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맞서는 지혜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by 진인철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
남이의 여동생은 몽골 장수 주신타에게 붙잡혀 있었다.
주신타는 여동생을 인간방패 삼아 눈앞에 세워두고, 그 뒤로 자신을 숨긴 채 남이의 활을 조롱 섞인 눈빛으로 마주했다.
갈대는 바람에 요동치며 흔들리고, 남이의 시야도, 숨도, 감정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몽골 장수는 낮고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바람마저 널 도와주지 않는구나.”


그 말은 조롱이라기보다, 차갑고도 정확한 통찰처럼 들렸다.
바람도, 위치도, 상황도—그 어느 것 하나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활시위를 당긴 채,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시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게, 그러나 단단하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바람을 계산하지 않았다.

단지 그 바람을 통과할 수 있는 자신을 믿고,

화살을 놓았다.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도망치고 싶어 하고, 외면하며,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애써 모른 척하지만, 두려움은 그러한 회피의 틈을 타 더 짙어지고, 더 단단해진다. 의식의 그늘 아래서 자라난 두려움은, 마침내 삶의 결정적 국면마다 불쑥 고개를 들며, 우리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나도 모르게 방향을 틀게 하고, 중요한 결정을 미세하게 왜곡시키며, 존재 전체를 그 은밀한 기척으로 서서히 흔들기 시작한다.


두려움은 결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마주한 현실의 압축된 응시이자, 아직 그 형상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다가오고 있음을 감각하게 만드는 위협의 예감이며, 감정과 지각의 경계를 스멀스멀 넘어와, 실재의 파문처럼 의식의 표면에 스며드는 섬세한 떨림이다. 우리는 그것을 억누르려 하고, 때로는 무시하며, 애써 무관한 듯 행동하지만, 두려움은 억제될수록 더 날카롭게 변형되고, 외면당할수록 더 강력한 무의식의 에너지로 탈바꿈되어, 결국 삶 전체를 자신도 모르게 조정해버리는, 심연의 질서를 이룬다.


융은 이 감정을 ‘그림자’라 불렀다. 직면하지 않은 그림자는 의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조용히 조종하고, 인간은 종종 그 조종을 ‘자신의 성격’ 혹은 ‘운명’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의 어둠과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감정이라는 실타래에 얽매인 꼭두각시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그림자의 힘은 감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무지와 회피에 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두려움이 더 깊은 차원으로 스며들 때, 그것은 ‘불안(Angst)’이라는 감각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두려움은 구체적인 대상에 의해 촉발되는 반면, 불안은 대상 없는 감정이다. 우리는 무엇이 무서운지도 모른 채, 존재 전체가 낯설어지고 흔들리는 기묘한 감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 감각은 때로 현실 전체를 낯설고도 위태롭게 만든다. 이 불안은 도망쳐야 할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실존의 문이며, 단순한 감정적 용기로는 결코 건널 수 없는, 존재의 수용력을 요구하는 통과의례다.


이 불안을 통과한다는 것은 결국, 흔들림을 제거하거나 바람을 멈추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 흔들림과 바람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인정하면서도, 내면의 좌표를 놓치지 않으려는 조용한 결단이다. 그것은 흔들림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흔들리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기로 선택하는 힘이며, 존재를 지키기 위한 가장 정직하고 투명한 방식이다.


남이는 계산을 멈췄다. 실수는 곧 죽음을 의미했고, 확률이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확률을 따지지 않았다. 그는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갈대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화살의 길을 선택했고, 이미 활시위를 당긴 채, 그 침묵의 순간 안에서, 마치 스스로를 향해 조용히 말하듯, 결단을 내렸다.


지혜로운 사람은 두려움이 없어서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그는 두려움을 안고도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며, 그 두려움을 억제하거나 지우려 하기보다,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 감정을 감싸 안고, 삶의 본질과 대화하려는 존재적 결단을 선택한 자다.


두려움을 이겨낸다는 것은 그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두려움을 하나의 장애물로 간주하기보다, 내가 진심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내면의 거울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거울을 정직하게, 왜곡 없이 마주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고, 그 연결 속에서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고 고요한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 두려움을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을 비추는 내면의 거울이다.

그 거울을 정직하게 마주할때, 우리는 다시 흔들리지 않는 중심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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