타이핑을 시작하지만, 누구는 빡치면 의자를 집어던지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감정 조절 능력이 낮은 사람은 분노 상황에서 문제 해결보다는 공격적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흥미로운 것은,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감정을 행동으로 '구조화'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 고차원적 사고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 만약 당신이 빡칠수록 일이 잘된다고 느낀다면, 축하한다. 어쩌면 높은 지능을 가져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심리학적으로 분노는 공격성을 자극한다. 그런데, 그 공격성은 상대를 주먹으로 때려눕히겠다는 공격성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나 이거 해결하고, 니 눈 앞에 보여주겠다"로 발전한다. 이건 단순히 문제를 고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향한다. 직장 상사의 무능함, 팀 내의 소외, 조직의 무기력함. 빡침은 그것들을 정면에서 부술 수 있는 감정이다. 단, 의자를 던지는 대신 보고서를 던지고, 구조도를 던지고, 성과로 압도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허용된 형태의 공격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나요?" 하는 상사의 무례한 압박에 "제가 이렇게 처리했습니다"라고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순간, 그리고 확 굳어지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느껴지는, 마치 전율처럼 흐르는 같은 짜릿함과 승리감. 감정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감정을 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감정을 전략적으로 '재구성'해 사회적 맥락에서 드러낸다. 그 순간, 워드프로세서는 업무용 프로그램이 아닌 무기 조립 공정으로 기능한다.


사례는 많다. 택배비가 너무 비싸서 빡친 나머지 가구를 분해해서 판 사람이 이케아의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다. 운영체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답답한 나머지 자기가 만든 사람이 리눅스의 아버지, 리누스 토르발즈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청소기에 찌꺼기가 계속 걸려서 한 시간마다 공장 라인이 정지되자, 분노에 차서 만든 청소기가 다이슨 청소기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누군가의 "이건 아닌데?"라는 작은 감정적 폭발에서 시작된 셈이다.


결국 이 말로 돌아온다. 빡치면 일 잘 된다? 이 말, 생각보다 꽤 설득력 있다. 그리고 만약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복잡한 감정을 구조화할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누군가의 회사 메신저를 조용히 곱씹으며 자기도 모르게 시스템을 갈아엎을 새 제안서를 타이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뭐, 제안서까지는 아니지만 태클은 거는 것 같다. 방바닥 얼룩치고는 말이다. 적어도 의자를 집어던지지는 않았으니까. 잘못된 분노는 스스로를 부수기도 하지만, 똑똑한 사람의 빡침은 때로는 세계를 부수고 다시 세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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