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라는 이름의 기적위에 서서
나는 지금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창문은 닫혀 있고, 바람도 없다. 시간조차 멈춘 듯하다. 하지만 이 정적의 감각은, 정말 '멈춤'일까?
지구는 자전하고 있다. 초당 약 460미터. 눈 깜빡할 사이, 나는 50층짜리 빌딩 길이만큼 이동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 흔들림도 없다. 나는 멈춰 있다고 느낀다.
더 나아가, 그 자전의 무대인 지구는, 태양을 향해 초당 30킬로미터, 즉 자전 속도의 약 65배의 속도로 공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태양계 자체는, 은하의 중심을 향해 초당 220킬로미터라는말로 표현하기조차 피곤한 속도로 돌고 있다. 이 모든 속도 위에서 나는 지금 ‘가만히’ 있다.
이 정적은 기묘하다. 수많은 움직임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나는 고요하다고 느낀다. 그 고요함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정지 상태는,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요함은 진짜가 아니다. 하지만 감각은 그것을 진짜처럼 느낀다. 그 느껴진 고요함은, 어쩌면 우리가 지각할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와 움직임 위에 놓인 섬 같은 찰나의 착각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착각 속에서 ‘존재한다’는 감각을 갖는다.
더 놀라운 것은, 우주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초신성의 폭발, 블랙홀의 충돌, 중력파, 은하 간의 파동들. 이 모든 우주의 ‘울림’은 인간의 청각이 감지할 수 없는 주파수로 존재한다.
우주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지금, 고요하다고 느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고요 속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들리지 않기 때문에’ 고요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은 말한다. 진공 속에도 소리는 없다. 그러나 그 침묵조차 완전하지 않다. 우주의 배경에는 무작위로 출렁이는 소음들, 파장들, 마이크로파 잔광들이 여전히 떠다닌다. 그 소리들은 우주 탄생의 기억이자, 존재의 물리적 배경이다. 나는 그 위에 놓여 있다. 나는 듣지 못한다. 그래서, 고요할 수 있다.
이 조용함은 실은 하나의 기적이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조용한 것,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멈춘 것, 알지 못하기 때문에 평온한 것 — 그것은 존재의 불완전함이 허락한 지극히 인간적인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 위에서, 나는 ‘나’를 느낀다.
나는 움직이고 있다.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고요하다. 이 두 사실이 동시에 진실일 수 있다는 것, 그 아이러니야말로 존재의 경이로움이다.
✨ 나는 지금 고요라는 이름의 기적 위에 가만히 놓여 있다. 어쩌면 이 순간의 조용함은
수많은 우주의 소리들을 들리지 않게 해준 감각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지금 고요함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하늘은 돔이 아니다 – 일상의 틈에서 만난 생각들>의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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